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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상현 순절, 2년동안 확인 안 됐다"

오인택교수 주장
그것도 왜장 가토가 확인해줘 알아
효수된 머리 대마도로 전송 소문도
임란 선조정권 무능 또 다시 드러나

  • 웹출고시간2011.11.14 18:42:12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조선 선조 정권은 동래부사 송상현(宋象賢·1551~1592)의 순절 사실을 2년 뒤에야 공식 확인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전쟁 중임을 감안해도 당시 정권의 무능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으로, 선조를 평가하는 또 다른 사례가 될 것으로 보인다.

동래부순절도 그림으로, 원안이 죽음을 기다리는 송상현 모습이다.

내년(2012) 임진왜란 발발 7甲(60x7)을 앞두고 관련 학술대회가 지역역사 전문가와 후손들이 참석한 가운데 지난주 청주 고인쇄박물관에서 열렸다.

'중·북부지역 임진란 항쟁활동의 역사적' 제목의 이날 세미나에서 부산교대 오인택 교수는 '충렬공 송상현 敍事의 사회문화적 성격' 논문을 발표했다.

논문에 따르면 동시 동래부사 송상현의 순절 사실은 2년 뒤에야 당시 조정에서 공식 확인했다.

오 교수는 그 근거로 선조실록 25년 11월 25일자에 실려 있는 기사 내용을 들었다.

먼저 선조 임금이 당시 경상도 관찰사 김수(金日+卒·1547~1615)에게 "정발(鄭撥)과 송상현(宋象賢)은 과연 죽었는가"라고 물었다. 이에 김수는 다음과 같이 답했다.

"정발과 송상현이 혹자는 죽지 않았다고 하지만 죽은 게 틀림 없습니다. 잘못 전해진 말 가운데 심지어는 송상현이 적장이 되었다고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포위를 당했을 때 홍윤관이 성밖으로 나가기를 권했으나 상현은 말하기를 '지금 성을 빠져 나가더라도 어디로 간단 말이냐' 하고는 남문 위에 팔짱을 끼고 앉아 있으니 적이 들어와 죽이고, 바로 그의 목을 대마도로 전송했다고 합니다."-<선조실록>

오 교수는 이와 관련해 당시에 △정발(부산진 첨절제사)과 송상현이 죽지 않았다 △송상현이 적장이 되었다 △참수된 그의 머리가 대마도로 전송됐다는 소문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고 밝혔다.

사망 이듬해인 선조 26년(1593)의 비변사 보고 내용에서도 송상현의 순절 사실은 공식 확인되지 않는다고 오교수는 밝혔다.

'동래부사 송상현과 회양부사 김연광은 모두 순국하여 절의가 칭송할 만한데도 장계(보고라는 뜻)에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지금까지 포장받지 못하고 있어 인정이 매두 답답해합니다'-<선조실록>

송상현의 순절 사실은 선조 27년(1594) 병사 김응서(金應瑞·1564~1624)의 장계가 조정에 도착하면서 비로서 공식화되기에 이르렀다고 그는 밝혔다.

장계에 따르면 병사 김응서가 협상을 위해 울산에서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을 만났고, 이때 그로부터 송상현이 의롭게 죽은 사실을 전해 듣게 된다.

그 결과, 임란 발발 3년(1595) 후에야 송상현 순절에 대한 올바른 평가가 실록에 등장한다고 오교수는 밝혔다.

'송상현은 비록 활쏘고 말타는 재주는 있으나 본디 선비의 명망은 없었는데 하루 아침에 조용히 의리를 위해 목숨을 끊기를 이처럼 고결하게 하였으므로 비록 흉적(왜군 지칭)이라 하더라도 역시 그를 의롭게 여긴 것이다'-<선조실록>

이날 학술대회에는 곽호제, 정해은, 김현영, 김용태 교수 등도 '임진왜란기 호서의병의 기반과 활동', '중부지역 임진란 의병활동에 관한 연구', '임진왜란 초기 함경도의 상황과 왜군 격퇴', '임진왜란의 의승군 활동과 그 불교사적 의미'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다.

송상현 사당인 충렬사와 정려는 청주 수의동에 위치하고 있다.

/ 조혁연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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