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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전현장을 가다 - 충북도의원선거 충주3선거구

30년 정당생활-민주투사-3선의원 간 대결

  • 웹출고시간2010.05.03 19:54:32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충북도의회의원선거 충주3선거구(연수,교현,안림,교현2동)는 오랜 정치 활동을 해온 정당인들간의 대결이다.

우선 한나라당 공천을 받은 임순묵 예비후보(52)는 1978년 치러진 제10대 국회의원 총선 당시 고 이종근 국회의원의 청년부장으로 활동, 정치에 첫 인연을 맺어 다른 직업 없이 32년간 정당인으로 활동해 오고 있으며, 민주당 공천을 받은 심기보 예비후보(48)도 1986년 건국대 법학과 4년 재학시 고 김대중대통령의 사조직인 민주연합청년동지회 충주시중원군지부 회장을 맡아 정치활동을 전개한지 24년동안 다른 직업없이 정당인으로 생활해 오고 있으며, 무소속 심흥섭 예비후보(48)는 1989년 국회 윤리위원장을 맡은 고 이종근 의원의 비서관을 맡아 21년간 정치활동을 하며 2000년부터 현재까지 충북도의회 의원(6,7,8대)으로 활동을 해오고 있다.

임순묵 예비후보는 안림동에서 태어나 현재까지 한마을에서만 살고 있는 토박이로 교현초,충일중,충주실고를 졸업,충주시4-H연합회장,충주농고운영위원장,신민당조직부장,제12대 이택희국회의원 비서,제17대 이명박대통령후보 충주시선거 사무소장을 역임하고 현재 충일중21회동창회장, 충주농고41회동창회장, 총동문회 부회장,한나라당충주시당원협의회사무국장,충북도당 당원자격심사위원을 맡고있다.

그는 고교 졸업후인 1976년 충주시4-H연합회장에 당선돼 79년 충북도북부지역연합회장을 맡는 등 농촌지도자로 활동을 해왔다.그러던 중 1978년 제10대국회의원 총선에 당시 이종근국회의원을 도운것이 정치에 첫 인연이 돼 1982년 제11대 총선에서 다시 이종근국회의원 선거에 참여했고, 1985년 제12대 이택희 국회의원 당선과 함께 의원 비서로 활동하며 의정활동의 실무를 익혔다.1991년에 민주당(총재 이기택)에 입당, 충북도의원 선거 출마를 희망했으나 낙천했다.

2000년 당시 한창희 한나라당충주시지구당 위원장의 권유로 정당 및 정치활동을 재개, 16대 대선 당시 충주시청년단장,초대 한나라당충주시운영위원으로 활동했고, 2004년 제17대 총선과 충주시장 보궐선거, 2006년 지방선거를 거쳐 2007년 한나라당충주시당원협의회 사무국장으로 임명돼 17대 대선 한나라당선거사무소장, 2008년 18대총선에서 당협 사무국장과 선거사무소장을 맡아 당조직과 지역현안 해결에 가교역할을 해온 정통 정당인이다.

공약으로 △기업유치를 통한 일자리 창출로 인구 30만의 자족도시 건설△교통 중심지로서 대규모 물류 및 유통단지 유치△청주·청원 통합이후 충주로 도청이전△연수주공아파트 단지 주민을 위한 문화복지 및 관리시설 확대△연수동 온천지구 지정 해제△안림동주택개발 지정지구 사업 조기 착수△노인복지시설 개선△도시가스 보급 조기완료△충주소년원 부지를 교정 및 연수, 체육시설로 변경해 지역 활성화△충주의료원 신축 이전에 따른 주변 도로망 확충△유엔평화공원과 호암지 주변에 주민 휴식및 레저공간 확대△충주호 주변에 민물고기 생태 전시관 유치 등을 내세웠다.

임 예비후보는 "충주시는 재정자립도가 20% 밖에 안돼 국비와 도비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 도의회에 진출해 국·도비 확충으로 충주시 발전에 일익을 담당하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심기보 예비후보는 현대정치사가 만들어 낸 민주열사(?)내지 어찌보면 '피해자'다.

심 예비후보는 엄정면 율능리 노곡마을에서 태어나 교현초,미덕중,충주고,건국대 법학과,건국대행정대학원을 수료(노사행정)하고 평민당 당보인 평민신문 기자,이용희국회부의장 정책보좌관,새정치국민회의충주시지구당 사무국장,열린우리당충북도당 상무위원을 역임하고 현재 민주당충주시지역위원회 운영위원을 맡고있다.

그는 대학4학년때 김대중대통령 사조직인 민주연합청년동지회에 가입, 충주시중원군지부회장을 맡아 민주화운동을 주도했으며, 대학원 마지막 학기때는 노태우대통령의 일본 방문에을 '굴욕외교'라며 반대 전단지 4만매를 만들어 뿌리다가 경찰의 수배를 받아 4년동안 쫓기는 생활을 해 결국 졸업을 못하고 수료하는 아픔을 겪었다.

도피 생활중 잠깐 직장생활도 해 봤지만 김대중 후보가 대선에 출마하면서 새정치국민회의 사무국장을 맡아 대통령 만들기에 헌신했으며, 결국 정치활동을 재개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33살에 결혼, 딸 하나를 두고 있으나 도의원 보궐선거에서 낙선했고 98년 시의원 선거에서도 낙선, 97년 IMF금융위기로 가계가 어려워지자 부인이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며 생활을 꾸려오는 등 어려움을 겪고있다.

심 예비후보는 "부도덕에 물들지 않고 참신하게 살아온 것에 대해 후회하지 않으며 지금까지 살아온 것 처럼 해나가겠다"며"이번 지방선거에서 이명박 정부의 수도권 위주의 지방죽이기 정책에 분노하고 충주시민의 권리 지키기에 보탬이 되고자 출마하게 됐다. 특히 이시종 도지사 후보, 우건도 충주시장 후보가 당선돼 지역발전을 이루도록 일익을 담당하겠다"고 말했다.

공약으로는 △각급 학교 무상급식 실현△학교 주변에 CCTV 확대설치와 청원경찰 배치로 어린이 성폭력 예방과 학교 폭력 근절△노인 일자리 창출을 통한 노인복지사업 확충△전통상업지역 지정으로 골목시장 활성화를 내세웠다.

무소속 심흥섭 예비후보는 소태면 중청리가 고향으로 교현초, 미덕중,충주고,청주사범대, 단국대행정대학원(행정학 석사)을 졸업하고 교현초총동문회부회장,충주고운영위원을 역임했고, 1989년 고 이종근 국회의원을 도운 것이 인연이 돼 21년째 정치인으로 살아오고 있으며 90~95년까지 이종근 국회윤리위원장 비서관, 2000년 6대 충북도의원에 당선돼 7,8대 의원, 도의회 예산결산위원장, 부의장을 맡아 도의회 발전에 기여했으며, 현재 충주시생활체육회 회장, 충북도의회 장애인 체육회 부회장을 맡고있다.

심 예비후보는 당초 한나라당 당원으로 이번 선거에 공천을 신청했으나 낙천돼 무소속으로 출마를 하게 됐다.

그는 출마의 변을 통해 "부조리한 공천의 피해로 인해 정치적 기회와 소신을 펼치지 못할 위기에 처한 후보자들과 더불어 분연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충주시민 여러분들이 공천해 주시는, 시민을 위한 무소속의 길'을 가겠다"며"세번의 선거에서 보여주신 주민 여러분의 압도적인 지지를 바탕으로 충북최초 도의회 4선 신화 창조를 통해 충주 사업들이 원만히 해결 될 수있는 힘과 능력을 최대한 발휘해 충주발전을 앞당기겠다"고 주장했다.

공약으로는 △BINT 신기술과 신지식등을 통한 첨단기술산업의 육성, 지역 여건에 적합한 특화 산업의 육성과 혁신적인 농업성장 기반의 강화△수려한 자연경관과 풍부한 수자원, 오랜 역사적 숨결이 배어있는 다양하고 풍부한 중원문화 유산과 자긍심등을 계승·발전시켜 충주문화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관광 자원으로 활용△지역주민들의 빈곤 극복을 위한 지원정책을 강화하고 장애인들의 생활안정과 복지를 증진하며, 고령사회에 대비한 노인복지서비스와 청소년복지서비스를 확충하고, 새로운 지역사회 평생보건관리시스템구축△월악산국립공원의 훼손되지 않은 수려한 자연자원과 충주댐의 청정하고 풍부한 용수등 충주가 가진 천혜의 자연환경을 보전, 지속가능한 환경 충주실현을 내세웠다.

/특별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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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