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철수 영화감독의 연예가산책 - '인간' 백범 김구

2014.06.19 16:32:44

얼마 전에 생애 최초로 팻을 샀다. 디지털 애완동물인 아이팻(패드)이다. 팻을 사고도 한동안 쓸 줄을 몰라 또 하나의 가족을 만들지 못하고 집에 오기 싫어하는 가축처럼 힘겹게 업고 다니기만 했다. 이놈을 잘 활용하려면 필요한 앱을 깔아야 하기 때문에 앱 스토어라는 곳에도 들어갔지만 좋아 보이는 것들은 전부 '달러'라는 왠지 비싸 보이는 단위의 가격이 붙어 있어 언감생심 아쉬우나마 공짜들만 우선적으로 몇 개 내려 받았다. 그 중에 하나가 백범일지였다. 공짜라서 받아 둔 거였는데, 모 대통령이 감명 깊게 읽은 책이라는 얘기도 기억나고, 전철 안에서 하도 할 일이 없다보니 무심코 첫 페이지를 열어보았다.

백범 김구

일지는 일기 형식이 아니라 두 아들 인(仁)과 신(信)에게 편지형식으로 쓰여 있는데, 백범일지를 읽으며 그동안 김구 선생에 대해 너무 많은 오해와 편견을 가지고 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아예 김구라는 인물에 대해 무지했다고도 할 수 있다.

국사 교과서에 나오는 대표적인 독립 운동가이자 민족의 아버지, 난세의 영웅으로 알고 있는 백범 김구에 대해 우리가 과연 얼마나 알고 있는가? 혹시 김구가 상해 임시정부 주석이었고, 윤봉길, 이봉창 의사들의 의거를 지휘했고, 광복군을 조직했다는 것은 알고 있는가? 물론 이건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혹시 여러분도 이것만 알고 있으신 건 아니신지? 이 글을 읽는 분들은 저 같은 사람이 아니길 바란다.

하지만, 확신하건데 아직 백범 일지라는 길지 않은 글을 읽지 않았다면 당신도 나와 다를 바 없이 김구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다. 백범 일지에 나온 백범 김구에 대해 이 글에서 요약해서 알려드리고 싶지만 그건 불가능하다. 왜 불가능한지도 읽어보면 아시리라 생각된다. 내 생각에 김구는 예수나 석가모니 공자처럼 대접받아야하고, 백범일지는 논어나 손자병법, 탈무드나 불경, 성경처럼 존엄하게 대접받아야 한다. 그리고 백범일지를 단행본 교과서로 만들어 모든 학생들이 읽게 해야 하고, 국가고시 과목에도 넣어야 한다. 십만 원권 지폐에는 당연히 김구선생이 들어가야 하고, 서울의 랜드 마크가 될 수 있도록 자유의 여신상이나 브라질 예수상처럼 커다란 동상도 세워야 한다.

많은 위인들이 있는데 왜 김구와 백범일지를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묻는다면 내 대답은 똑같다. 일단 '백범일지를 읽어보고 이야기하자'이다. 왜 사람을 영웅화하냐고 묻는다면, 영웅을 영웅화하면 안 되냐고 되묻고 싶다. 실제로 김구는 진정한 영웅인데 그동안 너무 하대 받았기 때문에 이제라도 재조명해야한다. 정말 우리 민족에겐 너무나 많은 영웅들이 있다. 김구를 필두로 어둠속에 감금된 영웅들을 전부 깨어나게 해야 한다. 누가 주입했는지 모르지만 우리 민족에겐 거대한 영웅이 없다는 생각 따윈 당장 '재활용불가' 쓰레기통에 던져버리자.

오늘 이 글의 목적은 김구라는 인물이나 백범일지에 대해 조금 더 알게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이해해주기 바란다.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은 전혀 알지 못하는 것과 같다. 나처럼 백범에 대해 '백범'은 '흰 호랑이'란 뜻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나 '정작 본인은 나서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폭탄을 쥐어준 이 인물'이 왜 가장 높은 존경과 추앙을 받는 것일까라고 의문을 가졌던 사람들, 백범하면 무조건 최고라는 주입된 존경심을 가진 사람들에게 정말 뼈에 사무치게 백범일지를 읽어보라고 호소하는 바이다. 그분을 테러리스트라고 폄하하는 사람들에겐 두말할 나위도 없다. 속는 셈치고 읽어보라. 그런다면 그 속에서 멀리 있고 높이 있는 김구 선생님이 아닌 바로 옆에 있는 인간 김구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일단 백범의 뜻부터 알아보자.

일제 식민지가 된 후 감옥에 갇힌 김구 선생은 호를 백범(白凡)으로 바꾸는데, "우리나라가 완전한 독립국이 되려면 조선의 백정(白丁), 범부(凡夫)들이라도 애국심이 현재의 나 정도는 되어야 하겠다"는 바람 때문에 백정의 백자와 범부의 범자를 따서 백범이라고 지었다고 한다. 또한 선생은 복역 중 뜰을 쓸 때나 유리창을 닦을 때 하느님께 이렇게 기도했다고 한다. "우리도 어느 때 독립 정부를 건설하거든, 나로 하여금 그 정부청사의 뜰도 쓸고, 창도 닦는 일을 해보고 죽게 해달라"고 그렇게 평범한 이름을 가지고 소박한 꿈을 꾸었던 그가 결국 임시정부의 주석이 되어 독립운동을 총 지휘 하기에 이른다니 정말 인생자체가 드라마틱하지 않은가?

노파심에 덧붙이자면 백범일지는 정말로 딱딱하거나 지루하거나 위선적이거나 어려운 책이 아니다. 그 어떤 책보다 쉽고, 재밌고, 솔직하고, 흥미진진해서 한번 읽기 시작하면 절대 눈에서 뗄 수 없을 것이다. 부디 올 여름 얼굴이 못생겨 고민 많았던 김구 형님과 막걸리 한잔 또는, 원빈보다 더 카리스마 넘치는 김구 아저씨와 밀크팥빙수 한 그릇 하는 행운의 기회를 놓치지 않기를 바란다. 나도 김구 형님을 만나게 해준 잡스 형님께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그나저나 잡스 형님은 하늘나라에서 일 좀 그만하고 편히 쉬고 계실는지…그곳에선 왠지 역사의 위인들이 나이차를 떠나 만날 거 같은 느낌도 든다. 만나서 지상에서의 힘들었던 기억들 전부 떨쳐내고 웃고 떠들며 행복하게 지내고들 계시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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