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이 풀어가는 미스터리한 현대미술

22일부터 청주시립대청호미술관 기획전 '끝없는 밤'
꼴라주회화·도서 아카이브 등 현대의 공포·불안 담겨

2017.12.21 17:32:17

오세경 작가의 작품 '하얀나비'.

[충북일보] 태양이 지평선 너머 모습을 감춘다. 비로소 밤이다. 분주했던 도심의 불빛이 하나 둘 꺼지면 그림자가 고개를 든다.

가로등 밑에 모인 그들 사이 은밀한 대화가 오간다. 상상력이 흐르는 밤이다. 미스터리가 탄생하는 시간이다.

일년 중 밤이 가장 길다는 22일 동짓날 청주시립대청호미술관에서 개막하는 미디어아트 주제기획전 '끝없는 밤'은 밤의 상상력이 담긴 미스터리를 보여준다.

추리의 여왕으로 불리는 영국의 추리소설가 애거서 크리스티를 오마주하며 그의 58번째 장편소설이자 영미권 가정스릴러의 대표적 소설로 평가받는 '끝없는 밤(Endless Night)'에서 모티브를 얻어 기획됐다.

이번 전시는 그녀의 소설처럼 개인 혹은 사회와 연관된 특정 사건이나 경험을 서사적으로 풀어내고, 불확실한 시대의 불안과 공포가 내재된 작가의 작품을 세 가지의 테마로 구성했다.

먼저 1전시실 3인의 작가는 어떤 허구의 사건을 설정하고 스스로 연출해 답을 찾아나간다. 작품 형식은 다르지만 내면의 불안과 삶에서 비롯된 공포가 잠재돼있다.

염지희의 꼴라주회화와 오브제설치는 사실과 허구, 모순과 역설이 뒤섞인 현시대의 숨은 욕망과 불안의 무게가 담겼다.

작가는 죽음 혹은 절망을 연상시키는 이미지와 오브제들을 가지고 기괴하고 비극적인 상황들을 극적으로 연출한다.

오세경은 본인의 삶에서 포착한 사건과 그것이 속한 사회의 이면을 극적인 연출로 화면에 옮긴다.

이번 전시에 출품한 7점의 회화 작품에 나타난 여고생은 곧 터질 것 같은 은폐된 사건을 암시하며 불안감을 증폭시킨다.

김선미 작가의 유령여행사(Ghost Tour) 네온사인.

ⓒ청주시립대청호미술관
김선미는 간척사업으로 육지가 된 섬과 새롭게 생긴 땅에 대한 이야기를 '유령여행사'라는 프로젝트로 풀어낸다.

작가는 자연상태에 있던 섬들이 육지로 변하는 모습이 본래의 모습을 잃은 채 모호한 상태로 떠도는 괴담으로 표현했다.

전시기간 섬이라는 이름만 남은 채 유령처럼 사라진 섬을 찾아 떠나는 여행객을 모집하고 전시 종료 후 신청 관람객들과 여행을 할 예정이다.

이유진 작가의 작품 퍼즐(Puzzle).

2전시실의 두 작가는 먼 타지에서 이주자로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의 근원을 찾아가는 여정을 보여준다.

불확실한 시대에 정체성을 찾는 과정은 설화 혹은 전설과 같은 내러티브로 은유되거나 분절된 언표로 나타난다.

이유진의 작품은 자신과 가족, 주변인의 삶을 관찰하고 사회, 문화적 차이에 의해 형성되는 관계에서 탄생한다.

노동과 어머니의 출산 과정을 비유한 작품 '태몽'을 비롯해 자전적 이야기가 담긴 드로잉과 오브제들을 통해 그의 삶과 철학을 추리해볼 수 있다.

안유리의 작업세계는 말과 언어 사이, 혹은 장소와 이동의 사이 충돌하는 분절과 간극에서 출발한다.

이주과정에서 목도한 몇 가지의 사건들을 바탕으로 여러 시간들이 교차하며 빚어내는 현상들은 그가 주관적 경험으로 체득한 호흡이 담겨있다.

정지나 작가의 작품 '303'.

마지막으로 3전시실은 단편영화들과 가정스릴러 아카이브로 구성된다.

먼저 유수영은 최근 범죄 스릴러의 새로운 경향이자 용어로 자리잡은 '가정 스릴러' 중심의 도서 아카이브를 전시한다.

'가정스릴러'는 가정이라는 닫힌 문 뒤에서 일어나는 은밀한 폭력, 불편한 진실을 다루는 범죄들이 주 내용에 담고 있다.

여성이 처한 현실과 사회적 부조리를 여성의 관점에서 쓴 소설 등을 관람객이 전시장에서 열람할 수 있다.

함혜경은 주로 일상에서 접하는 이야기를 표류하는 이미지들로 재구성해 새로운 내러티브를 만든다.

'나이트피플'은 강남아파트에 거주하던 한 여성의 실종사건에 대해 두 형사가 실종 전 흔적을 짚어가며 진실을 찾아간다.

작품은 결국 진실이 은폐되고 미제로 끝난 사건이 괴담으로 남게 되는 현실의 모순을 반영한다.

끝으로 이번 전시와 연계해 지난 9월에 개최한 '2017 실험영화변주곡'의 두 편의 영화를 상영한다.

'환영'과 '기억'을 키워드로 제작한 조영천, 정지나의 실험영화 '모우', '303'은 음악가 리비게쉬와 레인보우99의 라이브 연주로 공연했다. 전시에서는 단편영화로 편집해 상영한다.

한편 이번 전시를 기념해 22일 개막식 진행과 함께 재즈음악을 미스터리한 분위기로 편곡한 재즈트리오밴드 공연이 있을 예정이다.

또 전시기간 중에는 미스터리 낭독회, 추리소설 독후감대회 등 다양한 이벤트 및 연계행사를 운영할 예정이다.

내년 2월 18일까지 화~일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 운영하며 기타 자세한 사항은 청주시립대청호미술관 홈페이지에서 확인하면 된다.

/ 강병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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