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주의돈지부(陶走·頓之富)

2017.04.06 14:27:59

오문갑

세명대 글로벌경영학부 교수

길었던 겨울이 지나고 여기저기 봄꽃들이 피는 걸 보며 문득 중국의 원로학자 지셴린[季羨林]이 쓴 [다 지나간다] 라는 책의 내용이 생각났다. 세상사도 책 제목처럼 다 지나가고 고통과 슬픔도 한순간에 지나가기에 집착하고 연연해 할 필요가 없다는 내용이었다. 지금의 힘든 삶도 잠시이고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도 잠시인 것이다. 삶이란 항상 유동적이며 머무르지 않고 흘러가며 생겨나고 멸하며 세상은 계속 변한다는 것이다. 또한 생(生)과 사(死)에 있어 우리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결정할 것은 없다고 한다. 불안정한 것이 인생임을 받아들이고 순간의 고통과 기쁨에 집착하지 않는다면 나 혼자만이라는 느낌에서 오는 외로움에서 벗어나 따뜻하고 평온한 일상을 누릴 수 있게 될 것이라고도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현 세상에서 소유와 집착에 연연해한다. 그러나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은 덧없으며 재물과 명예도 언젠가는 다 지나가게 되있다.

그래서 그런 재물과 물질의 소유에 집착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그런 뜻에서 도주의돈지부(陶走·頓之富)는 우리에게 많은 교훈과 경각심을 갖게 하는 고사성어이다. 배경은 월나라의 범려는 월왕 구천의 일급 참모로서 부국강병 20년 끝에 오나라를 멸망시키고 월나라를 춘추시대 마지막 패자로 만들었으나, 그는 구천의 인간성에 대해 '고생은 함께 할 수 있어도 즐거움은 같이 보내기 어렵다'고 판단한 후 월왕 구천의 만류를 뿌리치고 가족과 함께 제나라로 떠나 장사를 하기 시작했다.

제나라에 정착한 그는 치이자피라는 이름으로 바꾸고 장사를 한 결과 엄청난 부(富)를 쌓았으며 이런 재능을 높이 산 제나라는 그에게 재상자리를 놓고 흥정을 벌였다. 그러나 그는 "장사로 천금을 벌고 관에 있어 높은 재상이 되는 것은 영화(榮華)의 극(極)과 극, 이런 존경을 받는 것은 신상에 해롭다."고 거절함과 동시에 전 재산을 남에게 나누어 주고 도(陶)로 떠났다.

그리고 그는 도에서도 이름을 주(朱)로 바꾸고 장사를 시작해 얼마 후 많은 부(富)를 쌓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보고 도주공(陶朱公)이라 부르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것은 그가 19년 동안 세 번씩이나 거액의 부를 얻었을 때 그 중 두 번씩이나 빈민들에게 나누어 준 결과였으며, 그 후 후세 사람들은 참된 부자에 대해 정의를 내릴 때 '도주공'을 들먹이고 혹은 '의돈'을 떠올린다고 사기화식전에 기록돼 있다.

이런 경우를 돈벌이의 천재 화교(華僑)들은 '사회에 투자해 신용을 버는 것'이라고 말한다. 사회로의 이윤 환원이 신용을 구축하는 것이며 특히 화교사회에 환원하면 동료들을 위한 봉사와 헌신으로 해설하기 때문이다. 도교의 창시자 노자(老子)가 "부드러운 것은 강한 것을 이긴다."라고 말했듯이 그들은 져주면서 이기는 것을 알고 있다. 체면은 크게 손상하지 않는 한 겉으로는 지더라도 뒤에서는 이긴다는 것을 그들은 피부로 강하게 느끼고 있는 것이다. 부(富)란 글자가 집(·)에 한입 (一口)으로 밭(田)을 가진다는 뜻이듯 탐난다고 무조건 금전에 집착하는 것은 비록 권력자나 부자라도 걸인 흉내를 내고 있는 것과 같다고 그들은 경멸한 것이다. 이것이 도주의돈지부(陶走·頓之富) 고사성어의 뜻이며 교훈이다. 우리나라에도 김밥을 팔아 알뜰히 모은 수십억을 사회에 기부한 할머니가 있는가 하면 이름도 밝히지 않고 사회사업에 기부하는 독지가도 있다. 물론 이런 사람들이 흔하지는 않지만 우리들은 이분들을 본받아야 할 것이다. 그런 뜻에서 프랑스의 정치가이며 소설가 라로셰프코의 명언을 상기해 본다.

"부귀와 명예는 그것을 어떻게 무슨 방법으로 얻었느냐가 문제다. 도덕에 근거를 두고 얻은 부귀와 명예라면 마치 산 속에 피는 꽃과 같다. 다시 말해 충분한 햇빛과 바람을 받고 활짝 핀 꽃인 것이다. 반면에 어떤 공적으로 인해 얻은 부귀와 명예라면 그것은 정원에 심어져 있는 꽃과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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