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포지교(管鮑之交)

2017.06.01 13:30:18

오문갑

세명대학교 글로벌경영학부 교수

어제의 친구가 오늘은 적이 되고 오늘의 적이 내일은 친구가 되는 세상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친구의 우정에 대해 세 종류로 분류했는데, 그 첫째는 쾌락을 목적으로 만나는 친구와의 우정이며, 둘째는 서로 필요에 의해서 만나는 친구와의 우정, 셋째는 덕(德)을 목적으로 만나는 친구와의 우정으로 나눴다.

여기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어떤 이익을 위해서는 악한 사람들에게도 우정이 존재한다고 했으며, 그뿐만 아니라 악한 사람과 선한 사람 또는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사람끼리의 우정도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근대 철학의 아버지라고 불리었던 칸트 역시 우정을 세 가지로 나누었다. 필요의 우정, 취미의 우정, 심정의 우정이 그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우정의 최고 가치를 덕(德)에 둔데 비해 칸트는 그것을 심정(心情)에 두었다. 심정이 인간의 가장 순수한 마음인 진정(眞精)이듯이 칸트는 곧 진정한 우정이 아닌 것은 참된 우정이 아니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아마 아리스토텔레스와 칸트는 「관포지교(管鮑之交)」의 우정을 모델로 그렸을 것이다.

「관포지교(管鮑之交)」의 유래는 춘추시대 초, 제나라 태생인 관중은 죽마지우(竹馬之友)인 포숙아와 둘도 없는 친구로 지냈으며 포숙아도 관중의 의리와 뛰어난 재능을 높이 평가했다. 그러나 관중은 집안이 무척 가난했기 때문에 이익분배가 있을 때마다 간혹 포숙아를 속였으며 포숙아는 관중을 이해하고 모르는 척하며 덮어주었다. 그 후 세월이 지나면서 관중은 제나라의 공자 규(糾)를 섬기게 되었고 포숙아는 규의 동생인 소백(小白)을 모셨는데, 그것도 잠시 뿐 이들은 규와 소백의 왕권다툼으로 인해 갈라서는 처지가 되었다.

소백은 포숙아의 협력에 힘입어 왕위에 올라 환공(桓公)이 되면서 경쟁자였던 규를 죽이고 관중을 잡아들였다. 그리고 환공이 관중을 죽이려고 하자 포숙아는 "환공께서 제나라를 다스리는데 만족하신다면 저로서도 충분히 받들 수 있지만 만약 천하를 다 얻으시려고 한다면 저 혼자의 힘으로는 벅찹니다. 그러나 관중을 기용하신다면 저는 관중과 더불어 천하통일에 전력 질주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도량과 식견이 넓은 환공은 창업공신 포숙아의 진언을 받아들여 관중의 죄를 사면해 주고 대부라는 벼슬을 주어 정치를 맡겼다. 그러자 관중은 대정치가다운 수완을 발휘해 얼마 후에 환공으로 하여금 춘추시대의 패자(霸者)가 되게끔 만들었다.

이것은 물론 환공의 관용과 관중의 능력이 서로 맞아떨어진 결과에 의해 얻어진 성공이었으며, 그 출발점은 포숙아의 관중에 대한 변함없는 우정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이것을 잘 알고 있는 관중은 훗날 포숙아의 의리에 대해 "나를 낳아주신 분은 부모님이지만 진정으로 나를 알아준 사람은 포숙아였다" 라고 했다 .

이렇게 관중에게 의리를 지킨 포숙아는 천거한 뒤 그 자신은 관중보다 아랫자리에 들어가 경의를 표했으며, 그 후 포숙아의 자손은 대대로 제나라에서 녹을 받고 10여 대에 걸쳐 이름 있는 대부로서 세상에 명성을 떨쳤다 한다. 이것이 바로 「관포지교(管鮑之交)」의 정의론인데, 그 후 사람들은 관중의 현명함 보다는 오히려 포숙아의 넓고 넓은 안목에 후한 점수를 매겼다.

"성실하지 못한 친구를 가질 바에는 차라리 적을 가지는 편이 낫다. 그것은 바로 성실하지 못한 친구처럼 위험한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라는 셰익스피어의 명언을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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