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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천의 재발견 - 역사속의 사건

'슬픔의 역사'도 함께 흘러

  • 웹출고시간2010.07.21 18:58:58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무심천은 그 독특한 이름 때문에 초월성내지 무욕적인 이미지를 연상시킨다. 따라서 일부 외지인은 그 고즈넉한 분위기를 느끼려 무심천을 찾았다가 수량이 적어 실망을 하곤 한다.

세월 속의 무심천은 그냥 무심(無心)하게만 흐르지 않았다. 청주 역사의 현장을 생생히 목격했다. 뿐만 아니라 무심천 공간 자체가 역사의 주무대가 되기도 했다.

조선시대 청주읍성도 모습이다. 임진왜란 때 4개 민관군은 무심천을 일제히 건너 청주성을 공격, 탈환했다.

무심천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근현대의 역사적 사건으로는 △임진왜란 청주성 전투 △이인좌의 난 △동학전투 △6.25 집단학살사건 등이 꼽히고 있다.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했다. 추풍령-옥천-보은 등의 루트를 따라 올라온 왜군의 한 일파가 무혈입성 하다시피 청주성을 점령했다.

관의 지휘권은 붕괴됐고, 여기에 관군과 민군의 갈등이 야기되면서 청주성은 약 3개월 동안 왜군의 수중에 놓였다.

그해 8월 1일 조헌이 이끄는 군사는 회덕을 출발해 청주성 서문을, 청원 안심사에서 거병한 영규대사는 역시 청주성 서문을 공격했다.

부모산에 집결해 있던 박춘무는 청주성 남문을, 충남 동진평이라는 곳을 출발한 이옥의 관군은 청주성 북문을 공격했다. 이때 4개 민관군이 일제히 건넜던 곳이 무심천이었다.

이인좌는 자신이 속해 있던 소론이 정권에서 배제되자 영조에 반기를 들었다. 그는 무기를 상여에 숨기고, 반군은 상주와 조문객으로 변장케 한 후 낮동안 청주 '남수'(南樹)에 매복했다.

'남수'는 청주 남쪽의 숲이라는 뜻으로, 지금의 분평동 어디쯤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지금의 운천동에는 북쪽의 숲이라는 뜻의 '북수'(北樹) 흔적이 남아 있다.

이인좌가 이끄는 반군은 밤이 되자 청주성 남문을 공격한 끝에 충청병사 이봉상 등을 살해했다. 당시 반군들은 무심천 남석교를 건넜을 것으로 추정된다.

1894년 무심천을 사이에 두고 동학농민군과 관군 사이에 일대 회전이 벌어졌다. 이 전투에서 양측은 무심천 제방에 시체가 널부러질 정도로 적지 않은 인명피해를 입었다.

모충동에는 당시 숨진 관군의 위패를 봉안한 모충사가 위치하고 있다. 행정명 모충동은 그 모충사에서 유래했다.

6.25 때 청원 남일면 분터골, 북이면 옥녀봉, 청주형무소 등에서는 이른바 보도연맹사건이 발생, 적어도 수백여명이 이데올로기 이름으로 희생됐다. 우익이 좌익은 공격한 사건이었다.

그해 청주 동공원, 무심천 서문대교, 부강 금강변 등에서도 국가권력에 의한 집단학살 사건이 일어났다. 이번에는 좌익이 우익을 공격했다.

일제강점기 때 청주 무심천에는 문둥병으로 불리는 나병환자들이 많이 몰려들어, 다리 밑에서 집단 노숙을 했다.

동아일보 1939년 7월 18일자가 '부쩍는 무심천 문둥이떼' 제목으로 청주의 슬픈 자화상을 기사화했다. 기사 원문을 있는 그대로 옮기면 다음과 같다.

'청주지방에는 하절을 당하면서 각처에서 라병환자가 떼를 지어 몰려드는 것이 상례인데 그 이유를 들으면 충청도는 산수가 수려하야 하절 요양에는 제일 적절한 곳이라고 하는 것이 그들의 답변인데 요지음 그 수가 벗적 격증하여 청주 무심천의 청주교 청남교 양교하에 근거지를 삼고 30여명이 한가족 살림살이를 배치하고 즉 집단적 생활을 도모하고 있어서 낮이 되면 시내 거리거리에 퍼져 각기 먹을 것을 구하고 저 횡행하고 잇는데 그 행동이 자못 불미한 중에 부녀자 어린이들에게 못된 욕설을 감행하는 등…'

일제강점기 때의 무심천에는 영유아 유기사건이 유난히도 많이 발생했다. 동아일보, 매일신보 등 당시 신문기사를 보면 1937~1939년 사이에 6건이나 발생했다. 영유아 사망률이 높았던 당시까지도 '애장'을 하는 사례가 자주 발생했다.

애장은 질병 등으로 사망한 아이의 시체를 봉분없이 가마니 등에 싸서 산에 얕게 묻는 것을 일컫는다. 무심천 영아 유기사건은 애장의 변형된 모습으로 여겨진다.

역사속의 무심천은 무심하게만 흐르지 않았다.

/ 조혁연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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