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향 충북, 안녕!

2017.05.29 14:11:06

변혜정

충북도 여성정책관

내일이면 나는 이 곳에 없다. 청아하고 따듯한 이 공기를 더 이상 느낄 수 없다. 미세먼지가 많다 해도 이상하게도 신선하게 느끼고 살았다.

관사에서 나와 충북연구원, 중앙초등학교 옆길로 느긋하고 천천히 걸어도 7분이면 도청에 도착한다. 도청에 들어서면 느티나무, 단풍나무, 옥잠화, 목련, 창포, 그리고 이름 모를 풀들과 꽃들이 항상 반긴다. 개나리와 목련이 빨리 지는 것도 알았다. 봄여름가을겨울에 따라 녹색의 변화도 느꼈다. 인공적이라고 처음에는 멋쩍었던, 한껏 멋을 낸 연못과 정자의 그늘까지 아름답다. 벌써 그립다. 보고 싶다.

5년 전 연고 없는 충북에 왔다. 그 전에 속리산 1박 여행 그리고 강의와 평가로 딱 네 번 충북에 왔었다. 무식하게도 도청소재지 교육의 도시 청주와 충주 사과 외에는 별로 충북을 알지 못했다. 솔직히 나에게 충북은 그리 매력적이지 않았다.

그런데 이렇게 오래 동안, 5년이나 살았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래도 속을 표현하지 않는다는 충북 사람들과도 조금 친해 졌다. 서울 가서도 연락할 친구도 생겼다. 지인하나 없었지만 많은 분들이 친절하고 따듯했다. 정말 고맙다.

그러나 외로웠다. 처음에는 불러주는 다양한 모임에 거의 매일 갔지만 주말에 집에 가는 나의 패턴으로는 온전히 충북 사람이 되기는 힘들었다. 초등학교 모임부터 띠 동갑모임까지 10개 이상 씩의 모임 등과 수 십 년 동안 관계 안에서 그들은 서로 너무도 많은 것을 공유했다.

사람들 사이에 맺어지는 관계라는 '연고(緣故)'가 무엇인지 알았다. 연고라는 끈끈한 연대의 힘과 이방인으로서 배타적인 감정도 동시에 배웠다. 다문화 여성들이 느낄 것 같은 외로움이 가끔씩 생각났다.

그러면서 공무원이 무엇을 하는지도 차츰 배워 갔다. 과거 정책 자문을 수없이 했지만 솔직히 공무원에게 그렇게 많이 기대하지 않았다. 지 살길 찾느라 정신없는 국민들이 과연 공무원이 어떤 일을 하는지 알 것인지. '우렁각시'처럼 당연히 할 일을 한 것이리라 생각하겠지. 그러나 존재감이 없었던 공무원이 정말 애쓰는 것을 보았다.

특히 여성정책을 담당하는 여성공무원으로 일하면서 정말 할 말이 많다. 여성운동가, 여성학자보다 여성공무원은 정말 힘들다. 꾹 참고 견디는 것을 배웠다. 비굴하지 않게 협상하는 것도 조금 알았다.

30년 이상 씩 일하는 선배공무원들과 비교할 수 없는, 5년의 짧은 경험이지만 시간을 들여 정성스럽게 이 경험을 기억하고 싶다. 이제까지 배운 것, 더 배울 것 그리고 '지역에서의 여성문제'에 대해 말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고향' 충북을 위한 것이리라.

고향이란 '내가 태어나서 자란 곳', 또는 '조상 대대로 살아온 곳'이라는 누구나 아는 설명도 있다. 그러나 '마음속에 깊이 간직한 그립고 정든 곳'이라는 뜻도 있다. 충북은 나에게 그런 곳이다.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이제까지 고향 개념은 없었다. 일로 만나는 사람들은 대체로 전공이나 학번을 물었지 고향을 서로 묻지 않았다. 그만큼 내가 이동하지 않고 한 곳에서 살았다는 반증이다. 그러나 이제 나에게도 '마음속의 고향'이 생겼다.

정말로 내 고향 충북이 더 잘 살고 더 강해졌으면 좋겠다. 또 음식이나, 관광지, 산업 뿐 아니라 충북만의 독특한 색깔이 있었으면 좋겠다. 성별, 연령, 지역에 관계없이 민과 관이 더 많이 소통하면 좋겠다. 특히 여성들이 서로 간의 차이를 인정하면서 한 목소리를 내면 좋겠다.

그래서 명절 때 후손들이 고향을 방문하듯이 여성들이 행복한 새로운 명절-충북여성들의 생일(?)에 고향, 충북에 꼭 오고 싶다. 온 몸과 마음에 충북을 깊이 기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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