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질기의(護疾忌醫)와 'fail'

2008.12.28 16:57:18

한해의 교차점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계주경기에서 바통 터치하듯 전력을 다해 질주한 08년을 다 보내고 이제 새로운 주자인 09년의 폭발력 넘치는 주행을 기대하는 시간이 오고 있는 것이다.매년 그렇지만 새월을 뒤돌아 볼 때 '뭔가 해놓았다'는 성취감 보다는 미흡함이 자리를 잡고, 그래서 막연한 마음으로 새로운 한 해를 기다리게 된다.통속적이기긴 하지만 이 시점에서 지난 360여일을 반추해보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교육전문지 교수신문이 해마다 연말이면 한해의 다사다난함을 함축적으로 나타내는 사자성어를 선정하는데 올해는 '호질기의'(護疾忌醫)가 뽑혔다. 이 말은 중국 북송시대 유학자 주돈이가 통서에서 "요즘 사람들은 잘못이 있어도 다른 사람들이 바로 잡아주는 것을 기뻐하지 않는다. 이는 마치 병을 감싸안아 숨기면서 의원을 기피해 자기 몸을 망치면서도 깨닫지 못하는 것과 같다"고 한데서 비롯됐다. 이를 한국 사회에 투영해 보면 '미국산 쇠고기 파문과 미국발 금융위기를 대처하는 정부 대응방식이 국민의 비판과 충고를 받아들이려는 자세가 부족한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고 따라서 '문제가 더 커지기 전에 얼른 귀를 열고 국민과 전문가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경고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올 초 새정부가 출범하며 무슨일이 있더라도 "경제는 꼭 살리겠다"고 장담한 대통령과 정부, 그리고 여당은 4.9총선의 압승과 쇠고기 수입으로 촉발된 촛불시위, 미국발 금융위기 등 의 대형 현안 들의 대처과정에서 대화와 양보 보다는 독선을, 국민의 충고를 받아들이기 보다는 우이독경 식의 '마이웨이'로 말로만의 소통행보를 보여온 게 사실이다. 두번에 걸친 대통령의 대국민사과도 별 약발이 먹혀들지 않고 , 비록 대통령의 잘못이 아니다 하더라도 외환위기때 보다도 훨씬 더 혹독한 겨울을 맞고 있는 대다수 국민들의 경제사정을 호전시키려는 눈높이의 통치와 정치력의 와닿음이 없어 보이는 것이 세밑의 풍경이다. 그것의 뿌리는 그네들은 인정하기 싫겠지만 '고소영·강부자' 내각이라는 지탄을 받은 새정부 조각에서 출발 했으며 서민 경제 운운 해도 정책의 지향점은 대기업, 부유층 프렌들리로 향한다는 데 있다. 충청권에 심대한 타격을 주는 수도권규제완화 정책도 맥락을 같이 한다고 봐야 한다.

잠깐 미국으로 눈을 돌려보자.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올해의 38개 단어중에는 현실을 반영하듯 경제에 관한 것이 많았다.그중 눈길을 끄는 것은 fail(실패하다)이라는 말이다. fail은 문법상으로 동사이다. 그러나 금융위기와 관련된 많은 사람들이 fail을 명사로 사용을 하고 있어 평범한 이 단어를 화제단어로 선정했다고 한다. failure(실패)라고 하는 명사가 엄연히 있지만 규모가 '큰 실패'를 지칭할 때 이 fail을 쓴다고 한다. 이는 곧 그동안 세계경제를 쥐고 흔들었던 굴지의 글로벌 기업들이 연이어 도산하거나 파산 위기에 처한' 미국의 실패'를 적나라하게 시사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은 사상 처음으로 흑인대통령에 당선된 오바마가 선거운동 과정에서 슬로건으로 내건 변화(change)로 질곡의 늪을 탈출하려는 분위기를 띄우고 있다. 변화는 곧 한국인들에게도 귀에 익은 '우리는 할 수 있다(Yes, We Can)'로 에스컬레이트가 돼 미국인들은 어둠속에 서도 희망의 불빛을 기대하고 있다.

우리에게도 그런 한 때 가 없었던 게 아니다. 불과 1년 전 새 대통령이 당선되고 경제회복에 기치를 내걸어 지지율이 50%를 넘을때만 해도 통합의 리더십을 바탕으로 선진국 그룹에 편입되는 발판이 마련되는 줄 알았지만 작금의 성적표는 과거로의 후퇴이다. 변화와 개혁을 추구하는 것은 오바마와 비슷했지만 '우리는 할 수 있다'라는 범 국민적지지라는 동력을 얻는데 실패한 탓이다. 이대통령의 지지율이 20% 안팎인 것이 이를 입증하고 있다.더 암울한 것은 새해가 코 앞인데도 주변에는 현실회피와 패배주의가 더 짙어진다는 것이다.

현 정부들어 국민이 체감하는 경제행복지수가 21점이나 떨어지고 분배형편지수 역시 추락해 계층간 양극화가 심화됐다(시민행동 조사 결과)는 것은 위정자들이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잘 제시하고 있다. 그 해법은 누구에게 묻지 않아도 그들 스스로가 잘 알고 있으리라 믿는다. 모두들 송구영신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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