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주 문학평론의 서평 - 드라마 '미생'에서 길 찾기 방법으로서 형제애

2015.02.04 09:41:03

잘 나가는 기성세대들은 '아프니까 청춘이다'라고 쉽게 말하면서 젊은이들에게 아픔을 겪은 만큼 그들의 미래를 보장해 주지는 못한다.

일본의 사회학자 후루이쓰 노리토시는 <절망한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이라는 저서에서 불확실한 미래를 위하여 준비할 필요조차 없는 요즘 젊은이들은 아프니까 청춘이던 시대의 젊은이들보다 더 자유로울 수 있다고 미생세대의 절망적 방황을 역설적 피력했다. ·

미생은 아직 살아 있는 것은 아니지만 완생의·여지는 남아 있다.

우리는 바둑처럼 삶에서도 완생의 '길 찾기'를 해야 한다.

시청자들은 미생세대의 고민을 잘 그려낸 작품이라고 드라마 '미생'을 평가한다.

그러나 정작 제시하려고 한 것은 '비정규직의 갈등'이라는 문제가 아니라 '형제애'라는 길 찾기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텔레비전 드라마는 잘 생기고 능력 있는 재벌의 아들, 그의 출생 비밀, 불륜, 미혼모 등 전위적인 사회 모습이랄까 아니면 패륜과 부도덕 같은 파격적인 요소가 단골로 등장한다.

이와 달리 드라마 '미생'은 가진 자들의 '갑질' 앞에서 분노하는 못 가진 자들의 무력감을 문제로 제시한 것이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갑의 횡포라는 문제보다 해결 방법 제시에 초점을 맞추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즉 한국 사회의 전통적인 인간관계인 '형제애'를 오늘날의 절망적 상황에서 벗어 날 수 있는 방법으로 제시한 것이다.

이 드라마는 재벌, 불륜, 연애, 삼각관계도 없다. 뿐만 아니라 어느 한 사람에 서사가 집중되는 스타도 없다.

주인공과 모든 인물이 살아서 끝까지 함께 간다. 그래도 시청자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기에 모자람이 없다.

주인공 장그래는 고졸 계약직 신입사원이다.

그의 이름은 흔히 현재 상황을 묻는 인사에 대답으로 '장 그려'하는 말을 연상하게 한다.

현재를 긍정하는 듯, 미래를 부정하는 듯한 이름을 가진 그는 프로기사에 인생을 걸고 살아 왔기에 학력도 인맥도 스펙도 없이 무역회사의 계약직으로 취업하여 막막한 현실 문제에 부딪치게 된다.

주인공에게 의미 있게 연결되는 인물을 살펴보면 매우 흥미롭다.

인물간의 관계를 수학적 함수관계로 분석할 수 있는데, 주인공 '장그래'를 좌표축원점으로 하여 관계 양상에 따라 수직축과 수평축으로 좌표평면을 형성한다.

세로축에는 수직적 거리에 따라 대리, 과장, 차장으로 영업 3팀이 구성되었고, 가로축에는 장그래와 수평적 거리감을 기준으로 여사원 안영이, 한석율, 장백희로 정리할 수 있다.

이 좌표 평면을 인간관계로 이해할 수 있는데, 예를 들어 수직축에 가장 가까이에 있는 김대리는 장그래에게 업무와 현실적 처신 방법에 대한 안내자이면서 그에게서 인간의 진실을 배운다.

그는 장그래에게 업무를 안내하고, 장그래는 바둑의 원리를 삶의 원리에 적용하여 그에게 조언한다.

오차장은 장그래에게 맏형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처음에는 장그래의 자기 팀 배속을 기분나빠하고 천시하지만 회차를 거듭할수록 동료애를 넘어선 형제애가 일어나고 동지가 된다.

이러한 공식을 등장인물 모두에게 대입하면 모두가 하나의 좌표평면에서 수직축과 수평축을 형성하게 되고 여기에서 정과 사랑으로 문제를 해결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오차장과 장그래가 새로운 세계인 중동의 황량한 사막에서·'길 찾기'에 나서는 패기 넘치는 모습은·감동적인 명장면이었다.

장그래를 좌표축원점으로 가로축의 수평적 관계로는 거리감에 따라 안영이, 한석율, 장백희가 있다. 처음에는 장그래가 무관심의 대상이었지만 동정에서 형제애로 발전한다.

그러나 서로를 동지애 형제애를 넘어서는 성적 교제의 대상으로 삼지는 않는다.

시청자들은 러브라인으로 발전할 것을 기대하지만 형제애와 업무에 따른 협조만 존재할 뿐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잊고 살았지만 한국 사회에 전통적으로 존재하는 형제애이다.

형제애는 형제 사이의 정과 사랑, 친구 사이나 가까운 사람 사이의 정과 사랑을 의미한다.

미국사회에서도 최근에 형성되었다는 이른바 브로맨스bromance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형제 사이에 본질적인 삶의 문제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면서 깨우침을 주고 진정한 사랑과 따뜻한 인정을 주고받으며 각자의 현재와 미래를 설계하고 이루어간다.

한편 장그래의 수직적 형제애와 대조적으로 한석율의 세로축인 성대리의 횡포를 설정하여 드라마를 더욱 흥미롭게 했다.

갑질의 상징인 성대리에 대한 시청자들의 분노를 풀어내는 장면은 명장면 중의 명장면이다.

모든 시청자들도 통쾌한 카타르시스를 경험했을 것이다.

텔레비전 드라마는 영화나 연극에 비해 세대, 학력, 가치관을 초월하여 수많은 계층의 요구를 충족시켜야 한다.

모두의 공통 문제를 발견하여 보편적으로 진실한 가치를 인정받는 해결방법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드라마 《미생》이 최근 한국 사회 젊은이들의 갈등과 고민을 문제로 선택하고, 형제애라는 전통적인 가치를 해결방법으로 삼은 것은 텔레비전의 사회적 역할이라는 가치 구현에 공헌했다고 정리할 수 있다.

이방주 약력

<한국수필>로 수필 등단 <창조문학>으로 수필평론 등단(2014)

충북수필문학상(2007), 내륙문학상(2014)

한국수필가협회, 한국수필작가회, 충북수필문학회, 내륙문학회 회원

현재 서원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강사, 청주시 1인1책 지도 강사

저서 : 수필집 『축 읽는 아이』『손맛』 『풀등에 뜬 그림자』

칼럼집 :『여시들의 반란』 편저 : 우리 문학의 숲 『윤지경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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