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줄쥐 '꽃쥐' 되다

2017.05.21 16:03:31

김희찬

아이들의 하늘 주비위 간사

충주 탄금대(彈琴臺). 그곳에 반세기를 상징처럼 서있는 건물이 하나 있다. 충주문화원이다. 그 입구에는 작은 화단이 하나 있다. 반세기 동안 그 화단에 살다간 풀이며 나무들이 몇 가지나 될까? 지금은 개나리를 중심으로 여러 꽃풀들이 하나 둘 자리를 잡아간다.

하트 모양으로 매어 놓았던 개나리는 봄 내내 그곳을 찾는 사람들의 눈길을 모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2017년 봄 추억을 사진으로 담아갔다. 꽃이 지고 잎이 나며 새 가지도 돋아 제법 무성하다. 그 아래에 초롱꽃이 움터 이제 꽃망울을 터뜨렸다. 그 사이 패랭이와 데이지 모를 얻어 심어 붉거나 노란 꽃단지가 하나 늘었다. 그리고 몇 개 목화씨를 넣어 둔 것이 봄비에 하나 둘 돋아나 목화밭을 예정하고 있다.

지난 겨울 그 화단에는 왕겨를 깔았었다. 수도 계량기 동파를 막기 위해 방앗간에서 얻어온 왕겨. 그 빈 쭉정이를 후벼파며 뒤지는 녀석이 있었다. 쥐다. 조그맣고 앙증맞은 녀석은 찾아보니 '등줄쥐'라고 한다. 화단은 녀석의 앞마당 쯤 되는가 보다. 겨울을 나며 추워도 나와 돌아다니며 빈 쭉정이 왕겨를 후비는 것이 안쓰러워 배추며 무 껍질이며 먹을 것을 녀석이 다니는 길목에 놓아 주었다. 긴 겨우내 틈틈이 그렇게 했다. 가끔 눈에 보일 때면 제법 토실해진 것 같기도 해 뿌듯했다.

봄이 되어 겨우내 덮였던 왕겨를 태웠다. 왕겨의 뜨거운 불땀이 식어 까만 재가 되었다. 화단 여기 저기 뒤섞어 거름이 되었다. 그 위에 봄 꽃풀들이 하나 둘 돋아난 것이다. 화단 주변 여기저기에 구멍이 많다. 반세기를 지나온 세월만큼이나 많은 구멍은 보기에 싫지 않다. 어쩌면 연륜이며 세월일 것이다. 그 구멍들이 쥐돌이의 사방 통로다.

조막막한 녀석이 구멍 어딘가에서 고개를 내밀고 주변을 살핀다. 그리고 정해지면 쏜살같이 내튄다. 정말 빠르다. 화단을 중심으로 생활하는 줄만 알았는데, 봄이 되니 맥문동 밭 사이로 움직임이 보이기도 했다. 무언가 하고 한참을 보았더니 야외음악당 쪽에 마실을 다녀오는지 쥐돌이가 꼼작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계단을 가로지를 때는 엄청 빠르게 또 내튀었다. 그리고 구멍으로 쏙. 그 순간 그 구멍은 쥐구멍이 된 것이다.

몇 일 전, 초롱꽃이 망울을 터뜨렸다. 꽃 무게에 못이겨 줄기가 척 늘어졌다. 그런데, 뭔가 무너져 내리는 듯한 소리가 났다. 그리고 한 가지가 시야에서 사라졌다. 바위에 발돋움해 올라선 쥐돌이가 대담하게 초롱꽃 가지 하나를 꺾었던 것이다. 그것을 물고 또 쥐구멍으로 쏙. 맹랑하다. 한참을 지켜보았다. 저쪽 구멍에서 반짝 두리번 살피더니, 패랭이 무지 속에 몸을 숨긴다. 몇 번을 쥐구멍으로 패랭이 무지로 들락거리며 왔다갔다 하더니, 이번에는 패랭이 한 줄기가 꺾여 또 쥐구멍으로 쏙. 조금 뒤에 다시 나온 쥐돌이는 다시 패랭이 무지로 왔다갔다 했다. 그 중간에 한 포기 심어놓은 데이지 노란 무지 속에 왔다 갔다. 이번에는 데이지 한 줄기가 꺾여 다시 쥐구멍으로 끌려들어갔다.

증인이 필요했다. 문화원 간사님과 누나를 불렀다. 저기를 보라며 쥐구멍을 가리켰다. 기다리니 또 녀석이 두리번두리번 작은 눈을 반짝이며 살폈다. 다시 시작된 녀석의 꽃 꺾기에 또 데이지 한 줄기가 쥐구멍으로 끌려들어갔다. 놀랍다. 신기하다.

그런데 녀석의 꽃 꺾기는 먹기 위한 걸까? 아니면, 꽃을 탐하는 녀석에게 봄에 여친이라도 생긴 걸까? 새싹을 잘라먹다 못해 이제는 꽃줄기 채 꺾어가는 녀석의 행동은 보는 내게는 상식 밖의 이상한 것이었다. 하지만, 녀석에게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쥐구멍 안쪽 어딘가에 있을 녀석의 집에는 봄꽃 향기가 그득할지 모른다. 그리고 아직 한 마리 밖에 보이지 않지만, 반세기 견뎌온 건물 아래에 또 다른 세계를 이룬 어딘가에 녀석의 짝도 있을 것이다.

버린 스티로폼 박스를 주워다 이것저것 심어 놓았다. 상추를 딸 때면 서너닢 녀석의 쥐구멍 앞에 놓아준다. 그렇잖으면 화단이 녀석의 텃밭이 될 수도 있겠다는 걱정에서다. 가끔 길고양이 한 마리가 머물며 토실한 녀석을 탐하는 걸 보았다. 무사하기를. 그래서 녀석에게 지어준 우리들의 별명은 '꽃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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