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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土姓, 여말선초에 왜 유난히 많았나

충대 신호철교수 '청주의 성씨와 인물' 논문
다른 곳과 달리 다양하고 강력한 '호족층' 존재
청주김씨 가장 강력… 용두사지 철당간에 흔적
조선시대 대부분 쇠잔… 청주한씨만 세력 유지

  • 웹출고시간2013.02.04 14:27:16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고려말~조선 초기의 청주 토성(土姓)은 전국 다름 대읍(大邑)에 비해 그 수가 훨씬 많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당시 청주지역에 다양하면서 강력한 토성집단이 존재했던 것을 의미하는 것이어서, 그 분석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충북대 신호철(역사교육과) 교수가 최근 청주문화원이 발간한 '청주의 뿌리를 찾아서' 책머리에 논문 '청주의 성씨와 인물'을 기고했다.

논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나라 성씨와 본관이 언제 생겨났고, 또 토성의 개념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신 교수에 따르면 △성씨가 일반화된 것은 고려 중기 이후이고 △본관은 고려의 중앙정부 통제력이 전국적으로 미치기 시작한 성종 때부터 생겨났다.

이밖에 토성은 고려시대 전국 각군현에 토착해 있던 지방 호족들이 지니고 있던 성씨를 일컫고 있다.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망성(亡姓), 내성(來姓), 속성(續姓) 등 여말선초의 여러 성씨 형식과 토성을 구분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라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러나 △조선시대 임진왜란 전까지도 전인구의 40% 정도가 성이 없는 무성층(無姓層)이었고 △1909년 이른바 민적법이 시행되서야 모든 국민이 성을 가질 수 있었다.

이와 관련 신교수는 "세종실록 지리지(1454년)를 기준으로 할 경우 청주지역에는 망촌성(亡村姓)을 포함해 韓, 李, 金, 郭, 孫, 慶, 宋, 高, 俊, 楊, 東方, 鄭, 朴, 申, 葛씨 등 모두 16개의 토성이 존재했다"며 "이는 전국의 다른 대읍에 비해 월등히 많은 것"이라고 밝혔다.

다른 지역 대읍의 토성을 살펴보면, 공주목 10개, 안동부 8개, 홍주목 8개, 광주(光州)목12개 등으로, 모두 청주에 뒤지고 있다.

그는 이같은 현상에 대해 당시 청주에 다양하면서 강력한 호족층이 존재했고 이들은 후삼국 통일과정에서 중대한 변수가 됐으며 △그 결과 친궁예파와 친왕건파로 나눠진다고 밝혔다.

☞용어설명

망성(亡姓): 토성이 지역에서 사라진 경우를 말한다.
내성(來姓):다른 지역에서 이주해온 성을 말한다.
속성(續姓):고려말에는 없었으나 조선초에 생겨난 성을 말한다.
망촌성(亡村姓):읍외 촌에 존재하다가 사라진 성을 말한다.

청주 5개 土姓의 성쇠

신 교수는 이런 현상들이 '다양하고 강력한 청주의 토성 세력'을 만든 것으로 봤다. 그는 "이후 왕건은 후삼국을 통일하지만 청주의 호족과는 결혼을 하지 않는다"며 "이는 청주에 남아 있던 일부 친궁예적인정서 때문"이라고 밝혔다.

한편 신교수에 따르면 청주 16개 토성중 향후 왕성하게 활동한 성씨는 청주김씨, 청주이씨, 청주한씨, 청주정씨, 청주곽씨 등 대략 5개였다.

청주김씨는 청주토성 중 가장 강력했던 성씨집단으로, 국보 제 41호인 용두사지 철당간 명문에 그 흔적이 남아 있다.

청주김씨는 청주토성 중 가장 강력했던 성씨집단으로 국보 제 41호인 용두사지 철당간 명문에 그 흔적이 남아 있다. 그러나 어떤 이유로 무신란 이후에는 쇠잔했다.

청주이씨는 고려 초기부터 중앙으로 진출하여 문벌귀족으로 성장했으나 조선시대 이르러 서서히 쇠퇴했다.

청주한씨는 고려 후기에 번창하여 원 나라 간섭기에 권문세족으로 성장했다. 이때 '상당군'(上黨君)이라는 봉작이 집중 등장한다.

청주경씨는 무인정권기에 크게 일어나 경대승이라는 국가 최고 권력자를 배출했다. 청원군 남일면 효촌이 본래 기반이었다.

청주정씨는 고려말 이성계와 밀접하게 연결되면서 정총, 정탁과 같은 조선왕조의 개국공신을 배출했다.

신 교수는 "상당수 청주토성들은 조선후기로 오면서 중인층인 재지이족(在地吏族)으로 전락, 세를 잃는다"며 "그러나 청주한씨 만큼은 끝까지 세를 유지한다"고 밝혔다.

/ 조혁연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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