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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사'와 '사뇌사' 혼용된 사찰명 아니다

청주博, '太平十五年'(1035년) 명문 새롭게 확인
2백여년간 '사내사'로 불리다가 '사뇌사'로 변경
'용두사' 사찰명도 확인 두 대찰 교류 있었던 듯

  • 웹출고시간2015.01.28 18:59:30
  • 최종수정2015.01.28 18:59:30
고려시대 청주지역에 존재했던 사찰인 '思內寺'(사내사)와 '思惱寺'(사뇌사)는 혼용된 것이 아닌, 2백여년간 '사내사'로 불리다가 '사뇌사'로 사찰명이 바뀐 것으로 확인됐다.

국립청주박물관(관장 윤성용)은 최근 《청주 사뇌사 금속공예Ⅰ·Ⅱ》 보고서를 발간했다.

청동접시의 '사내사' 명문. '太平' 명문이 보인다. (왼쪽) 철동발우의 '용두사'(세로 글자) 명문.

사뇌사 유물은 지난 1993년 10월 청주 사직동 용화사주변 무심천변에서 4백80여점이 무더기로 출토, 그 수량과 다양성 때문에 지금까지도 국내 학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이와 관련, '사내사'와 '사뇌사'라는 절이름이 여러 종류의 금속유물 표면에 함께 보이고 있어 지금까지는 당시 혼용됐던 사찰명으로 추정돼 왔다.

그러나 이번에 청동접시 표면에서 '太平十五年乙亥四月日造思內寺彌勒·子入卜四兩一目'의 명문이 새롭게 발견되면서 그렇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명문은 '태평 15년 을해 4월일에 사내사 미륵(전) 호자를 만드는데 들어간 무게가 4량짜리 한 벌이다' 정도의 뜻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태평 15년'인 고려 1035년에는 '사뇌사'가 아닌 '사내사'로 불렸음이 확인됐다. 그러나 지난 1993년 발굴 당시에는 '사뇌사'와 '사내사'가 동시에 관찰되면서 절이름이 혼용됐다는 추정이 있어 왔다.

발굴 당시 '사뇌사' 명문이 새겨진 청동금고는 1249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됐고, 이는 진각국사 혜심이 1226년 사뇌사에서 하안거를 한 것에서도 확인된 바 있다. 그러나 이번의 확인으로 '사내사'라를 절이름이 2백여년간 불려지다 어떤 연유로 '사뇌사'로 바뀐 것임이 밝혀졌다.

이번 보고서는 청동 발우에서 용두사지 철당간이 세워져 있었던 '龍頭寺' 사찰명도 새롭게 확인, 두 대찰 사이에 교류가 있었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한편 최근 문화동 일대에서 충북도문화재연구원이 '西原府' 명문이 새겨진 대형 청동향완을 발굴한 바 있어, 이들 고려시대 금속유물의 상관관계를 규명하는 것도 지역학계의 주요 관심사가 될 것으로 보인다.

/ 조혁연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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