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학을 맞으며

2014.08.20 13:48:07

정의숙

운천초등학교 교감

이번 주에는 개학을 한 고등학교가 많고, 다음 주가 되면 초중등학교도 거의 개학을 맞는다. 이렇게 학기 초가 되면 각 학급에서는 방학동안 비어 있던 교실을 대청소를 하게 된다. 교실 바닥은 물론이고 책상 속과 사물함을 정리하고 사물함 밑이나 책꽂이 뒤쪽, 그리고 캐비넷 안과 주변 등 평소 청소를 안 하던 장소까지 반 아이들 모두 하나가 되어 구석구석 열심히 청소를 한다.

경력이 10년 조금 넘었을 때 6학년을 맡게 되었다. 새로 배정받은 교실로 가서 내 교실로 정들게 하기 위하여 청소구역을 나누고, 아이들에게 청소하는 방법을 안내하여 어느 정도 청소가 무르익었을 때였다. 교실 앞쪽의 커다란 캐비닛이 눈에 띄었다. 저 밑에 먼지가 얼마나 많을까· 생각하며 아이들과 함께 캐비닛을 낑낑거리며 옮겨놓고 바닥에 뭉글뭉글 뭉쳐있는 먼지를 떨어낸 후, 다시 제자리에 놓고 표면을 닦고 있었다. 캐비닛 중간쯤에 반쯤 떼어진 누런 종이가 눈에 거슬려 손으로 잡고 아예 떼어내려고 하는데 '나 같은 교사가 사랑하는 당신의 자녀를 맡는다면 당신은 만족하겠는가?' 라는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아이들 명찰만한, 누렇게 빛바랜 종이에 적혀있는 글귀였다. 그것도 반쯤 떼어진 채로….

난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이제 어느 정도 경력이 되었다고 어떤 일이 주어지면 '음~ 이거? 이런 건 이렇게 하면 되지, 이렇게 하는 것이 참 쉬워! 이 수업, 이렇게 하면 합리적이지.' 하면서 진정으로 아이들을 위하는 방법보다는 경력에서 나오는 합리적인 방법대로 해가며 교사로서의 전문성 함양과 진정으로 아이들을 위하는 방향에는 조금 게을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일처리를 좀 더 쉽게 할까? 어떻게 하면 아이들을 한 눈에 넣고 다스릴(?) 수 있을까? 등 꼼수(?)에 관심을 갖으려는 시기였던 것 같다.

'나 같은 교사가 사랑하는 당신의 자녀를 맡는다면 당신은 만족하겠는가· 나 같은 교사가 사랑하는 당신의 자녀를 맡는다면 당신은 만족하겠는가?' 왠지 귀에 자꾸 울리는 듯하여 청소하고 있는 아이들을 쳐다보았다. 아이들은 아무 것도 모르고 재잘대며 열심히 청소를 하고 있는데, 나는 그 뒤에 아이들의 부모님이 서 계신 듯 느껴졌다. '내 아이가 학교 가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들뜨고 설레는데, 이 아이들도 학교에 올 때 부모님들의 격려와 사랑을 담뿍 받고 여기에 모여 있겠지' 하는 생각이 들어 가슴이 뭉클했다. 그리고 그 교실을 사용했던 선생님, 그렇게 좋은 글귀를 붙여 놓으셨던 선생님께 감사했던 기억이 있다. 지금 생각해도 참 고마운 일이다. 그 글귀를 못 만났다면 난 어떤 교사가 되어 있을까?

4박 5일동안 우리 나라를 방문한 위대한 지도자인 교황은 '리더는 구성원들이 힘들 때 기댈 수 있고, 아플 때 위로 받을 수 있어야 한다' 고 하셨다. '다른 사람이 바뀌기를 바라기 전에 내가 어떤 방향으로 바뀌어야 할까 생각하고 행동하라'는 말씀도 기억난다. tv에 비치는 교황의 모습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종교지도자의 모습이 아니라, 말씀을 유창하게 많이 하려는 성공의 열매에 도취된 지도자의 모습이 아니라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에게 마음을 함께 하는 느낌을 전하는데 최선을 다하는 듯 보였다. 더욱이 '한국을 방문하게 된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다'라는 말씀을 들으며 교사인 내 마음 속에는 '교사가 아이들을 만나는 것은 이 땅에서 갖는 축복이다'로 들린다.

개학을 맞으며 우리나라를 방문해 주신 교황님을 통하여 내 아이를 맡겨도 만족할 만한 교사상, 아니 각자가 처한 위치에 대한 상을 재정립하여 볼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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