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기사

이 기사는 0번 공유됐고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사료로 본 한글과 충북의 역사적 인연

세종, 초정에까지 와서 諺文급급 최만리 질타
복천암 신미대사, 예종에게 한글 문장 상소문
괴산 최세진 '훈몽자회' 저자, 한글로 토 달아
진천 최석정 '경세정운' 저자, 주시경에 영향

  • 웹출고시간2012.10.08 17:22:49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괴산 박세무가 지은 동몽선습은 조선시대 대표적인 교과서의 하나였다. 괴산 애한정 앞에 동몽선습비가 서있다.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와 그 이후의 진행과 관련해서 충북의 인물과 지명도 자주 거론되고 있다. 세종대왕과 청원 초정약수, 복천암 신미대사의 한글창제 협찬설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고한글 저술과 관련이 있는 최세진, 최석정, 박세무 등은 모두 충북과 인연을 맺고 있는 인물이다.

◇ 세종대왕과 초정약수

조선 전기 초정약수를 찾은 임금은 세종과 세조다. 이중 세종은 행궁을 짓고 눈병 치료를 위해 초정에 100일 넘게 머물렀다.

실록은 재위 26년(1444년) 초수에 행궁을 짓고 같은 해 3월 2일부터 4월 30일까지 58일간, 그리고 같은 7월 15일부터 9월 14일까지 59일 등 총 117일간 머물렀다고 적고 있다.

세종대왕이 초정에까지 와서 한글창제 작업에 몰두했는가를 둘러싸고 다소의 논란이 있지만 실록으로만 보면 사실인 것으로 나타난다. 다음은 당시 부제학 최만리의 상소문이다.

"또한 이번 청주 초수리에 거둥하시는 데도(…) 계달하는 공무에 이르서도 또한 의정부에 맡기시어, 언문 같은 것은 국가의 급하고 부득이하게 기한에 치쳐야 할 일도 아니온데, 어찌 이것만은 행재(行在)에 급급하게 하시어 성궁(聖躬)을 조섭하시는 때에 번거롭게 하시나이까. 신 등은 더욱 그 옳음을 알지 못하겠나이다.'-<세종실록>

인용문 중 '언문'은 한글, '급급하게 하시어'는 세종대왕이 한글창제 작업에 몰두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세종은 백성들에게 폐를 끼친다는 이유로 초정약수를 다시는 찾지 않고 배달햇거 마시게 된다.

"내가 전일에 역(驛)에게 명하여 초수를 실어오게 하였더니, 물맛이 조금 변하였으나, 어느 날이고 가져오지 못할 것도 없으니 직접 행행하는 것보다 낫지 아니한가"-<세종실록>

◇ 신미대사의 한글창제 협찬설

조선은 유교국가로 승려의 서울 도성 출입을 엄격히 금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종대왕은 건강이 악화되지 신미대사를 몸소 침실로 부르고 높은 예절로 대우했다.

'임금의 병환이 나았는데도 정근(精勤)을 파하지 않고 그대로 크게 불사를 일으켜, 중 신미를 불러 침실 안으로 맞아들여 법사를 베풀게 하였는데, 높은 예절로써 대우하였다'-<세종실록>

보다 무게가 실리는 내용은 한글이 반포된지 얼마 안 된 시점에서 신미대사가 후대 임금 예종에게 한글 문장으로 상소를 했다는 점이다.

'중 신미가, (…) 언문(諺文)으로 글을 써서 비밀히 아뢰기를, "중으로서 경(經)을 외는 자는 간혹 있으나, 만약에 강경(講經)을 하면 천 명이나 만 명 중에 겨우 한둘뿐일 것이니, 원컨대 다만 외는 것만으로 시험하게 하소서" 하니…'-<예종실록>

신미대사는 세종대왕이 간경도감을 설치하고 불전 번역사업을 추진하자 이때 법화경, 반야심경, 영가집 등을 한글로 해석하기도 했다.

◇ 최세진·박세무·최석정

최세진(崔世珍·1468∼1542)은 '훈몽자회'의 저자로, 충북 괴산을 본관으로 하고 있다. 훈몽자회(訓蒙字會)는 그가 1527년에 쓴 학습서이나 한자 3천360자의 뜻과 음을 훈민정음으로 달았다. 이 책에서 처음으로 한글 낱자에 기역, 니은 등의 명칭을 붙였다.

박세무(朴世茂·1487∼1554)는 괴산 인물로, 조선시대 대표적인 학습교재였던 동몽선습(童蒙先習)의 저자이다. 이 책은 천자문 이후 단계의 책으로, 토(구결)를 한글로 달은 특징이 있다. 워낙 대중화되다 보니 나중에 영조가 개정판 발문을 쓰기도 했다.(사진 참조)

최석정(崔錫鼎·1646∼1715)은 한글 음운서 '경세정운도설(經世正韻圖說)'의 저자로, 진천이 고향이다. 이 설은 주역을 바탕으로 한글의 음가를 해석하려 한 것으로. 주시경 등 후대 한글학자들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 조혁연 대기자
배너
배너
배너

랭킹 뉴스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배너

매거진 in 충북

thumbnail 308*171

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