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철수 영화감독의 연예가산책 - 야호쌍룡(野虎雙龍)

2014.07.24 16:01:25

사주 명리학계의 한 유파를 형성하고 있는 '대덕 선생님'이란 분의 제자들이 주축이 된 모임에 나간 지 2년째 된다. 매달 모이는 모임에는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있다. 우선 스님들이 몇 분계시다. 명리학의 원리가 궁금해서 공부하시는 분들도 계실 테지만, 스님들은 누구나 사주, 점, 작명법 등을 기본적으로 잘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공부하는 분들도 계신 것 같다. 비구니 스님도 한분 계신데, 처음엔 신기해서 유심히 관찰하기만 했다. 술과 고기를 드시나 안 드시나를 말이다. 물론 드시는 걸 보지는 못했다.

스님들은 풀만 먹고 어떻게 사실까? 늘 의문이었는데 얼마 전 호텔에서 도박하면서 담배 피는 스님들이 몰카에 찍힌 영상을 보면서 저들도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을 했었다. 근데 그 광경이 좀 공포스럽긴 했다. 이야기가 잠깐 다른 길로 샜는데, 모임 회원 중에는 도사 같은 목사님도 계시고,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출신 태권도 사범, 천하장사 출신 씨름 감독, 웃음치료사, 음악치료사, 개그맨 등 그곳이 아니면 평생 만나지 못했을 다양한 업종의 사람들이 있다.

일주일 전에도 그 모임에 갔었는데, 모두가 따르는 선생님께서 나에게 '호'를 선물해주시겠다면서 '야호'라고 지어 주셨다. 당황해서 "네·"라고 하자 '야호'에는 산 정상에 올라가서 기쁘게 외치는 메아리의 뜻 외에도, 한자로 들야(野)에 범호(虎)자를 써서 '들호랑이'라는 뜻도 있다고 하셨다. 내가 호랑이 띠이기도 하니, 호랑이처럼 대륙의 벌판을 누비라는 것이다. 주시는 걸 받지 않을 수도 없고, 그날 선생님께는 고맙다고는 했지만, 누가 '야후'라고 놀리지 않을까 내심 걱정 되어 지인 몇 명에게 어떠냐고 물어봤더니 다들 무척 괜찮다고 한다. 앞으로 정말 '야호감독'으로 불리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부디 호처럼 작품이 관객들의 가슴속에서 메아리쳐주길 바란다.

어제는 중학교 동창회가 있어서 강원도 영월에 다녀왔다. 중학교 이름이 마을 이름을 따서 '쌍룡중학교'다. '쌍용 양회 공장'으로 시작해서 굴지의 대기업이 되었었던 '쌍용그룹'의 사명도 용 두 마리가 승천했다는 전설이 있는 '쌍룡리'의 이름을 따서 쓴 것이다. 마을 중심에 위치한 거대한 '에일리언'같은 공장은 마을 사람들을 먹고 살게도 해주었고, 강원도 촌놈인 우리를 도시의 먼지와 소음에도 쉽게 적응할 수 있게 해주었다.

와호장룡 포스터.

그래도 고향은 고향이고, 모교는 모교고, 친구는 친구다. 졸업하고 20년 넘게 보지 못했던 친구조차도 하루 전날 봤던 것처럼 느껴졌다는 건 고향+모교+친구라는 트리플 악셀 덕이다. 동창회 다음날은 졸업생 전부가 모이는 '총동문 체육대회'를 했는데, 동문 체육대회 사상 처음으로 내게 '공로상'을 주었다. 이름하야 '자랑스런 쌍룡인상'이었다. 영화가 개봉하고 1년이나 지나서 상을 준다기에 갸우뚱했지만, 이런 것도 시골 출신이기에 누리는 '작은 출세의 맛'이라 생각하고 감사히 받았다. 물론 대가도 혹독해서 만나는 동문들마다 '언제 영화 나오냐' '여태 안 찍고 뭐하냐'며 나를 질책했다. 나도 빨리 찍고 싶지만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나는 때때로 대단하면서도 종종 한심한 존재였다.

객지에서의 감독생활은 고달프다. 작품을 찍는 것은 이무기가 용이 되는 것처럼 어렵다. 한 작품 찍어 용이 됐나 싶다가도 자고 일어나면 어느새 이무기가 되어 있다. 오죽했으면 '당신이 해봤거나 꿈꿔본 가장 잔인한 복수는·'이라는 설문지에 '원수를 잡아다가 영화감독의 꿈을 심어준다.'라고 답했을까· 감독되기 전에 억하심정에서 한 대답이었지만, 지금도 그 대답은 유효하다. 하지만 올해는 아직 시간이 남았고, 자랑스러운 쌍룡인도 되었고, 야호라는 호도 받았다. 대만이란 작은 나라 출신으로 '와호장룡'을 찍은 이안감독처럼 '야호쌍룡'이란 영화로 세계시장에 도전장을 내지 말란 법도 없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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