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밀 막국수와 브라질 월드컵

2014.06.25 15:38:42

김호숙

이월초 교장·시인

학교 텃밭에 심은 토마토가 어느 새 꽃이 피고 줄기가 벌어서 지주 대를 세우는데 전 직원이 땀 흘리고 늦게까지 남은 몇몇이 '메밀막국수' 집을 찾았다.

저녁시간인데도 손님이 붐비고 있었다. 막국수 위에 소담스럽게 메밀꽃 순이 올려져 나오는 걸 보니 먹음직스럽다. 막내 선생님은 스마트폰으로 찍어서 채팅방에 올려 자랑을 하고 '맛있겠다'는 답이 온다. 그날 이후 좀 늦게 학교에 머무는 날이면 남아있던 몇몇이 막국수 집을 찾아 가볍게 정담 나누는 시간을 갖곤하는데 이 시간이 막국수의 맛처럼 시원하게 느껴지고 제법 여유를 갖게 한다.

하얗게 달빛 들판에 드러누운 메밀꽃 향기를 연상하며 메밀꽃잎을 국수에 섞어 비비며 생각한다.

월드컵시즌이라서인지 그 맛깔스러움이 족집게 분석과 예지력으로 축구에 재미를 더하는 '이영표'의 맛깔스러운 해설을 연상시킨다.

축구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과 애정이 깊어서 기대에 못 미친 '알제리 전'에 대한 비난이 빗발치는 분위기를 보며 브라질 월드컵 열기가 너무 과열되고 있다는 우려와 걱정이 등장한다.

지난 17일 러시아전을 치르던 날은 경기를 치르는 선수나 코치진은 물론이고 해설자 아나운서, 열광하는 응원의 도가니, 장소와 상관없이 관전하는 모든 사람을 한 끈으로 연결하며 거대한 움직임으로 출렁이고 있었다. 1-1로 비긴 경기였지만 경기를 보고 또 보아도 신이나던 이 심리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미국 시카고 대학교 심리학과 교수인 '칙센트미하이(Mihaly Csikszentmihalyi)'는 '삶을 훌륭하게 가꾸어주는 것은 행복감이 아니라 깊이 빠져드는 몰입'이라고 했다. 몰입에 뒤이어 오는 행복감은 스스로의 힘으로 만들어낸 것이어서 의식을 그만큼 고양시키며 몰입에 의해 일과 놀이가 하나로 어우러지는 것이 바람직하고 건강한 삶이라고 설명한다.

스포츠에서 몰입의 위력은 본인뿐만 아니라 지켜보는 사람을 결집시키는 마력을 지닌다.

무더위를 날려 보내고 인간사 다사다난한 감정의 벽을 넘어서 온 국민을 하나의 끈으로 꿰는데 스포츠만큼 위력을 가진 게 또 있을까. 처음 만나 서먹한 모임에서도 운동에 관한 얘기를 꺼내면 금방 공감대가 형성되어 이야기가 풀린다.

러시아전을 치르고 해볼만하다는 기대에 차서 23일 새벽 4시를 행복하게 기다렸던 국민들은 적어도 러시아전 정도의 경기를 상상했을 것이다. 기대가 실망이 되어 쏟아지는 비난은 몰입했던 만큼의 무게를 지니게 마련이다.

16강이 아니면 어떤가. 우리나라가 브라질에서 치러지는 세 번의 경기를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으로 여긴다면….

메밀 막국수를 앞에 하고 수수한 메밀꽃 향을 음미하듯, 열기를 식힌 마음의 여유와 쿨한 시선으로 선수들을 응원하는 것도 이 여름 브라질 월드컵을 즐기는 또 다른 행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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