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 함께 소토(燒土·불에 탄 흙), 철재(slag), 철기제작을 위해 쌓아둔 철 덩어리, 가위, 망치등 제철과 관련된 고대 백제의 유물과 도구도 다량 확보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탑평리 발굴과 무관하게 지난 11월 이전에 이미 발표된 해동문화재연구원 김양훈씨의 '한성백제기 제철수공업과 관리'(2010년 10월)와 중앙문화재연구원 조용호씨의 '충주지역 피리형 가마의 특징과 축조배경'(2011년 10월) 등 두 편의 논문이 새삼 주목을 받고 있다.
김씨는 논문에서 '칠지도를 제작했다는 곡나철산(谷那鐵産)은 충주임이 분명하다'고 밝혔다.
'일본서기' 신공기 52년조에는 '신(백제 지칭)의 나라 서쪽에 강이 있는데, (강의) 근원은 곡나철산(谷那鐵山)으로부터 나옵니다. 멀어서 7일을 가도 미치지 못합니다'(臣國以西有水 源出自谷那鐵産 基邈七日之不及)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그는 이에 대해 △한성에서 봤을 때 서쪽의 강은 한강을 의미하고 △곡나철산(谷那鐵産)은 산이 많이 둘러싸인 고을에 철산지가 입지하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그는 보다 구체적으로 "곡나철산은 소백산맥 이서지역, 한강 수계변, 철광산 인접한 지역 등 3가지 입지환경을 지녔다"며 "이것에 가장 근접한 지역은 남한강변 충주밖에 없다"고 밝혔다.
조씨는 삼국시대 탄요(炭窯·숯가마)의 일종인 일명 피리형 가마의 존재 위치를 통해 '칠지도=충주제작' 가능성을 제기했다. 고대에는 철생산을 하려면 철광석(원료), 목탄(연료), 노(爐)가 반드시 필요했다.
칠지도
![](https://www.inews365.com/data/photos/201112/bp_209046_1_1323250626.jpg)
칠지도의 앞뒷면 모습으로 60여자의 명문이 새겨져 있다.
칼 전체 길이는 74.9cm로, 칼의 좌우로 각각 3개씩의 칼날이 가지 모양으로 뻗어 있어 칠지도라고 부른다. 칼의 양면에는 60여 자의 명문(銘文)이 금상감(金象嵌) 기법으로 새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