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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3.10.20 18:16:02
  • 최종수정2013.10.20 18:16:09
오키나와는 우리 역사와 많은 연관성을 갖고 있다. 풍운아 허균의 '홍길동'에서 길동이 세운 율도국의 실제 모델로 알려져 있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오키나와의 옛 왕국 류큐(琉球)는 조선을 사랑해 무려 40회나 방문했다. 조선도 3번이나 사절단을 보냈다.

미군포로 수용소 일본군들

그러나 오키나와의 근대사는 아주 슬프다. 아니 참혹하다. 오키나와는 16세기까지 중국에 조공을 바치면서도 독립국가를 일궜다. 그게 바로 류큐 왕국이다. 이후 일본에 점령당한 뒤 메이지유신 때 강제 합병됐다. 2차 세계대전 후 미군의 통치를 거쳐 1972년 일본 본토로 귀속됐다.

2차 세계대전 때 일본 땅에서 유일하게 지상전이 벌어진 곳이 오키나와다. 전투로 57만여 명의 주민과 군인 중 20만 명의 희생자가 나왔다. 3개월이란 짧은 기간에 '철의 폭풍'이라 불리는 전투로 10명 중 4명꼴로 목숨을 잃었다.

평화기념공원 내 설치된 평화기념관에 전시된 오키나와 전투 당시 사용된 미군 폭탄들.

3개월간 미군이 퍼부은 폭탄은 271만발. 오키나와 주민 한 명당 5발 가까이 투하된 셈이다. ··한 그루의 나무, 한 포기의 풀조차도 모조리 타버려 먹을 식량이 없다····밤에는 모두 지팡이를 가지고 걸었다. 시체를 밟지 않기 위해서였다··란 증언은 당시의 처참한 상황을 말해준다.

오키나와의 새 주인이 된 미국은 주민들에게 자치권을 부여했다. '오키나와'란 일본 용어 대신에 원래의 '류큐'를 쓰도록 했다. 일본왕의 연호사용도 금지했다. 류큐인들은 당연히 독립국이 될 줄 알았다. 1970년엔 '류큐독립당'까지 만들고 공화국을 세울 꿈에 부풀었다.

그러나 미국은 1972년 5월 오키나와를 일본에 반환했다. 류큐는 다시 '오키나와'가 됐다. 지금도 미국과 중국, 일본의 끝없는 패권다툼에 이리 구겨지고 저리 짓이겨지고 있다. 내동댕이쳐지고 있다.

주일 미군기지의 75%가 오키나와에 있다. 미국은 최근 수직이착륙기 ··오스프리··를 오키나와의 미 해병대 푸텐마 비행장에 배치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주민들의 반발이 크다. 머리에 띠를 두른 주민들과 벽면에 붙은 반대 포스터를 볼 수 있다.

그러나 점차 변하고 있다. 지난 2000년 오키나와에서 G8 정상회담이 열린 뒤 세계의 주목을 끌었다. '치유의 섬' 혹은 '슬로 라이프의 섬'이라는 이미지를 얻어가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현상이 오히려 오키나와의 모순된 현실을 가리고 있다. 기지 문제, 오키나와 전투 등 무거운 현실을 망각하게 하고 있다.

오키나와는 미국의 군사 전략과 일본의 국가이익과 맞물려 있다. 지금도 여전히 강대국의 패권놀음에 울고 있다.

/글·사진: 함우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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