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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항일학생기념비 의거일 중대 오류

기념탑에 '1929년 12월 20일'로 새겨 놔
당시사료 조사한 결과 '1930년 1월 21일'
농고에는 성금기탁 명단 비석 '주객전도'

  • 웹출고시간2012.02.28 20:25:43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청주중학교에 서 있는 기념탑은 항일학생의거일을 '1929년 12월 20일'(선)로 잘못 적었다.

일제에 항거해 일어났던 청주학생연합시위의 최초 발생일이 사실과 다르게 알려져 왔던 것으로 밝혀졌다.

현재 청주시 영동의 청주중학교 교정에는 청주학생연합시위를 기념한 '항일학생의거기념비'가 서있다. <그림참조>

동아일보 1930년 1월 21일자 기사 내용이다. 이날이 일제에 항거한 청주학생연합시위 최초 발생일이다.

지난 1971년 처음 세운 것을 1997년에 중건한 이 기념비는 탑 정면에 비의 제목을 쓰고 그 앞에 청동으로 만든 횃불모양의 조형물을 세웠다.

그리고 우측에 학생의거가 일어난 과정과 당시 시위를 주도한 학생 7명의 명단(이범승·이인찬·김찬호·구연행·박우양·함귀봉·홍성일) 등을 기록했다.

이와 관련, 학생의거 기념비는 청주학생연합시위의 최초 발생일을 '1929년 12월 20일'(그림 참조)로 새겨 놓았다.

그러나 충북대 사학과 박걸순 교수가 동아일보 등 일제 강점기의 신문사료를 정밀 조사한 결과, 청주학생연합시위의 최초 발생일은 1930년 1월 21일 것으로 밝혀졌다. <그림 참조>

동아일보의 1930년 1월 21자는 '淸州高普와 農業校도 動搖' 제목의 2단 크기 기사에서 '만세를 고창하는 동시에 수천매의 격문(檄文)을 산포하얏는데 검거된 생도는 륙십명에 달하얏다 한다'라고 적었다.

박 교수는 이에 대해 △277명의 청주고보 학생들이 교사와 경찰의 제지를 뚫고 청주농업학교 방면으로 행진했고 △이 때 사전 연락에 의해 청주농업학교에서도 5학년생을 제외한 231명의 학생이 교문 밖으로 행진하여 청주고보 학생들과 합류했다고 보다 상세히 설명했다.

다음은 1월 21자 기사의 전문으로, '□' 표는 신문이 오래 돼 문장의 일부가 멸실됐다.

'(청주지국전화) 청주에 잇는 청주고등보통학교(淸州高普校)에서는 금일 조례식을 마치자마자 일이삼사학년생이 백칠십여명이 만□를 고창하며 무심천(無心川)을 □□공립농업학교(公立農校)□□□하야 만세를 고창하는 동시에 수천매의 격문(檄文)을 산포하얏는데 검거된 생도는 륙십명에 달하얏다 한다.'

청주학생연합시위의 최초 발생일이 1930년 1월 21일이라는 사실은 동아일보의 '1930년 2월 17일자' 기사에서도 그대로 확인되고 있다.

이 날짜 동아일보는 당시 청주지역 연합시위를 주도했던 학생들이 '십여일 동안 철창에 구금되어…'라고 적었다.

기념탑 모습으로 지난 1997년에 중건됐다.

기사의 내용이 정확하다면 연합시위 최초 발생일은 1929년 12월 20일까지 소급되는 것은 논리적으로 성립되지 않는다. 다음은 '기소유예로 청주학생출옥' 제목의 동아일보 1930년 2월 17일자 기사내용 일부다.

'그들은 십여일 동안 철창에 구금되어 가족과 친우의 걱정 중이 잇다가 지난 십사일에 검사로부터 관계 교장 등에게 주의를 시키고 긔소유예에 처분이 되어 부형과 동창학생들의 출연 가운데 파리한 얼굴로 전부가 출옥되엇는데 청주만세 사건도 이로써 종막을 이룬 것이다.'

이처럼 '항일학생의거기념비'가 중대한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은 △당시 시위 참가자의 부정확한 증언 △이에 따른 '청주지'의 오기(誤記) 등이 계속 답습됐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박 교수는 "청주농고에도 관련 기념탑이 서있으나 그 옆에 기념탑 건립 추진위원과 성금 기탁자 명단을 새긴 비석을 따로 세워두었다"며 "이는 무엇을 기리고 기념하자는 것인지, 주객이 전도돼도 한참 전도된 모습"이라고 밝혔다.

/ 조혁연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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