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송한 생일상

2014.08.06 13:22:24

정의숙

운천초등학교 교감

뜨거운 햇볕에 더위가 무르익어 가고 방학도 한창이다. 선생님들이 평상시에는 여러 가지 공문 처리와 학급아이들을 돌보느라 서로 이야기할 새도 없었는데, 방학 때 일직을 하니 학급아이들 이야기, 동아리 활동 이야기, 운동 이야기 등 여러 가지 이야기를 쏟아 놓으신다. 한 선생님이

"경기도의 모 학교에서는 가정에서 물 이외에는 아무대접도 받지 않는 것을 규칙으로 하여가정방문을 부활시켰는데 학교폭력예방 및 학력향상에 효과가 좋대요"

라고 말씀하시자 20여년 전 정연이네 집에 갔던 일이 생각났다 .

"띠리리릭 띠리리릭~"

그 해 여름방학에 일직을 하는데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정연이네 어머님께서 긴히 드릴 말씀이 있으니 퇴근길에 집에 들러달라며 지리를 알려 주셨다. 퇴근 준비를 서둘러 마치고 정연이네로 가는 버스를 탔다. 버스를 타는 내내 '긴히 하실 말씀이 뭘까? 방학숙제에 대하여 물어 보시려나? 아이의 1학기 생활을 물으시려나? 성적표는 나눠주었는데?', 그리고 '내가 무슨 실수 한 일이 있나? 아니면 내게 서운한 일이 있으신 걸까?' 등 별의 별 생각을 다하며 정연이네 집을 방문했다. 마중 나오신 어머님을 따라 조심스레 집 안으로 들어가니,

"선상님, 어서 오셔유. 이 누추한 곳을 오시느라 힘드셨쥬? 어서 올라오셔유"

하시며 할머니를 비록한 가족들이 반겨주셨다. 대청마루에는 커다란 상에 미역국, 불고기 갈비 잡채 등 우리 할아버지 생신상에 올라왔던 음식들이 가득한 잔치상이 놓여 있었다. 버스에서 가졌던 여러 가지 궁금증들을 내려놓으며 오늘이 무슨 날이냐고 여쭈어 보니 가족들이 이구동성으로,

"선생님 생신날이잖아요!"

하셨다. 그러고는 나를 하얀 고봉밥이 있는 가운데 자리에 앉히시고는 많이 잡수시란다. 정연이가 오늘이 선생님 생신이라 하기에 어제 읍내에 나가서 시장을 보아 생일상을 준비하셨다 한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아이들 사이에 그 날이 내 생일로 알려져 있었다는 것이다.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선생님을 바라보는 정연이와 흐뭇한 얼굴로 음식을 권하시는 학부모님, 더욱이 많이 연로하신 할머니 앞에서, 오늘은 내 생일이 아니라는 말도 못하고 교단에서 제일 황송한 생일상을 받게 되었다.

지금 다시 떠올려도 연로하신 할머님 앞에서 송구한 일이지만, 선생님을 챙기려는 아이들의 마음과 선생님이라는 존재 자체에 지극한 존경과 사랑으로 대하시던 학부모님, 그리고 연로하신 할머님의 마음을 생각하면 감사를 넘어 숭고한 느낌이다.

요즘 학교에선 인성교육을 강조하고 있다. 외동자녀이거나 1,2명의 형제자매를 둔 학생들이 미래사회의 주인공들로 살아가는데 필요하고 학교폭력예방에도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담임선생님을 비롯한 여러 선생님들이 교과와 연계하여 교육하고, 창의적체험활동시간을 활용하여 다양한 체험을 하는 등 여러 가지 방법으로 힘쓰고 있다. 학교와 가정이 소통을 통하여 아이들을 사랑하는 선생님들의 마음과 가정에서 샘솟는 순수한 존경심이 더해지면 학생들의 인성교육은 저절로 이루어질 것이다.


이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

<저작권자 충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PC버전으로 보기

충북일보 / 등록번호 : 충북 아00291 / 등록일 : 2023년 3월 20일 발행인 : (주)충북일보 연경환 / 편집인 : 함우석 / 발행일 : 2003년2월 21일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무심서로 715 전화 : 043-277-2114 팩스 : 043-277-0307
ⓒ충북일보(www.inews365.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Copyright by inews365.com, In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