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수필과 함께하는 여름의 추억 - 아버지의 눈물

2017.05.18 17:44:17

[충북일보] 며칠 전 살던 집이 계약만료 되어 바로 옆 동네로 이사를 했다. 아침부터 서둘렀는데도 살아오면서 하나둘씩 늘어난 살림살이가 이렇게 많은 줄은 몰랐다. 사실은 2년 전 이사할 때 직장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아내가 도맡아 했었다.

점심때가 지난 줄도 모르고 아내와 둘이서 이방 저 방을 정리하다 보니 동생네 가족이 부모님을 모시고 들어왔다. 동네 음식점에 부탁한 식사가 배달되어 먹으려 하는데 아버지가 보이질 않았다. 분명히 인사도 드렸었는데…. 어머니와 동생네 가족들께 먼저 식사를 하라고 하고 밖으로 나가 아파트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버지가 등나무 아래 홀로앉아 눈물을 흘리고 계셨다. 깜짝 놀라 무슨 일 있으시냐고 물어보니 아버지는 눈물을 훔치시며 "애비야. 니가 이사를 한다니 기분이 좋아야 하는데, 나는 하나도 기쁘지가 않구나!"라고 말씀을 하셨다. "아버지 왜그러세요. 저번에 살던 집보다 교통도 좋고 햇볕도 잘 들어 저는 좋은데요. 집사람도 이 집이 마음에 든다고 하니 걱정하지 마세요." 아버지는 아무런 말씀이 없으셨고 부자(父子)는 그렇게 한참을 벤치에 앉아 있었다.

나이 오십이 넘어 집 한 채 없이 이리저리 떠돌며 사는 큰 자식이 안쓰러워 그러신다는 것을, 큰 자식 이사하는 날, 돈이라도 보태주질 못하시는 심정을 토로하신다.

돌아보니 아버지의 삶도 참 고단했다. 30대에 홀로되신 할머니 대신 몇 마지기 안 되는 농사일 도맡아 하시면서 동생들 돌보느라 정신없이 사셨다. 지금도 아버지의 손마디는 한여름 가뭄의 논바닥처럼 갈라져 있고, 젊어서 지게질을 많이 한 탓에 등은 고갯마루처럼 굽어도 너무 많이 굽었다. 가끔씩 아버지 손을 잡으면 그동안 살아온 인생의 고초와 나이가 그대로 새겨져 있는 것 같아 코끝이 찡하고 눈물이 핑 돈다. 어려서부터 아버지는 농사일 밖에 몰랐다. 그러다 보니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는 단순한 진리와 흘린 땀의 정직함만 알았지 세상 살아가는 지혜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사셨다.

우암산 관음사 주지스님의 소개로 어머니를 만나 삼남매를 낳았다. 아이들 학교걱정, 먹고 살 걱정에 청주로 나와 연초공장에서 정년퇴임을 하셨다. 우리가족이 처음 자리를 잡은 곳은 수동 달동네 조그마한 판자집이었다. 어머니는 절에 가서 하루 종일 일을 하셨고, 아버지는 연초공장을 다니셨다. 가끔씩은 아버지가 오징어 한 짝을 들고 집에 오는 날이 있었다. 어머니가 웬거냐고 물으면 아버지는 씁쓸한 표정으로 이번 달 월급이라며 건네시던 모습이 낡은 내 기억 속에 아직도 남아 있다. 한밤중에 깨어보면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아버지는 마당 귀퉁이에서 담배를 물고 오래도록 서계셨다. 행여, 약주라도 드시고 집에 들어오는 날이면 온 가족은 비상이었다. 저 멀리서 비틀거리며 걸어오는 아버지의 모습은 가족과 세상을 모두 잃고 삶의 의욕마저 잃어버린 패잔병 같았다.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부귀와 영화를 누렸으면 희망이 족할까. 푸른 하늘 밝은 달 아래 곰곰이 생각하니 세상만사가 춘몽 중에 또다시 꿈이로다." 집에 오셔서도 아버지는 이 노래를 밤새도록 부르다가 잠이 들곤 하셨다.

정년퇴임 하시던 날 어머니를 모시고 아내와 함께 연초공장을 찾았다. 다른 분들은 훈장과 상장을 한 아름씩 받아들고 기뻐하는데, 기능공이었던 아버지는 하회탈 하나를 선물로 받았다. 상장하나 받지 못하는 아버지를 위해 청장님께서 특별히 마련하신 선물이었다.

아버지 퇴직한지 20여년이 지났지만 하회탈은 지금도 이사할 때마다 제일먼저 챙기는 내 삶의 가보(家寶)가 되었다. 그 속에는 아버지의 젊음이 있고 뜨겁게 살아오신 인생이 담겨져 있기에….

가족을 위해 모진 삶을 사셨음에도 그저 웃음만 짓고 계시던 아버지의 그때 모습이 바로 어제 같은데 내일 모레면 팔순이다. 살아오면서 나는 아버지 우는 모습을 본 기억이 없다. 내 기억 속에 아버지는 울지 않으셨지만 한 사내는 평생을 울었다. 힘들어 논밭에 쓰러져서도 울었고, 아내의 가슴에 파묻혀서도 울었다. 자식들이 마음대로 되지 않아 울었고, 등에 짊어진 무게가 힘겨워서도 울었다. 아버지 나이 쉰에는 내 나이 쉰 보다 더 크게 울었다는 것을 세월이 한참 흐른 뒤에야 알았다.

김규섭 프로필

충북대평생교육원 수필창작 회원

푸른솔문인협회 회원

청주시청 공보팀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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