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기사

이 기사는 0번 공유됐고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문헌에만 존재하던 고려시대 '낭무' 발견

증평 추성산성 5차 발굴조사 결과
군 초소로 사용됐던 흔적 발견

  • 웹출고시간2014.10.16 11:12:52
  • 최종수정2014.10.16 16:03:38

중원문화재연구원 조사단(원장 강경숙)이 "온돌 건물지 3동은 고려 인종 1년(1123) 송나라 사신 서긍(徐兢)이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에서 개경성을 묘사했을 때 시설되었을 '낭무(廊·)'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토성(土城)에서 조사된 적은 유일하다"고 밝혔다.

증평군과 (재)중원문화재연구원은 지난 1월23일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527호로 지정받은 증평 추성산성(曾坪 杻城山城)에 대한 5차 발굴조사 결과를 오전 11시 추성산성 발굴현장에서 군민들에게 공개하고 설명회를 개최한다.

이번 5차 발굴조사 결과 주거지 4기, 고려시대 (추정)북문지 1기, 온돌 건물지 3동, 적을 방어하기 위해 목책 시설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성벽 토루 상면에 위치한 목주열(木柱列)과 남벽에 위치한 목주열 등이 조사됐다. 또한 "토루 상면에 설치된 목주열 또한 목책시설로 추정되는데, 이 또한 조사된 사례가 이번이 유일하다"고 발표했다.

군은 이번 발굴 결과 추성산성 북성의 초축(初築)은 한성백제에 이루어졌으며 고려시대에 이르러 다시 개축(改築)되어 사용된 것으로 우리 지역의 고려시대 역사를 채워나갈 수 있는 소중한 역사적 자원의 발견으로 보고 있다.

홍성열 군수는 "증평 추성산성은 우리 증평의 대표적인 문화재로 그 동안 학술적 역사적 가치를 평가받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으며,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될 만큼 그 가치를 인정받게 되었다"며, "향후에는 증평의 랜드마크로 조성하기 위해 식생정비, 성벽 복원 등 연차적 정비사업을 시행해 군민과 방문객들에게 살아있는 역사문화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전했다.

증평 추성산성은 지방에 존재하는 가장 큰 규모의 한성백제 시기(4~5세기) 토축(土築) 산성으로, 내성(內城)과 외성(外城)의 이중 구조로 된 남성(南城)·북성(北城)의 독특한 배치를 이루고 있으며, 성벽 축성방식은 판축기법(版築技法)의 전 단계인 성토다짐과 준판축기법이 사용되었다. 또한 남성의 남문지(南門址)는 이례적으로 계곡의 중앙부에 위치하고 있어 한성백제 단계의 성문과 수문(水門)의 발전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2009년부터 2014년까지 5차례에 걸친 발굴조사 결과, 지역 고유 양식의 유물을 비롯하여 가야 지역 및 영산강 유역에서 출토되는 유물이 함께 나와 당시의 국제정세를 파악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성벽의 잔존상태가 양호하여 한성백제 산성의 축성기법 등에 관한 연구에 있어서 중요한 학술적 가치를 지닌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증평 / 김성훈기자 hunijm@hanmail.net
배너
배너
배너

랭킹 뉴스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배너

매거진 in 충북

thumbnail 308*171

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