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불협(平佛協)공동대표 은해사 주지 법타스님

매사 역지사지면 세상 시끄러울 일 없어

2008.10.09 13:03:33

법타(法陀)스님은 한국 불교계의 프런티어이다. 본인 말에 의하면 최초 단독 방북 등을 비롯해 그가 세운 여러 가지 불교관련 기록은 10개가 넘는다고 한다. 청원군 미원 태생으로 초·중·고를 고향에서 마친 후 동국대학교 불교대학 인도철학과 다니던 1965년 속리산 법주사에서 득도, 2년 뒤 해인사에서 비구계를 수지했다.

미국 클레이튼 대학에서 철학박사학위를 받았으며 92년 미국에서 조국평화통일추진불교인협회를 만들어 초대 회장을 맡아 2년 뒤 조국평화통일불교협회(평불협)바꿔 현재까지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또 대구불교방송사장을 지내고 현재 운영위원장, 동국대 석림동문회 명예회장, 경실련 지도위원, 불교시민단체협의회(불민협)상임공동대표, 우리겨례하나되기운동본부 공동대표 등 시민활동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스님은 지난 1994년 김일성주석 사망 후 김주석 사망에 대한 안타까움을 평불협 회지에 실었다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돼 고초를 겪기도 했다.

현재 경북 영천의 조계종 10교구 본사인 은해사(銀海寺)주지이다. 은해사는 신라 41대 헌덕왕 원년인 서기 809년 혜철국사(惠哲國師)가 창건한 팔공산 자락의 천년고찰로 한국불교의 새벽을 일깨운 원효선사와 이두문자를 고안한 설총, 삼국유사 저자 일연스님 등 삼성현(三聖賢)을 배출한 성지이다. 인터뷰는 지난 3일 은해사 회주실에서 있었다.


-먼저 출가 하신 동기가 무엇입니까.

석교초등학교와 청주중, 청주상고를 다니며 어릴적부터 불교에 심취했어. 그래서 중학교 때 청주 용화사 불교수도원에 다녔지요. 복잡한 세상에 도사가 되는게 좋을 것 같고 정신적 지도자를 추구했다고 할까. 당시 속리산 수련대회 가서 후에 은사스님이 된 추담스님에게 중이 되고 싶다 했더니 중도 무식하면 안되니 고등학교 졸업장 가져와라 하시더군.

그래서 청주상고 1학년 때 평소 존경하던 유성종 선생님에게 내 뜻을 말씀을 드렸더니 흔쾌히 그러라고 하셔 용기백배하여 그때 결심을 했지. 또 담임이셨던 이상록선생님에게도 내 의사를 전했고. 그래서 고등학교 졸업을 하고 바로 그 다음날 졸업장을 가지고 추담스님에게 달려가 받아주십시오 했고 그 후 동국대에 진학해 제대로 공부하기 시작한 거여. 내가 용화사수도원 제 1호 중인 셈이지. 중도 정진하는데 시련이 많지만 불퇴진 하며 참고 견디어야지. 그러러면 출가동기도 좋아야 하지. 나는 하고 싶어 했으니까 말하자면 출가싸가지는 있는 셈이지.

-군사독재 시절 미국행을 결심했는데 무슨 사연이 있었나요.

무등산 원효사 주지로 있던 80년에 광주사태가 발생했지. 당시 불교대표로 홍남순 변호사 등과 함께 광주 계엄사령관을 상대로 사태수습을 논하고 했는데 그런 정국불안과 혼돈에다 종단도 불안정 하는 등 희망이 안보였지. 그래서 원효사를 떠나 불교신문사 부사장을 하며 경주 기림사 주지를 겸직하던 중 앞길을 새롭게 개척해보고자 미국으로 건너간 것이지.

-분단문제는 언제부터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입니까.

분단은 누구나 다 관심이 있겠지만 미국에가 남가주대학 교육대학원에서 공부를 하는데 처음에는 세계 성직자비교 문제 등을 연구하려다 담당교수가 자네 나라는 분단국가이니 이 문제를 다뤄보는 게 나을 것이라고 권유를 했어.

그래 나도 관심이 있던 바 그 때부터 북한자료를 모으는 등 파고 들었지. 당시 미국에서 조국통일협회라는 기독교인사 모임이 생겼는데 불교계 인사로서 유일하게 참여했지. 그런데 본국에서는 어떻게 봤는지 모르지만 불온한 단체가 아니었어. 이런 것들이 계기가 돼 89년 평양축전에도 가게 된 것이고….

-89년 처음 북한땅을 밟았을 때 어땠습니까.

내가 89년 6월26일에 홀로 평양을 갔는데 그 이유는 평소 이론적으로는 북한에 대해 무장을 했지만 현장에 대해서는 무지였지. 그래서 기대반 두려움 반 심정으로 이론과 현실의 갭을 내 눈으로 직접 보고 판단해 보고 싶어 25일 북한영사관을 찾아가 비자신청을 했는데 3시간만에 내주더구만. 그 비자를 받고서 그날 밤 여러 생각을 하느라 잠을 설쳤어. 누가 나를 기다려 주는 것도 아니고 말이지. 평양공항 도착해서는 조선불교도연맹 측에서 누군가가 나와 있을 줄 알았는데 아무도 없더구만. 당시만 해도 내가 비중있는 사람도 아니고 연락도 잘 안됐을 것이고, 그래서 공항에 3시간 동안 기다리니까 누군가 왔어.

-지금까지 방북한 횟수는 얼마나 되나요.

평양이 약 60번. 금강산 약 30번. 개성 7번 등 합하면 1백번 조금 넘을거야. 최근에 갔다 온 것은 지난 5월이고.

-지금은 북한에 가시면 영접도 나오고 하겠네요.

그럼. 내가 방북 1세대인데. 내가 고참이니 이제 많이 들 나오지. 대남관계자들 나 모르면 간첩이야. 초창기 내 파트너였던 인물이 현재 불교도연맹중앙위원회위원장(대선사)이니까. 북한 불교계의 최고위인사이지.

-97년 방북 때 사리원에 금강국수공장을 만들었는데 무슨 이유에서입니까.

내가 볼 때 통일의 큰 장애는 상호불신 이지.또 하나는 배곯으면 통일은 안되는거야. 즉 밥이 부처고 하나님이지. 그래서 국수공장 만들어 동포들 조금이라도 배를 채우게 한거요. 평양은 덜하지만 중소도시 주민들은 배를 더 곯아요.

-지금은 2군데 공장이 있다고 하던데요.

사리원 말고 평양에 하나 더 만들었지. 한달에 밀가루 60톤 정도 보내면 약 7천7백명 정도가 먹을 양인데 요즘은 밀가루 값과 환율 상승 등으로 초기의 3배정도 가격이 뛰는 바람에 약속한 양만큼 보내지 못하고 있지. 그대신 끊이지 않고 보내고는 있어. 365일로 따지면 전체 북한동포를 하루는 내가 먹여 살리는 것이나 다름없지. 북한에 가보면 미국, 중국이 북한주민 먹여 살리는 게 아니고 우리가 나서야 한다는 것 절감하지.

-언제까지 그렇게 북한을 지원할 생각입니까.

통일의 그날까지 계속할 거야. 북쪽에서 우리 이제 잘 살으니 그만 보내라 할 때까지 말이지. 그전에는 양말 , 생리대 등 다른 생필품도 받았는데 지금은 안 받는게 많아.

-공장 설립때 자본금 등은 얼마나 들었나요.

그저 몇만달러 들었다고만 해둬.

-지금까지 북한에 지원된 것을 금액으로 치면 얼마나 될까요.

공식적으로는 약 50억원 이상 될거요.

-방북때 혹시 김정일위원장 만난적은 있었나요.

김위원장을 직접 만난 적은 없고 김일성주석을 만날 때 간접 대면한 적은 있어요. 내가 볼 때는 김주석이 살아있을 때도 김정일위원장이 실제 통치를 한 것이나 다름없어요. 40년 이상 된거요.

-새정부 들어와서 남북관계가 경색된 상태인데 북한 지원에 영향이 없나요.

경색이 아니라 단절된 것이나 마찬가지지. 그렇지만 민간교류는 정부차원과 별개로 계속 되야 한다고 봐요. 싸움을 하더라도 서로 꽉 막아놓고 하는 게 아니요. 숨통을 틔워놓아야지.
(지난달 9일 국방부는 10.27법난 피해자 명예회복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을 공포했다. 10.27법난이란 1980년 당시 노태우보안사령관이 본부장이던 신군부 합동수사본부 산하 합동수사단이 불교계정화를 명분으로 조계종 스님 등 153명을 강제연행 하고 군 경병력 3만2천명을 투입해 전국 사찰과 암자 5천731곳을 수색한 불교계 탄압사건이다)

-80년 당시 10.27법난이 일어났을 때 어디에 계셨습니까.

광주 원효사 주지로 있으면서 내장사 재무를 맡고 있었지. 그런데 내장사 주지스님이 리스트에 올랐다는 것을 알고 하루 전날 미리 도피를 했어. 그랬더니 신군부가 참모인 나를 추궁한다며 보안사 친구들이 두어번 끌고갔지.

-고초는 안당했나요.

광주와 전주의 보안사로 끌려가 고초라기 보다 조사받는 과정에서 사람취급을 못 받는 인간적 망신을 당했지. 허허

-그러면 지금 당시 신군부 사람들하고 감정이 좋지 않겠군요.

나는 그들을 사람취급 안해. 전두환씨가 백담사에서 내려와 전국 본사사찰을 순례할 때 나에게도 연락이 여러차례 왔어. 하지만 내가 만나고 싶지 않고 주지하는 동안 오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거절했지. 그 사람 끝내 여기는 못 왔어.

-그렇다면 이번 국방부의 명예회복법 시행령 공포에 대해 만족하시는지요.

불만이 많아. 하지만 그 정도라도 해놓아야 하기에…. 작년 노무현정권이 호랑이를 그리려다 고양이를 그렸는데 시행령은 고양이 새끼를 그린 것이고 국방부는 생쥐를 만들었어. 국무총리산하에 명예회복심의위원회가 구성되고 피해 스님들의 명예회복과 보상절차에 들어갈 것이지만 제일 관건은 11인 이내로 구성되는 위원회 면면이지. 정부에서는 자기들이 과반이 넘는 6명으로 하고 불교계선 5명으로 하자는 얘기인데 투쟁을 해서라도 피해자들이 주축이 되도록 해야지. 첫 단추를 잘못 꿰 버렸어. 국방부가 가해자인데도 고양이 쥐 생각하는 꼴이야. 문화관광체육부가 주체가 되야 하는데. 안될라니까 내 참….

-타 종파도 피해보상 해줘야 한다고 하셨지요.

물론이지. 조계종 스님이 95%이고 타종파와 민간인이 약간 있지만 그들도 보상해줘야 당연한 것이지. 내가 과거사진상규명위원도 해봤으니까 요것은 확실하게 매듭지으려고 해요.

-이명박 정부의 종교편향 문제로 한참 시끄럽다가 지금은 조용해진 것 같은데 해결이 된 것인가요.

아니, 해결된 게 거의 없어. 정부에서 공무원 종교적 중립성 확립을 위해 복무규정 등을 개정한다지만 우리의 요구는 모법으로 공직자 종교편향 금지법을 제정하라는 것이지. 그래서 범불교도지방대회를 여는거지.

-대통령이 종교편향에 대해 유감이라고 밝혔는데 그 것을 수용한 것으로 봐도 되나요.

일단 사과성 발언은 했으니…. 그렇지만 반쪽자리야. 왜냐하면 대통령 자신이 문제의 중심에 있는데 아랫사람들에게만 책임을 떠넘기고 있어요. 서울시장때부터 그랬잖아. 그러나 한가지 지금 나라 안팎으로 어려운 시기에 너무 푸시하면 국가가 불안해질 우려 때문에 그런 차원에서 안정을 도모하고 국민의 안녕을 위해 그런 입장을 정리한 것 이지. 이런 것도 일종의 국가기여라고 할 수 있어. 그러나 이명박정부가 7개월 동안 해놓은 게 뭐 있어? 하나도 없잖아. 안타까운 일이지.

-어청수경찰청장 퇴진요구는 이제 들어간 것이지요.

청장 개인이 타켓이 아니고 우리 입장에 대한 표본으로 삼는 거지. 본인이 참회하고 또 경찰의 사기문제도 있으니까 고려를 하는 것이고. 그 문제는 11월1일 대구·경북 범불교도대회후 결정될 전망이야. 현 정권이 고소영이니 뭐니 하는데 왜 고소영이야. 고불영이야지. 대구경북은 정권의 심장부야. 여기 불자들이 지지 안했으면 정권 잡았나. 불자들이 5백만표 이상 찍었다고 보면 당연히 소망교회 보다 불심을 존중해야 하고 불교계 인사를 중용해야 는데 우릴 무시하고 있어. 그런 것들이 다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이지.

-그렇다면 종교편향 사태는 왜 생겼다고 보십니까.

우선 건전한 상식으로 종교생활을 하기보다 맹신에 가깝게 푹 빠져있는게 문제의 근원이지. 내 종교가 중요하다면 남의 종교도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데 그렇지가 못한 사람들 때문에 사단이 벌어진 것이야. 기독교, 천주교 보다 훨씬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 불교를 소외시킨 자업자득이지. 종교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평안해지고자 하는 것인데 종교 때문에 더 괴롭다면 잘못된 거지. 생각해 봐. 세계역사상 불교 때문에 전쟁 일어난 적 있어? 없잖아.

-충북에서 독도로 본적을 옮겼는데 왜 그랬습니까.(스님의 본적은 경북 울릉군 독도리산 30번지이다. 그는 3년전 동해호국독도사를 창건했다)

아 독도 우리가 지켜야지. 나라사랑 때문이야. 일본의 역사왜곡에 따른 독도사태에 대해 안타까운 이유는 남북관계가 잘 되면 독도도 쉽게 지킬 수 있는데 그렇지 못해서…. 남쪽 만으로 힘에 부치면 북쪽이 도와주고 하면 얼마나 수월하겠어. 41년 전인 대학 1학년 여름방학때 독도에 처음 갔는데 사람들에게 독도로 본적 옮기기 운동도 계속 펼칠 생각이야. 그 차원에서 오는 30일 경북 주민 50여명과 함께 2박3일로 독도순방에 나선 다음 독도순례단도 모을 거고.(스님은 한국령 독도 등 책자 외에 대마도는 우리땅이라는 저서도 출간했다)

-고향에는 가끔 들러보시나요.

두달전에 가 은사이신 유성종선생님을 모시고 각현스님의 연꽃마을을 방문했었지. 다음엔 이상록선생님을 모셔야 하는데…. 이 두분은 나에게 영원한 스승으로 그런 분들을 만났다는게 정말로 큰 행운이 아닐수 없지. 나는 어디가나 두 분 이야기를 많이 해.

-지난 2004년 체육훈장 기린장을 받았는데 무엇때문에 받았나요.

그것은 대구 유니버시아드 대회 때문 인데 북한선수단과 인연으로 받은 것이지. 내가 북쪽과는 인연이 많잖아. 그래서 지역의 100여개 단체를 모아 아리랑 응원단을 만들어 북한을 응원했지. 지금도 기억나는 게 북한과 미국의 배구경기인데 미국응원단 보다 북한 응원단이 더 많았어.

-요즘 세상이 시끄럽습니다. 세상이 편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무엇보다 역지사지(易地思之)해야지. 그것은 곧 자기가 손해볼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인데 그러려면 상대방을 의식하고 살아야지. 그런데 이 세상은 그렇지 못해. 그리고 불교적으로 이야기 한다면 마음 (용심)을 잘 써야지. 좀 손해 본다고 죽는게 아냐.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이 진리의 근본이라는 점을 항상 깨달아야지. 즉, 심위법본(心爲法本)이지. 심위법본이기에 일체유심초이고. 화엄경에 원효스님이 깨우친 글이 바로 이것이야.(그러면서 그는 기자의 수첩을 뺐어 직접 다음과 같은 글을 썼다)

心生則種種法生
心生則種種法滅
萬法唯識一切唯心造
모든 것은 여기에 담겨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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