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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전국 확산 주역…조동식 선생 동상 제막식

충북출신 항일운동가 청원군 강내면 태성리서

  • 웹출고시간2013.11.21 18:49:48
  • 최종수정2013.11.22 00:17:41

21일 청원군 강내면 태성리에서 열린 ‘경암 조동식선생 추모식 및 동상건립 제막행사’에서 이시종 지사와 이종윤 청원군수를 비롯한 참석자들이 동상 제막식을 하고 있다.

ⓒ 김태훈기자
94년 동안 역사 속에 묻혀있던 충북출신 항일운동가의 업적이 지역의 각계각층의 힘으로 재조명되기 시작했다.

'봉화횃불만세운동'을 주도한 충북의 애국지사 경암 조동식 선생(1873~1949).

21일 오후 3시 조동식 선생을 기리는 추모 및 동상제막식이 청원군 강내면 태성리에서 열렸다.

이날 추모 및 동상제막식에는 이시종 충북지사와 이종윤 청원군수를 비롯한 각계각층의 인사 200여 명이 참석해 조 선생의 족적을 되새겼다.

조 선생은 지난 1919년 일본에 맞서 3·1운동을 전국으로 확산시킨 주인공이자 근원이다.

교통, 통신, 문서의 전달에 제약이 많았던 지난 1919년 3월23일 조 선생은 청원군 강내면 망덕산 산마루에서 지역 주민들과 함께 봉화횃불을 피워 항일만세운동을 전국에 알리고 독립선언서를 주변에 전달했다.

유관순 열사가 활약한 천안 아우내장터 만세운동(3월31일) 보다 일주일 정도 빠른 시기로 학계는 조 선생이 고안한 봉화횃불만세운동이 전국적인 항일운동으로 번지게 한 요인으로 보고 있다.

조 선생은 그해 3월25일 인근 8개면 봉화주동자로 일본경찰에 체포됐을 당시에도 호되게 일본인을 나무라고 의지를 굽히지 않았던 대쪽 같은 성품을 지녔다고 한다.

탑골공원에서 독립선언문을 읽고 3·1운동을 주도했던 33인의 민족대표 중 일부는 자진 출두하는 타협(?)을 선택했지만 조 선생은 끝까지 굴복하지 않았다.

"나를 전쟁포로로 삼는 것은 인정해도 일본인이 남의 나라에 와서 함부로 처벌할 권한은 없다."

조 선생이 악명 높은 서대문 형무소로 끌려가기 전 공주지방법원 청주지청 조선총독부에 제출한 항소이유서다.

온갖 고문과 핍박을 받으며 2년 동안의 옥중 생활을 마친 조 선생은 지난 1940년 쫓겨나다시피 만주로 이동했다.

당시 조 선생의 곁에는 중국 역사상 처음으로 군 대장신분으로 부주석 자리에 오른 조남기(86) 장군이 있었다.

조 장군은 중공중앙군사위원 6인방 중 한 사람으로서 지난 1992년 한·중 수교에 결정적 역할을 담당했고 이데올로기 대립이 극심했을 당시에도 "한국과 중국의 수교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역설하며 흑묘백묘(黑猫白猫)론을 몸소 실천해 중국의 놀라운 경제 성장의 발판을 닦은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이후 현대자동차의 중국 진출에 발 벗고 나서 한국의 중국 시장 진출에 교두보가 됐다.

지난 2000년 4월29일 60년 만에 고향 땅을 다시 밟은 조 장군은 가족들에게 "강산이 7번이나 변했지만 이 나라의 정신과 마음은 하나도 변한 게 없다"는 말로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조동식 선생의 정신을 되새겼다.

그러나 최근까지 조 장군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남아있어 후손들로서는 조동식 선생의 업적을 기리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지난 1950년 6월 한국전쟁이 발발했을 당시 중공군으로 참전한 조 장군의 후손들은 연좌제의 아픔과 함께 조동식 선생의 정신을 역사 속에 묻어둘 위기에 처해졌었다.

학계를 비롯한 각계의 지속적인 노력 끝에 지난 5월13일 충북대학교 중원문화연구소 소장 박걸순 교수가 '충북의 봉화만세운동과 조동식의 항일운동'이란 기획논문을 발표하면서 조 선생의 생애와 업적이 재조명되기 시작했다.

조방형(60) 경암조동식선생기념사업회 회장은 "이념과 사상의 대립 속에 분단을 겪은 우리는 한·중 수교 이전까지 조 선생의 강건한 독립투쟁 정신을 역사 속에 잃어버릴 뻔 했다"며 "누군가가 나서 조동식 선생과 조남기 장군의 고귀한 정신을 되새겨야 하기에 경암 조동식 선생 기념사업회를 구성하고 이번 행사를 마련하게 됐다"고 말했다.

풍양조씨 27대손 조흥연(68) 본손 대표는 "일 년에 하루 이틀 행사로 언급되고 잊혀지는 3·1운동정신을 생각하면 안타깝기 그지없다"며 "일본 군국주의가 부활될 조짐을 보이는 현 시점에서 3·1운동 당시 봉화횃불만세운동의 창시자이자 충북 애국지사의 업적을 되새겨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청원 / 최범규기자 calguksu@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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