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초였을까

2014.05.14 16:17:45

송보영

충북여성문인협회장

뽑아 버릴까 말까. 찾아온 봄날을 시샘하는 듯 떠나기 싫어 머뭇거리고 있는 잿빛 언저리를 벗겨내며 수줍게 트이는 봄 햇살을 따라 일찌감치 피어나는 진보라 빛 작은 들꽃. 자리다툼에서 밀리기라도 할까 봐서인지 애써 가꾸는 화초들 틈새를 비집고 우후죽순처럼 돋아나 제 식구 불리기에 여념이 없는 그놈들. 그것도 모자라 지난봄 내내 바람의 힘을 빌려 퍼트려 놓은 씨앗들까지도 연신 새싹을 피워 내며 나의 꽃밭을 어지럽히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심고 가꾸는 화초들보다 저들의 세력이 더욱 왕성 해 지는 것은 아닌가 싶어 염려스럽기만 하다.

그럼에도 오늘도 나는 저들을 뽑아 버려야 하나 그냥 두어야 하나를 두고 갈등하고 있다. 그냥 두자니 머지않아 온통 저들의 세상이 될 것은 빤한 일이고 뽑아 버리자니 눈길이 마주칠 때마다 작은 꽃잎을 흔들며 눈웃음치는 모습이 너무 고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망설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선택을 해야 한다. 아예 이곳을 저들의 자리로 내어 주고 말까. 아니면 모두 뽑아 버릴까를.

선택.

문득 선택이라고 하는 어휘가 커다란 포물선을 그리며 파도처럼 내 안으로 밀려온다. 그냥 스쳐 지나갈 수밖에 없는 수많은 관계 속에서 그 무엇인가를, 그 누군가를 선택하고, 택함을 받는다고 하는 것은 얼마나 아름답고 귀한 것인가 싶어서다. 삶의 길목에 설 때마다 결정하지 않으면 안 되는 수많은 일들 속에서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의 모습이 결정된다.

육신의 강건함을 위해 무엇을 먹을 것인가. 어떤 일을 하며 살아갈 것인가. 어떤 벗을 만나고 어떤 반려자를 선택할 것인가. 등을 두고 우리는 끊임없이 갈등하며 고뇌한다. 바른 먹을거리를 먹어 주었을 때 우리의 몸이 건강하듯이 바른 품성을 지닌 벗을 만나면 더불어 올곧은 길로 가게 되고 그렇지 못한 벗을 만나게 되면 일생을 그르치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루며 평생을 함께할 배우자를 택하는 일은 또 어떤 것일까. 아마도 이보다 더 귀하고 아름다운 선택은 다시 없으리라. 푸르고 향기 나는 젊은 날에 내가 그를 택하고 내가 그에게 택함을 받아 한 몸을 이룬다고 하는 것은 참으로 귀하고 아름다운 축복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창조주의 섭리에 의해 맺어진 이 귀한 인연을 지켜내기 위해 우리는 얼마나 애쓰고 힘쓰며 참아내고 있는가를 생각해 본다. 내가 가꾸고 있는 인연의 꽃밭에 햇살은 잘 들고 있는지, 병충해를 입고 있는 것은 아닌지, 혹시라도 사랑과 희생이라고 하는 영양이 부족해 본래의 제 빛깔을 잃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은 너무 빨리 변해가는 것들을 따라잡느라 늘 숨이 차다. 자족하지 못하고 상대적 빈곤감에 시달리며 새로운 것을 추구하다보니 욕망의 덫에 걸려 때로는 심히 목이 마르다. 타는 갈증을 해소하려는 발버둥으로 해 온갖 부조리가 빚어지기도 한다. 이런 아픈 현실 속에서 허우적거리느라 미처 돌아보지 못한 사이 내가 가꾸어 가야할 정원안의 생명들이 나도 모르는 사이 병이 들어 회복 불가능의 상태까지 이르러 귀하고 아름다운 인연의 고리들이 무참하게 짓밟히고 끊어져 버리는 것은 아닌지 모른다.

가끔은 느림의 여유를 가지고 아주 조용히 내 안을 들여다보는 것은 어떨까. 그러노라면 내가 선택해 나와 더불어 살아가고 있는 소중한 것들이 토해내는 아주 작은 신음을 들을 수도 있으리라.

이제 나를 갈등의 늪에 빠트렸던 그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두고 결단을 내리기로 했다. 이곳저곳에 무수히 흩어져 있는 저들을 한 곳으로 모아 함께 모여 살아 갈 터전을 만들어 주기로 한 것이다. 이왕에 그들을 택한 이상 잘 자라 아름다운 꽃을 피워 낼 수 있도록 다른 잡초들도 뽑아주고 사랑도 듬뿍 주리라.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지 않았을 때 그들은 꽃밭을 어지럽히는 잡초에 지나지 않았지만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으니 적어도 나의 정원에서 만큼은 나와 더불어 꽃으로 살게 될 것이기에.

틈나는 대로 작은 나무 팻말이라도 하나 세워 주어야겠다. 이곳은 '제비꽃들의 보금자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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