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답'을 얻으려면 스님에게 잘 보여야 했다

2014.04.29 14:28:03

조혁연 대기자

조선도 조용조(租庸調)의 원칙에 따라 농토를 가진 농민들에게는 세를 부과했다. 조선시대 이 제도는 답험손실법(踏驗損失法)-공법(貢法)-영정법(永定法)-비총법(比總法) 순으로 변했다.
 

이중 답험손실법은 글자 그대로 '답험'과 '손실'이 합쳐진 표현이다. 고려 후기와 조선 초기의 조정은 농사의 작황을 현지에 나가 집적 조사하는 것을 '답험', 그리고 손실법은 작황에 따라 등급을 메기는 것을 의미했다.
 

이 제도는 불합리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가령 어느 지역의 농토는 가뭄 때문에 작황에 안 좋아 'C' 등급의 수확을 했다. 그러나 현지에 조사를 나간 관리는 'A' 등급이라고 판정하는 경우가 부지기였다. 세금을 더 걷기위함이었다.
 

세종은 과거시험 문제로 출제할 정도로 즉위 초부터 토지세에 대해 고민했다. 이렇게 해서 탄생하는 것이 토질의 전분6등법, 풍흉의 연분9등법으로 잘 알려진 '공법'(貢法)이다. 세종 즉위 3년(1421) 대신 김점(金漸)이 상소를 했다.
 

"한 도(道)의 일은 오로지 감사에게 위임되었는데, 유독 손실을 답험하는 일에도 별도로 경차관을 보내게 하였으나, 경차관이 된 사람은 겨우 복결(卜結)의 수효만 알 뿐이므로, 감고(監考)하는 서원(書員)이 제 마음대로 가감하게 되니, 백성이 그 폐해를 받게 됩니다."-<세종실록 3년 7월 28일자>
 

'현재'를 살고 있는 법주사 사하촌 주민들에게도 답험손실법을 적용했다. 다만 용어가 어려워서인지 주민들은 봉건시대부터 존재하던 이 제도를 비슷한 발음인 '답품'이라고 불렀다.
 

법주사는 그해의 농사 작황을 조사하여 그때그때 임대료를 부과했다. 주민들의 말을 빌면 그 비율은 '이팔제'로, 법주사가 수확량의 20%를 가져갔다. 도지제(賭地制) 하에서 지주가 40~60%를 가져갔던 것을 감안하면 다소 저렴한 편이었다.

현재 법주사 사하촌 모습

그렇다치더라도 땅주인 법주사와 임차인 사하촌 주민들 사이에는 '갑을' 관계가 성립됐다. 따라서 사하촌 주민들은 법주사 스님에게 잘 보여야만 상답(上畓), 즉 좋은 경지를 차지할 수 있었다. 국립민속박물관의 구술 청취에서 사하촌 한 주민은 이렇게 말했다.
 

"옛날에 대처승이 있을 때 겨울 내 퍼 멕이면 그 이듬해 상답같이 좋은 논은 임자가 바뀌었다"
 

70년대까지만 해도 비료가 매우 귀했다. 따라서 법주사 경작지를 답험하던 사하촌 주민들은 소만을 전후해 참나무 햇순을 잘라다가 비료로 사용했다. 현재는 현물로 임대료를 내던 답품 풍습은 사라지고, 법주사 종무소에서 균일화된 임대료를 부과하고 있다.
 

임대료는 농지뿐만 아니라 건물에도 부과됐고 그 명칭은 터에 내는 도지라는 뜻에서 '텃도지'라고 불리었다. 과거에는 역시 현물인 벼와 콩으로 냈다. 목좋은 곡은 평당 백미 3되, 뒷골목은 2되, 여관단지는 평당 1되반, 취락지구는 평당 1되를 냈다.
 

그러나 이 제도는 경작지의 답품제도만큼이나 불합리한 면이 있었다. 쌀가격이 자주 바뀌면서 때로는 법주사가, 때로는 사하촌 주민들이 불만을 터트렸다. 따라서 1990년대부터 일년에 5, 10월 두 번 현금으로 내고 있다. 다만 비율이 달라 5월에 60%, 10월에 40%를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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