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기사

이 기사는 1번 공유됐고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송보영

충북여성문인협회장

간밤에 또 잠을 설치고 말았다. 며칠 전에는 지인의 김장김치가 짜면 어떻게 하나싶어 깊은 잠을 잘 수가 없었고, 지난밤엔 주문해준 절임배추가 좋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염려로 선잠을 잤다.

아파트에서 배추를 절여 김장을 하기엔 불편하니 마당 넓은 우리 농원에서 김장을 담가 가라고 지인을 부추긴 것이 화근이었다. 출타했다 돌아와 씻어 놓은 배추를 보니 얌전히 누워 있어야할 놈들이 모두가 일어서서 밭으로 돌아가기 위해 한 발작씩 내 딛을 품새였다. 그것을 그냥 보고만 있을 내가 아닌지라 그들을 도로 눕혀 꽃소금을 살짝 뿌려 놓고는 지인에게 연락을 했다. 배추가 생 배추라는 연락을 받은 지인은 준비해 놓은 양념에 다시 젓갈을 듬뿍 넣어 아주 짭짤하게 만들어가지고 온 것이 아닌가. 내 것이 아닌 이상 그냥 두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걱정거리를 사서 만든 덕분에 김치가 짜면 어떻게 하나 전전긍긍하고 있으니 기가 찬 일이다.

지난 해 우리 김치는 아주 맛이 있었다. 일 년이 지나 햇김치를 담글 때가 되었는데도 배추 줄기가 아삭아삭하니 맛깔스러웠다. 이는 온전히 배추가 좋은 덕분이라 싶어 지난해에 구입한 곳의 배추 홍보에 부산을 떤 것이 문제였다. 믿을 만한 곳이니 염려 안 해도 좋으련만 배추의 크기가 고르지 않으면 어쩌나, 간은 제대로 되었을까.등등의 염려로 잠을 설치고는 이른 아침에 그 곳으로 달려가야 했으니 이 또한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모두가 쓸데없이 넓은 오지랖이 빚어낸 결과다.

한 해가 저물어 가고 있다. 여기저기에 세모의 풍경들이 눈에 띤다. 시내 중심가에 자선냄비도 등장하고, 연탄은행을 통해 모여 진 연탄들을 나누어주는 모습들이 매스컴을 통해 비쳐지기도 한다. 이럴 때면 모두들 살기가 팍팍하다고 아우성을 치면서도 어린 아이들의 고사리 손에 들린 주전부리를 사려 했던 잔돈부터, 속곳 깊이 넣어두었던 쌈지까지 열리고, 여기에 큰 손들이 합세하여 바구니가 차고 넘친다. 그렇게 모아진 것들은 타는 갈증으로 목말라 하는 이들에게로 흘러들어 그들의 갈한 목을 축여주고, 배고픈 이들의 밥이 되어주고, 아랫목을 따뜻하게 데워 주는 연탄이 되기도 한다. 이는 모두 오지랖이 빚어낸 아름다운 결과물이다. 세상에는 나같이 별 볼일 없는 오지랖이 아닌, 어두운 곳을 밝혀 주는 등불이 되어주는 오지랖을 가진 이들이 참으로 많음을 본다. 그들이 있기에 세상은 살만하다. 가지가 풍성하고 잎이 넓은 나무가 많을수록 더위를 피 할 수 있는 그늘이 넓듯이, 따뜻한 가슴을 가진 오지랖 쟁이 들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삶의 길목에 드리운 어둠은 걷히고 밝은 햇살이 가득해 짐은 자명한 일이다.

아주 오래전 일이다. 사십 여 년 전 이야기다. 그날은 교회 김장을 담그는 날이었다. 걸친 누더기 위로 금방이라도 땟국이 줄줄 흐를 것 같은 걸인 하나가 들어와 시장하다기에 별 생각 없이 아주 간단한 음식 몇 가지를 작은 소반에 차려 내었다. 그 때 마침 외출했다 돌아오신 목사님이 그것을 보시고는"손 대접하기를 그리하면 어쩌느냐" 시며 다시 상을 봐오게 하신 뒤 함께 식사를 하시는 것이었다. 그 상황도 내가 보기에는 놀라운 일인데 점심상을 물리고 그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시던 목사님이 느닷없이 신고 있던 양말을 벗어 맨발인 걸인에게 주는 것이 아닌가. 그 때 받았던 감동은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에도 따뜻한 기억으로 내 안에 자리하고 있다.

나는 성악설 보다는 성선설을 믿고 싶어 하는 편이다. 내가 생각하는 선과 악은 행위의 선함과 악함에 관해서다. 지구상에 존재의 근원이 시작되면서 세상이 온통 악한 행위를 하는 이들로만 가득했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아마도 세월의 깊이만큼이나 악의 쓴 뿌리들이 깊게 백여 도저히 살 수 없는 세상이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보곤 한다.

텔레비전에서 떠꺼머리총각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42살의 형부터 28살의 막내까지 여섯이나 되는 총각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또 걱정이 늘어진다. 아! 저들을 어찌하면 좋을까. 글로벌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이때에 저들도 바다건너 먼 나라에 가서 어여쁜 각시 하나씩 데려오면 안 될까. 싶어 수저를 든 채 중얼거리고 있는데 남편이 냅다 핀잔을 준다. "쓸데없는 걱정은 그만하고 밥이나 드셔"라고.
이 기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관련어 선택

관련기사

배너
배너
배너

랭킹 뉴스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배너

매거진 in 충북

thumbnail 308*171

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