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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에 맺힌 조선인의 한(恨)

우리의 상처는 아직 치유되지 않았다

  • 웹출고시간2013.10.20 18:16:37
  • 최종수정2013.10.20 18:16:37

영령들께 바치는 노래

바라보면 조국은 원한의 먹구름

첩첩이 쌓이고 가린 천리만리

역사의 흙탕물 폭포 같이 쏟아질 적에

양떼처럼 희생의 제물이 되어

바다 하늘 맞닿은 곳으로 끌려와

광풍에 생명의 등불 꺼지던 날

하늘도 울고 파도도 울고....(중략)

죽은 씨알에서 열린 광복의 열매

그 열매 제단 위에 올려놓고

겨레의 정성과 이름으로 바치는 위로

넋들이여 웃으며 여기 내려와

영광스럽게 받으시라

맺혔던 원한 연기 같이 사라진 오늘

조국이사 단숨에 달리는 지척일세

산천이 울리게 승리의 합창 부르며

돌아가 그 품에 안기시라

그 품에 안겨 겨레의 힘이 되시라

- 1975년 8월, 글 노산 이은상, 글씨 평보 서희환
오키나와의 10월은 뜨거웠다. 가을이 처처에 내린 한국과 사뭇 달랐다. 한 여름이었다. 수은주가 30도를 웃돌았다. 바다 빛은 에메랄드였다. 시원함이 넘쳐났다. 마부니 언덕에서 바라본 동중국해는 아름답고 평화로웠다. 에메랄드빛 바다와 산호초는 압권이었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게 있다. 그 곳엔 우리 선조들의 슬픈 운명이 있다. 오키나와는 1945년 태평양 전쟁 막바지에 가장 치열한 전장이었다. 당시 희생자 25만여 명 중 조선인들도 상당수 포함돼 있다. 강제노역이나 학도병으로 끌려왔던 조선인은 1만 명에 달했다.

평화공원 뒤 해변

오키나와 현은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평화기념 공원을 만들었다. 당시의 참상을 웅변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이곳에서조차 우리 선조들은 철저하게 무시당하고 있었다. 위령비로 세워진 '평화의 비(碑)'에는 23만 명의 희생자 이름이 새겨져 있다. 음각된 조선인 희생자 이름은 447명(남한 365명, 북한 82명)뿐이다.

공원내 한국인 희생자 명단.

수천 명의 조선인 희생자가 생겼을 텐데 분통이 터진다. 그것도 공원 맨 뒤편 구석에 불편하게 자리 잡고 있다. 미·일 희생자들의 이름이 맨 앞자리나 중간에 있는 것과 아주 대조적이다.

오키나와 희생자 중 가장 억울한 사람은 조선인들이다. 바로 우리의 선조들이다. 공격했던 미군도, 방어하던 일본군도 아니다. 일본군에게 강제로 끌려와 이역만리서 죽임을 당한 우리의 선조들이다.

오키나와 평화기념 공원

조선인 희생자들의 이름이 새겨진 비석 앞에서 잠시 묵념을 했다. 이후 중앙에 있는 '평화의 불'에서부터 언덕을 따라 다양하게 서 있는 위령탑들을 둘러봤다. 저 멀리 펼쳐진 에메랄드 빛 바다에서 선조들의 당시 감정에 빠져봤다.

오키나와 전투의 참상을 소개한 자료관도 찾았다. 당시의 참혹함이 느껴졌다. 곧바로 한국인 위령탑 공원을 찾았다. 그곳에는 노산 이은상 시인이 쓴 '영령들께 바치는 노래'가 음각돼 있었다. 읽어 내리는 동안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안으로 들어가자 돌로 쌓은 한국식 봉분이 나타났다.

한국인 위령탑

제단 앞에는 '韓國人 慰靈塔'이라 새겨진 커다란 비석이 서 있다. 그 아래에 고국의 팔도에서 가져온 돌들이 억울한 영혼들의 향수를 달래주고 있었다. 제단 아래 양각된 화살표는 고국 방향을 표시하고 있다. 목이 뜨겁게 울컥했다. 떠날 무렵엔 노산의 시구가 한 낯의 더위를 식힐 정도로 감정을 시리게 했다.

평화기념 공원에서 좀 떨어진 가자쿠 공원에도 들렀다. 이곳에도 한국인들의 희생을 추모하는 묘지와 비가 있다. 하지만 장소도 좁고 기념물도 별로 없다. 당연히 당시 상황을 제대로 알기 어렵다. 그저 태평양 전쟁 때 한국인들도 오키나와 전투에서 희생당했구나 정도를 알리고 있다.

선조들의 피와 눈물, 그리고 죽음

오키나와는 한반도만큼이나 쓰라린 역사를 지닌 곳이다. 그래서 이곳 원주민들에게 평화공원은 소중한 자산일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인에게 이 공원은 여전히 불편하다. 아니 불쾌한 존재다. 이름만 '평화'인 또 다른 역사왜곡 현장이기 때문이다.

옛 일본해군 지하본부.

조선인 영혼들은 오키나와에서 가장 먼저 위로받아야 한다. 하지만 평화기념 공원은 우리 선조들의 한을 달래지 못하고 있다. 억울함에 대한 설명도 없다. 수많은 선조들의 주검은 아직도 찾지 못하고 있다.

오키나와 전투가 왜 벌어졌을까. 미국의 일방적 침공인가. 아니다. 일본은 그 문제부터 생각해야 한다. 아무런 까닭 없이 미국의 공격이 감행됐겠는가. 결코 아니다. 일본의 태평양 전쟁 발발 책임을 묻기 위해서다.

일본 정부는 누가, 왜, 무엇을 위해 전쟁을 일으켜 수많은 목숨을 앗아갔는지에 대해 설명해야 한다. 그리고 조선인 원혼들을 달랠 대책을 마련해 한다. 아직도 구천에서 떠도는 영혼을 위한 최소한의 예의가 필요하다.

그동안 강산이 여러 번 바뀌었다. 누군가에게는 잊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하지만 어떤 이에게는 여전히 시리도록 사무치는 시간이다. 가슴 속에 얼어붙은 한이 녹지 않기 때문이다.

선조들의 오키나와 희생은 우리의 아픈 역사다. 잊을 일이 결코 아니다. 시리도록 슬픈 에메랄드빛의 오키나와다. 아~ 한 맺힌 선조들이여, 부디 영면하시길

/함우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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