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벌이 전쟁 21회

2017.04.27 14:02:21

권영이

증평군 문화체육과장

교통사고 현장에서 발생한 절도 사건으로 인해 가뜩이나 긴장된 분위기가 더 살벌해졌다. 이 사건으로 인해 터질지도 모를 폭탄 파편에 맞지 않으려고 서로 눈치를 보며 몸을 사렸다.

길을 가다 마주쳐도 고개만 숙이는 걸로 인사를 대신했다. 무슨 말이든 섞다가는 어떤 꼬투리를 잡힐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사자들을 한 묶음으로 묶어놓은 듯 했다.

나도 가능한 그 누구와도 마주치거나 엮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더구나 그 사건 이후 틈만 나면 나를 따라다니던 동방도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통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내 담당구역이 고령자가 많은 시골지역이라 감사해야겠어. 이 나이에 그들처럼 남의 몫이나 훔치다 잡히는 꼴을 상상만 하는데도 이렇게 끔찍한데……."

혼잣말로 신세한탄을 하며 앉아있는데 누군가가 뒤에서 내 어깨를 껴안았다. 나는 화들짝 놀라서 뒤를 돌아보았다. 동방이 생글거리며 반가워죽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사자님. 지금, 누구하고 애기 하시는 거예요·

"휴우. 자네 장난에 놀랐네."

"헤. 놀라시라고 한걸요. 그동안 저 없어서 심심하셨죠· 그죠· 아녜요· 아니라고 말 못하시죠·"

동방은 그동안 하고 싶은 말들을 뱃속에 담아두었던 걸 한꺼번에 토해내 듯 조잘댔다.

"어, 자네 왜 이러나. 이거야 원 정신이 사나워서……."

동방이 내 옆구리를 팔꿈치로 문지르며 놀렸다.

"에이, 사자님. 정신이 사나우신 게 아니고 정신이 황홀하신 것 같은데요· 제가 나타나서 너무 좋으시잖아요·"

"그래. 자네가 나타나서 기분이 좋네만 자네는 그동안 어딜 다녀온 겐가· 분위기가 이렇게 살벌한데."

동방은 내 말에는 대꾸도 안 하고 허리를 앞으로 굽혔다 뒤로 젖히고, 팔을 이리 저리 흔들고, 다리를 굽혔다 폈다하면서 몸을 푸는 시늉을 했다.

"정신 사납게 왜 또, 이러나·"

"헤헤. 앞으로 큰일을 하려면 힘을 모아둬야 하거든요. 시간 날 때마다 몸을 풀어줘야 해요. 사자님도 저를 따라 해보세요."

나는 동방의 뒷머리를 손바닥으로 톡톡 쳤다.

"정해진 일 하는 게 우리 역할인데 큰일 할 게 뭐가 있겠나·"

동방은 분주하게 움직이던 몸을 잠시 멈추더니 나를 돌아보며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며 물었다.

"김 사자님. 맡겨진 일을 잘 하는 거와 아무도 하지 못한 일을 찾아서 하는 거랑 어떤 게 더 중요한가요·"

나는 아직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문제라 무어라고 대답할지 난감했다. 그렇다고 새파란 후배 앞에서 모른다고 할 수도 없어 동방에게 되물었다.

"그러는 자네는 어찌 생각하는가·"

"음. 저도 아직 잘 모르겠어요. 맡겨진 일을 소홀히 하면 질서가 깨질 테고 그렇다고 맡겨진 일만 한다면 기계와 같은 처지일 테고. 어려워요. 그래서 저도 요즘 고민이 많아요. 무얼 먼저 해야 할지."

동방의 얼굴이 조금 어두워지는 듯했다. 동방에게 제대로 된 대답을 해주지 못하는 처지가 씁쓸했다.

"동방. 선배라고 나이만 먹었지 별 도움이 안 돼 미안하이."

동방은 굳었던 얼굴을 펴며 정색을 했다.

"아, 아니에요. 사자님. 그냥 그런 생각이 들어서 말씀드린 것뿐이에요."

"그렇게 말해줘서 고맙네. 그런데 동방. 자네가 생각하고 있는 큰일은 대체 뭔가·"

동방이 눈동자를 요리조리 돌리며 겸연쩍게 웃었다.

"그렇게 웃지만 말고 말해보게나."

"에, 그게, 뭐냐면……. 그러니까 그게."

나는 벌떡 일어나서 소리를 버럭 질렀다.

"이 봐! 자네는 뜸을 들여서 내 궁금증에 불을 질러야 속이 시원한 겐가·"

동방이 나를 따라 벌떡 일어나서 소리를 질렀다.

"제가 뭐 일부러 사자님을 골탕 먹이려고 그런 줄 아세요· 여자문제니까 그렇죠. 김 사자님. 좋아하는 여자 있으세요·"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멍하니 동방을 바라봤다.

"피, 없으시면서……." ⇒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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