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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충북의 구곡(2)

충북의 구곡(상)-갈은.화양.쌍계구곡

  • 웹출고시간2007.04.23 01:52:30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구곡(九曲)’은 아홉 개의 곡으로 이뤄졌다. 이는 ‘주역’ 구오(九五)의 원리를 적용한 것이다.
이상주(53·문학박사) 극동대 외래교수는 충북에 22곳의 구곡이 설정돼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충북에 이처럼 구곡이 많이 설정된 것은 율곡에서 우암으로 이어지는 기호학맥 계승의 상징이고, 조선 말기에서 일제강점기에는 척사위정(斥邪圍正), 존화양이(尊華攘夷)의 사상으로 구국의지를 다지는 교육수련장으로 활용하기 위해 구곡을 설정했다는 것이다. 취재진은 충북도내 22곳의 구곡 중 7곳이 분포된 괴산군의 갈은구곡, 화양구곡, 쌍곡구곡을 답사해 선계(仙界)와 같은 풍광을 소개한다. / 편집자주

▶갈은구곡(葛隱九曲)
걱정이 됐다.
지난 20일 괴산지역 구곡 답사에 나섰으나 이날 중부지역에 강풍을 동반한 비가 내릴 것이란 일기예보에 신경이 쓰였다. 다행히 맑았다.

취재진은 괴산향토사연구회 김근수(60) 회장과 이날 오전 칠성면 사은리 갈론마을의 갈은구곡을 답사했다.
괴산읍에서 출발한 차량은 칠성면 소재지를 지나 1952년 12월 처음으로 순수 국내 기술로 건설된 괴산댐(괴산수력발전소)에 닿았다. 괴산호 어딘가에 잠겨 있는 ‘연하구곡(煙霞九曲)’을 떠올리며 샛길을 따라 5㎞ 남짓 포장길을 달렸다.

갈론마을이다. 2002년 10월 충북지사와 괴산군수가 ‘충북의 자연환경명소’ 지정을 알리는 표지석을 세웠다. 그 앞에 차를 세워놓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엥…….’ 이게 뭔가.

표지석엔 ‘구곡(九曲)’이 아닌 ‘구곡(九谷)’으로 적혀 있다. 사림들이 이상향(理想鄕)의 별천지 공간을 생각하며 설정한 구곡(九曲)을 후세에선 단지 계곡으로 이해하고 있으니.

여하튼 갈은구곡을 향해 걸었다. 5분 쯤 걸었을까. 길 오른쪽 바위 위에 다른 바위 하나가 길손들을 내려보듯 얹혀져 있다. 갈은구곡 초입인 1곡 ‘갈은동문(葛隱洞門)’이다.

“(갈은구곡은 괴산군의)마지막 남은 비경”이라고 김 회장이 한마디 던진다.

2㎞ 남짓 펼쳐지는 갈은구곡의 선경(仙境)에 들어서니 가슴이 설렌다.

취재진은 이달 초 대나무 뗏목(주파이)를 타고 무이구곡을 답사하면서 구곡마다 바위에 새겨진 한시를 확인했다. 갈은구곡 역시 구곡 바위마다 전.예.해.행.초서의 다섯 서체가 한시로 새겨져 있다. 전국에서 유일한 곳으로 알려지고 있다.

3곡 강선대(降僊臺)에 내려온 신선은 구슬같은 물방울이 흐르는 옥류벽(玉溜壁.4곡)과 비단병풍처럼 둘러싼 금병(錦屛.5곡)을 거슬러 올라갔다.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고 했던가. 선국암(仙局岩.9곡)에 앉은 산신들이 옥녀봉 산마루에 해가 저물 때까지 바둑을 두던 그곳에 이젠 네 사람의 동갑내기가 놀고 있다(四老同庚).

또 바로 앞에는 신선이 화(化)했다는 7마리의 학이 노닐고 있고(七學洞天.8곡), 고송유수재(古松流水齋.7곡)의 오래된 소나무 아래 흐르는 물가에는 선비들이 지어놓은 집의 흔적이 남아 있다. 속인(俗人)들이 어떻게 이 같은 선계(仙界)를 찾아냈는지 궁금하다.

21일 SBS-TV 대하사극 ‘연개소문’에서는 당군(唐軍)과의 일전을 앞둔 고구려군의 한 장수가 고송유수재에서 승전을 기원하는 장면이 방영됐다.
▶화양구곡(華陽九曲)
갈은구곡 입구의 한 민박 집에서 토종닭 백숙으로 허기를 해결했다. 곧장 청천면 화양리 화양구곡으로 내달았다. 일기예보가 들어맞는 듯 먹구름이 짙어지고 있다.
빠졌다. 아니 담갔다.

기호학파 노론의 영수 우암 송시열의 자취가 서려 있는 화양구곡의 절경 금사담(金沙潭.4곡)을 카메라에 담아야 하는데, 금사담에 떨어지는 빗방울이 잦아진다. 급한 김에 “에라, 모르겠다.” 계곡 물에 등산화를 ‘텀벙’ 담갔다. 우암이 후학을 가르친 암서재(巖棲齋)에 오르니 금사담의 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구곡문화전문가 이상주 박사는 문화산수관광지의 평가 요목을 두루 갖춘 화양구곡을 ‘한국의 무이구곡, 한국 제일의 문화산수’라고 지체없이 꼽는다.

화양구곡에는 화양서원, 만동묘 등의 문화유적의 복원되고 있고, 명(明) 숭정황제 의종의 어필인 ‘非禮不動(비례부동)’(예가 아니면 행하지 말라)과 선조의 어필을 모각한 ‘萬折必東(만절필동)’(중국의 강이 만번 꺾여도 반드시 모두 동으로 흐른다) 등의 서체가 남아 있다.
▶쌍계구곡(雙溪九曲)
쌍곡구곡을 찾았다. 조용하다 못해 고요하기까지 하다.
휴가철이면 입구를 지나서까지 길게 늘어선 피서차량으로 몸살을 앓는 곳이지만 아직은 때가 이른가 보다.
쌍계구곡은 정재응(1764~1822)이 구곡을 설정하던 당시 이름이었으나 1987년 12월 괴산군이 구곡을 새로 설정하면서 쌍곡구곡(雙谷九曲)으로 바뀌었다. 또 정재응이 설정한 구곡의 이름과도 전혀 다르다.
지금의 2곡 소금강(小金剛). 쌍곡구곡 중 극치를 이루는 곳으로 마치 금강산 일부를 옮겨다 놓은 것 같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5곡 쌍벽(雙璧)은 계곡 양쪽의 바위가 나란히 바라보고 있어 갈은구곡 7곡의 고송유수재를 보는 듯한 비경이다. 상류를 따라 8곡 선녀탕을 찾았으나 가물어선지 시원한 물줄기를 보지 못해 아쉽다.

이상주 박사는 “송강 정철은 여생을 쌍계구곡에서 보내길 원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며 “송강의 8대 손인 정재응이 선조의 유지를 받들어 이곳에 구곡을 정했다”고 설명했다.

/ 기획취재팀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아 취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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