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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도성 수축에 충청인 5만여명 동원

민덕식씨 충북사학 기고
세종때 좌청룡 해당하는 혜화-흥인문 구간공사
현재 성벽에 영동·옥천 등 10개 지명 남아 있어
각자 지명, 나중에 성무너지면 책임추궁의 의미

  • 웹출고시간2013.06.17 18:55:41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한양도의 모습으로 세종대 충청도 사람 5만6천여명은 혜화문-흥인문(선 부분) 구간의 도성수축 공사를 맡았다.

조선 세종대의 한양도성 수축공사에 충청도 사람이 총 5만6천여명이 동원된 가운데 이들이 새긴 각자(刻字) 성돌이 10개가량 현존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민덕식 전국사편찬위원화 교육연구관이 충북사학 제 27집(발행인 충북대 신영우 교수)에 '충청인들의 서울성곽 축성관계 금석문'(부제: 세종4년 축성을 중심으로) 논문을 발표했다.

논문에 따르면 조선의 수도인 한양도성은 태조 4년(1395) 처음 축조된 후 27년만인 세종4년(1422)에 나머지 구간을 수축하게 된다.

이때 8도가 전구간을 배분해 맡은 가운데 충청도 각 고을에서 동원된 수축군은 지금의 혜화문-낙산-흥인문 구간을 맡았다.

이 구간은 풍수상 한양의 좌청룡에 해당하는 곳으로, 인왕산이 있는 우백호에 비해 지맥이 다소 낮고 거리가 짧은 입지환경을 지니고 있다.

논문에 따르면 이 구간 성벽수축 공사에 동원된 충청도 수축군은 총 5만6천1백여명으로, 이는 당시 전체 동원인력 32만2천400여명의 17%에 해당하는 수치다.

충청도 수축군은 39일간 진행된 성벽공사에서 태조 때 쌓은 744척(약 227m)을 제외한 5천256척(1,627m)을 새로 쌓았다.

이때 동원된 충청도 각고을의 수축군들은 'OO 구간은 우리가 쌓았다'는 의미로, 성벽공사 시작 지점에 각고을 이름을 예외없이 새겼다. 이른바 '각자 성돌'이다.

각자 성돌은 완공후 성벽이 무너지면 당시 구간 공사를 했던 수령이나 수축군들에게 반드시 책임을 묻겠다는 사후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정황상 당시 수축공사에는 충청도 54개 군현이 지명을 모두 새겨졌을 것으로 보이나, 현재는 陰城, 黃澗, 木川, 永同, 沃川, 鴻산, 夫餘, 丹陽, 結城, 平澤(당시는 충청도) 등 10개 고을이름만 확인되고 있다.

10개 고을의 각자성돌 특징을 부분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陰城' 자가 새겨진 성돌은 기단석 위에 올려 있으며 면석을 5㎝정도 물림쌓기를 했고, '黃澗' 자를 새긴 성돌은 가로 124, 세로 43로 2단 위에 놓여 있다.

각자성돌에 새겨진 '永同'(원) 글자다. 이곳부터 영동 사람이 도성을 쌓았다는 의미로, 나중에 성벽이 무너지면 책임을 져야했다.

'永同'(사진)을 새긴 성돌은 현재 2단 위에 놓여 있으나 일대 성벽 전체가 무너진 것을 밑부분부터 다시 축조한 것이기 때문에 본래 있던 자리는 아니다. '옥천' 자가 새겨진 성돌 역시 밑 부분부터 보수를 했기 때문에 본래 위치는 아닌 것으로 봐야 한다.

이밖에 지금의 홍성을 의미하는 각자 성돌은 '鴻山始'로, 그리고 단양과 관련된 것에는 '丹陽造徘始'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두 표현은 鴻山, 丹陽 수축군이 성벽 축조를 시작했다는 의미를 지닌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한편 세종실록을 살펴본 결과, 당시 한양도성 수축공사를 총지휘한 인물은 영의정 정탁(鄭擢·1363∼1423)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조선시대에는 나라의 큰 토목공사가 있을 경우 도감을 설치한 후, 그중 격이 낮으면 6조의 판서, 보통일 경우는 도제조 혹은 제조, 그리고 매우 중요한 공사는 영의정에게 총지휘를 맡겼다.

따라서 당시 세종 임금은 한양도성을 수축하는 일을 국가의 1급 토목공사로 여겼던 것으로 보인다.

/ 조혁연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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