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치(音治)의 바람

2017.05.21 16:04:52

김병규

상당고 교장·교육학박사

공부가 끝나갈 봄날에 인적 휑한 연구실에 동그마니 있는데 생각이 줄을 잇는다. '공부 끝나면 뭐하지· 그래! 그동안 공부하느라 엄두도 못 냈던 여행도 하고 고불선생처럼 대금을 항시 잡아 스스로 즐겨 보리라 마음먹었다. 중학교 때까지는 무대에 서 봤으나 그 뒤에는 어쩌다 노래방에만 가도 가슴이 울렁거리니 내게 음악적 재능이 있다고는 할 수 없는 터이다. 그러나 가까이 접하기만 해도 음악 덕에 향기로운 경험이 될 듯하였다.

이렇게 시작한 것이 지금 나의 반려처럼 가까이 있는 대금이다. 그닥 잘 불지도 못하나 이로써 국악의 운율을 깨우치는 계기가 되었다. 대금을 잡고 나서야 우리의 음악이 깊고 오묘한 이치를 갖고 있음에 놀랐다. 음이 음과 악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조선왕조는 인(仁)을 바탕으로 한 유가 사상에서 출발하였기에 예(禮)와 악(樂)은 치정의 요체요 국시로 가름되고 있다. 예는 예의범절이요 악은 음악을 가리킨다. 여기에는 인간의 가치를 최고로 하는 형이상학적인 상징성과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음악은 인간 사회의 부드러운 조화를 추구한다. 인간은 조화를 우선해야 하며 서로 화목하게 살아야 한다. 인간과 자연, 그리고 우주 삼라만상도 마찬가지로 서로 조화롭게 살아야 한다. 이것이 음악이 바라는 세상 모습이다.

예악으로 나라를 통치하려는 의도는 성현의 [악학궤범] 서문에 잘 드러나 있다.

악이란 하늘에서 나와 사람에게 붙인 것이요,

허에서 발하여 자연에게 이루어지는 것이니

사람의 마음으로 하여금 느끼게 하여 혈맥을 뛰게 하고 정신을 유통케 하는 것이다. (중략) 인도함에는 정과 사와 다름이 있으니, 풍속의 성쇠 또한 여기에 달렸다.

이것이 악의 도가 백성을 다스리는데 크게 사용되는 것이다.

공자는 29세 때 약관인 사양자에게서 금을 배웠다. 공자가 금을 배우려 한 것은 곡조나 이치 같은 기교가 아니라 곡을 만든 사람의 마음까지 통찰해 보려는 것이었다. 공자가 제나라로 망명하였을 때 순임금의 소무라는 곡을 듣고 석 달 동안이나 고기 맛을 잊을 정도로 심취하였고, '음악이 이런 경지에 이르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고 감탄한 것도 소를 통해 순임금의 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논어 술이편)'

위대한 음악은 천지와 같은 어울림이 되고, 위대한 예는 천지와 같은 절조를 이룬다(大樂與天地同和 大禮與天地同節) 음악이란 천지의 조화이요, 예란 천지의 질서이다.(樂者天地之和也 禮者天地之序也) 그러므로 공자도 음악을 인간 완성의 마지막 단계인 문채(文彩)로 보았다.

이렇듯 음악은 안으로부터 나오고 예는 밖으로부터 이루어진다. 음악은 안에서부터 나오기 때문에 고요하고 부드러우며, 밖에서부터 이루어지는 예는 아름다운 광채를 나타내는 특성이 있다. 음악이 발효하면 원망이 없어지고, 예가 효력을 발하면 다툼이 사라진다. 서로 예를 갖추고 양보하여 원만한 세상이 된다면 이것이 바로 예악의 효과인 셈이다. 그래서 왕이 된 사람은 공업을 이룩한 뒤에 음악을 작곡하고, 다스림이 안정되면 예를 만드는 것이다.

이야말로 음의 고저장단도 제대로 못 맞추는 음치(音癡)가 아니라 음악으로 나를 다스리고 남을 다스리며 나아가서는 나라를 조화롭게 하는 음치(音治)이다. 작금 한류라 하여 우리 음악이 세계를 풍미하니, 우리의 문화가 세계를 압도하는 징표로 보여 흐뭇하고 자랑스럽다. 그런데 이 풍조도 퇴폐적이거나 음일한 음악이 아닌 예악을 기반으로 하고, 건실하고 굳건한 조화를 지향할 때에 비로소 예악이 고루 안정된 세상 다스림으로 소용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다음에야 원 히트 원더가 아닌 롱런하는 한류로 계속 자랑할 수 있을 것 같은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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