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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역사의 여명기, 이렇게 시작됐다

조상기씨 논문
3세기 무렵돼야 비로소 역사 초입 마한문화 시작
4세기 후반되면 마한 물러가고 청주지역 백제화
신라, 보은 삼년산성통해 청주진출 삼국통일 기반

  • 웹출고시간2014.10.20 16:02:53
  • 최종수정2014.10.20 16:15:23

신봉동백제고분군 발굴당시 모습이다. 조상기씨는 백제문화 유입이 이때부터 본격화됐다고 주장했다.

청주 역사는 언제부터 여명기를 맞이 했을까.

청주 역사의 여명기를 고고학적 물질문화를 통해 규명한 논문이 나와 주위로부터 관심을 끌고 있다.

조상기씨

조상기(중앙문화재 연구원장·사진) 씨가 얼마전 '청주지역 3~5세기 토기의 전개양상과 정치체의 변동' 논문으로 단국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조원장은 고고학적 물질, 그중에도 토기의 출토 양상을 중심으로 청주 역사의 시작 시기를 원삼국기, 백제토기 성립기, 백제토기 확산기, 백제토기 발전기 등 4단계로 해석했다.

그리고 이를 토대로 청주의 정치체의 변화를 추적, 청주 역사의 여명기 변화상을 규명하려 했다.

그 결과, 청주역사 여명기는 흐릿하지만 2세기 무렵부터 '어떤 내용'을 문화적인 물질로 보여주기 시작했다.

그의 논문에 따르면 청주는 3세기 무렵부터 마한문화가 존재하기 시작했다. 세형동검, 청동의기 등 청동기 유물이 2세기 문화층에서 출토됐다.


3세기에는 낙랑계 유물인 칠기류가 송절동고분에서 출토됐으나 마한문화와는 관련이 먼 편이었다. 한사군의 한 부류인 낙랑은 313년(고구려 미천왕 14) 한반도에서 완전 축출된 바 있다.

청주지역에서 마한문화가 절정을 맞은 것은 3세기 후반이었다. 이 시기 들어 비로소 마한유물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고 분묘군도 송절동에서 봉명동으로 이전하기 시작했다.

4세기 중반들어서는 신봉동고분군이 본격적으로 조영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환두대도와 마구가 등장하는 등 백제문화의 유입이 급증했다.

그러나 신봉동고분군에서 출토된 환두대도의 등급으로 미뤄 한성백제가 청주지역을 전략적으로 크게 중요시 여긴 것 같지는 않다고 논문은 밝히고 있다.

환두대도는 그 위계가 금장용봉문-은장용봉문-동지금장삼엽 등로 구분되나 청주 신봉동고분군에서는 철제환두대도가 출토됐다.

논문은 이에 대해 "당시 백제는 고구려 고국원왕을 살해한 것에서 보듯 북방진출에 더 무게를 두고 있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런 가운데 마한이 서기 369년 백제 근초고왕에게 정복당하면서 청주지역도 완전히 백제의 영향권 아래 놓이게 됐다.

그러나 백제의 대청주 영향력은 1세기를 넘지 못했다. 고구려 장수왕이 수도를 평양으로 천도(462년), 남진 정책을 추진하면서 청주는 일시적으로 고구려 치하에 놓였다.

그러나 신라가 보은 삼년산성을 기반으로 북진정책을 추진하면서 청주지역은 이번에는 신라의 치하에 놓이게 됐다.

이때가 6세기 전반으로, 그 직전 신라는 문의 미천리에 거점을 마련했다. 신라를 이를 바탕으로 7세기 후반 삼국을 통일했다.

이번 논문은 토기를 통해 청주역사의 여명기를 규명하려 한 최초의 시도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어려운 주제를 스피드하고 쉬운 문제로 서술하면서 마치 대하소설을 읽는 것처럼 웅혼한 느낌을 안겨주고 있다.

/ 조혁연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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