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들이 주관한 동문체육대회

2017.05.08 13:45:02

이찬재

수필가·사회교육강사

4, 5월이 되면 각 급 학교의 동문체육대회 현수막이 거리에 가장 많이 나붙는다. 학창시절 꿈을 키우며 함께 공부하던 동창과 같은 학교를 다닌 인연으로 맺어진 동문들을 만나는 것은 가슴 설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방방곡곡으로 흩어져 각기 다른 일을 하면서 바쁘게 살아가다가 학창시절의 추억을 회상하고 변해있을 친구들의 모습을 생각하면서 천리 길을 마다하지 않고 달려온다. 모교의 교정에서 운동경기를 하면서 살아가는 이야기도 나누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동문회모임은 삶의 활력소가 되는 것이다. 학교 다닐 때는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던 학생이 남들이 부러워 할 만큼 성공한 경우도 있고, 반대로 관심을 받던 우등생이 존재감이 떨어지는 경우도 있어 인생사 새옹지마(塞翁之馬)라는 말도 회자(膾炙)되고 있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보면 공부 잘했던 우등생들이 안정된 직업에 종사하며 잘살아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평가도 있다. 내가 졸업한 초등학교에 발령을 받고 첫 졸업을 시킨 제자들이 동문체육대회를 주관한다는 소식을 듣고 지금은 폐교가 되어 농산물 체험장으로 활용되는 모교를 찾았다. 동문이자 후배인 제자들을 만나니 매년 만나는 우리 동창생보다 더 반가웠다. 첫 제자들이라서인지 대부분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 손을 맞잡고 나이를 물으니 올해가 환갑이라고 한다. 희끗희끗한 머리에 벌써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어 있었다. 그러고 보니 나와 10년차 밖에 안 되었다.'객지 벗 10년'이라는 말도 있으니 함께 늙어가는 셈이다. 체육복을 입혀주고 모자도 씌워주며 주관 기수와 일체감을 갖게 하였다. 대화를 나누다 보면 대부분은 어린 시절의 모습이 얼굴에 나타남을 느낄 수 있었다. 제자들과 앉아서 어린 시절의 아련한 추억여행을 떠나니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이미 기억 속에서 사라진 추억들을 끄집어내며 한바탕 웃음꽃을 피운다. 옛날 같으면 상노인 대접을 받을 나이인데 환갑나이 인데도 장년에 불과하였다. 운동경기가 끝난 다음엔 노래자랑도 있었다. 경품 추첨도 하면서 색소폰 반주에 맞춰 노래실력을 발휘하였다. 나는 갑자기 심사위원장이라는 감투를 쓰고 노래를 들으며 심사에 어려움을 겪었다. 노래방 덕분인지 몰라도 모두 노래를 잘 부른다. 2회로 졸업한 70대 원로동창들은 제자들과 어울리는 나를 보고 동창들에게 관심 좀 가지라고 불만을 토로한다. 행사가 모두 끝나자 저녁식사 장소로 초대를 받았다. 1반 담임을 하셨던 선생님께서는 한 달 전에 세상을 뜨셨다는 소식을 들으니 마음이 아팠다. 동창회장이 덕담을 한마디 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제자들 앞에 서니 감개가 무량했다. 사회교육강의를 할 때 가끔 써먹었던 유머를 한마디 하니 모두 폭소를 터트린다. 무슨 일로 소일을 하느냐는 질문에 여성문화회관과 향교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고 하니 부럽다고 말한다. 옆에 앉아 있던 충남에서 교장을 하는 여자 제자가 정년 후에 할 일을 준비해야겠다고 말한다. 내가 정년 퇴임식을 할 때는 교감이 되었다고 좋아했었는데 제자도 벌써 정년을 앞두고 있으니 세월이 무상함을 느꼈다. 제자들이 따라주는 술잔을 받다보니 얼굴이 달아올랐다. 젊은 교사시절엔 열정하나로 가르쳤던 제자들이 마냥 어린 줄만 알았는데 4~5년 후면 경로대접을 받게 될 것이 아닌가· 식사가 끝날 무렵 총무를 맡은 제자가 커다란 케이크를 사가지고 들어왔다. 환갑을 맞는 친구들을 모두 나오라며 축하를 해주고, 기념사진도 찍는 모습에서 제자들의 따뜻한 우정을 느낄 수 있었다. 노래방으로 이동한다는 말을 듣고 제자들과의 즐거운 추억여행을 작별하고 자리를 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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