보통이 아닌 '보통'씨

2015.01.19 14:45:57

소설 '칼의 노래'로 동인문학상을 받으며 '우리 문학사에 벼락같이 쏟아진 축복'이란 찬사를 들었던 작가 김훈은 처음의 본업이 신문기자였다.

기자 시절 그는 존경해 오던 작가 황순원의 자택을 직접 방문할 일이 있었는데 황순원은 와병 중이었다.

그 머리맡에서 그는 '가슴 뛰는 것'을 발견했다.

하얀 약 봉지에 동네 의사의 글씨로 '황순원'이라고 적혀 있었던 것이다.

그는 선생에게 부탁하여 그 약봉지를 소중히 들고 나왔다.

혹자는 그 약봉지가 무슨 대수냐고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학창시절 교과서로만 대하던, 우리 문단의 별이랄 수 있는 작가의 이름이 평범한 약봉투에 쓰여 있음이 김훈에게는 '감격'이었던 동시에 알 수 없는 소회가 치밀어 올랐던 것이다.

"동네의사의 글씨로 적힌 그 이름을 대하니 기가 막혔다. 아, 선생님도 생로병사를 통과하고 있구나."

그는 이렇게 술회하고 있다.

그렇다. 지구상에 어떤 이도 인간의 희로애락에서 벗어날 수 없다.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라 해도 그의 일은 일상적 삶의 영역에서 수행되어지는 것이다.

보통 사람들이 항시 몸담고 생각하는 일상적 풍경들을 새로운 각도에서 신선하고 명석하게 풀어내는 글을 씀으로써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작가 알랭 드 보통이 지난 16일 청주에 왔다.

2015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특별전 예술감독의 자격으로 방문한 것이다.

청주시문화재단에서 열린 기자간담회 직전 그는 작은 테이블 앞에 관계자 몇 명과 함께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사실 아내와 함께 보통의 열렬한 팬인 나는 가져간 그의 저서 '행복의 건축'에 사인을 받기 위해 책을 내밀었다.

파란 잉크의 만년필로 자신의 이름을 적고 사진 촬영에 응해준 그는 시종 따스하고 소탈하며 겸손했다.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자주 마주치는 이웃집의 자상하고 마음씨 좋은, 젊고 성실한 가장의 모습이었다.

실제로 그는 "작가와 아버지로서의 삶의 조화를 어떻게 이루고 있느냐"라는 질문에 "아들이 둘인데 학교에서 글쓰기 수업을 매우 어렵고 재미없게 생각한다. 그런데 아빠는 매일 책상에 앉아 글만 쓰고 있으니 그런 아빠를 무척 불쌍하게 여긴다. 하지만 이번 공예비엔날레 프로젝트는 우리 아들들도 아빠가 무척 재미있는 작업을 하게 될 것이라 생각하는 것 같다."라고 자녀에 대한 애정과 소통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

사실 그는 한국에서 소설가라기보다 '일상의 철학자'라는 평가로 더 사랑받고 있다.

그는 저서 '일의 기쁨과 슬픔'에서 로켓 과학자로부터 택배 배달원에 이르기까지 열 개의 직업을 선정하여 그들이 되풀이 수행하는 일의 현장 속으로 뛰어들어 노동의 본질을 편견 없이 풀어내고 있다.

또 다른 저서 '불안'에서는 현대인들이 왜 그토록 자주 불안의 심리에 시달리는지를 다양한 세태를 분석하여 그 심리적 기저를 보여주고 있다.

그 밖에 '공항에서 일주일을'이나 '뉴스의 시대' 등 우리 생활과 밀착되었으나 누구도 깊이 들여다보지 않았던 삶의 근간을 천착하여 우리 일상적 삶의 모습을 성찰하게 하는 힘을 가졌다.

그는 간담회에서 한국에서의 인기를 실감하느냐는 질문에 "한국에서 보통은 중간 수준 정도라는 뜻이라는데 큰 사랑을 주셔서 감사하다"라는 말을 했다.

그러나 그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보통'에 대한 성찰은 늘 보통 이상이었다.

/ 윤기윤기자 jawoon6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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