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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백자항아리, 그 무한한 상상력에 날개를 달다

사용하다 꺠지면 생명 다하는 조형물 인간과 닮아

  • 웹출고시간2008.12.21 16:33:20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사람들은 종종 묻는다. 어떻게 하면 글을 쓸 수 있는지. 관찰하고 사색하세요라고 답한다. 글을 잘 쓴다는 것을 얘기하려는 것이 결코 아니다. 단지 이 얘기를 서두로 꺼내는 것은, 전시장에서 조선백자항아리를 접하고 한동안 그 주변을 맴돌며 들여다보고, 보고 또 보게 된 당시의 느낌과 그로 인해 사색하게 된 결과물이 이 글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조선시대 도공과 인터뷰 한 것이 아니니 정확하지 않을 수 있고, 작업하는 과정을 보지 않았으니 모르는 것이 많다. 백자항아리에 대해 어떤 전문서적을 따로 보거나 강의를 들은 적도 없으니 전문적인 글도 될 수 없다. 단지 누군가 만들었을 이 조선 백자 항아리가 좋아 그저 하염없이 보았을 뿐이고, 보다 보니 그것 역시 한 점의 그림으로 비쳐지기에, 주관적으로 느낀 이러저러한 생각들이 글이 되고 있는 것이다.

청화백자 송하호문 항아리(靑華白磁 松下虎文 壺)

18세기, 높이 42.5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어떤 장식성이 배제된 순백의 불룩한 항아리가 왜 그리 시선을 끌었을까. 색감이 주는 고요함 때문일까. 아니면 흠 잡을 데 없이 완벽한 항아리로서의 조형적인 아름다움 때문일까. 그 어떤 이유이던지, 그것을 들여다보면 무수한 상상력이 날개를 단 것처럼 펼쳐진다는 것이다. 깊은 안개 속에 들어 앉아 있는 느낌이기도 하고, 그 당항아리를 종이 삼아 붓을 들면 그 어떤 그림도 그려질 것 같은 빈 여백의 유혹이 느껴지기도 한다. 깊은 바다 한가운데 물 위에 서 있는 것 같은 위태로움도 느껴지고 수면위의 반짝이는 물결처럼 한없이 눈부시기도 하다.

아이라도 품고 있는 듯 한 풍만한 여자의 듬직한 자태를 바라보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세상에서 취할 수 있는 온갖 욕심을 버리고 마음을 비운 고결한 사람의 속내를 보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이 조선 백자 항아리가 더 매력을 끄는 것은 조각 작품과 달리 그릇이라는 점이다. 조각 작품은 마치 영원한 무생물처럼 사람이 만져볼 수 없는, 그저 곁에 두고 감상이나 하면 그만이지만 이 그릇이라는 것은 사람이 볼 수 있고, 직접 만져볼 수 있고, 물이나 음식이나 술을 담아 사용하고, 그러다 깨지면 미련 없이 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엄연히 생명이 있는, 가장 인간을 닮은 조형물이라는 점이다.

사람이 흙으로 빚어 유약을 발라 천도가 넘는 불길 속에서 구운 것이고, 항아리가 그 불길 속에서 견디어 낸 것이고, 그것을 사람들이 만져 사용하고 언젠가는 깨져 그 생명을 다하는 것이 당연한 운명이라는 점이다. 일반 조각 작품과 다른 이 그릇의 운명이 독특하게 와 닫는다.

백자 달항아리

17세기, 높이 41.2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옛 사람들은 그릇을 '세간'이라 하였다. 어린 시절만 해도 이 세간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했다. 세간이란 집안 살림에 쓰는 모든 기구를 일컬었다. 결국 '살림살이'를 말하며 자녀나 형제를 분가시키거나 할 때 살림을 내거나 세간을 낸다는 표현을 쓴다. 그러던 세간이 언제부터인가 잘 사용되지 않고 있다. 세간이라는 어휘가 '살림살이'나 '그릇' 등으로 세분화된 영향이다. 최근에 살림살이는 집안에서 사용되는 모든 전기제품이나 그릇을 포함한 다양한 부엌용품 까지, 옛 사람들이 말하던 세간에 가깝고 그릇은 음식이나 물건을 담는 용구로 제한되어 있다.

그렇다면, 여기서 '그릇'은 단지 음식과 물건만을 담아 사용해야 하는 그릇이 아니고 집안에서 소용되는 장식용의 물건까지 아우르는 '세간'이 정확할 것이다. 이 세간은 사라져가는 어휘이고 살림살이는 너무나 광범위하니 보편적으로 와 닿는 '그릇'으로 흙으로 빚은 모든 것을 대체하면 될 듯하다.

이렇게 전제하면서, 그릇이 된 백자 항아리는 세월을 거슬러 우리 곁에 까지 왔고 이것은 너무나 존귀한 것이 되어 그릇으로의 그 쓰임은 멈춘 채, 박물관 유물 전시실에서 사람들의 눈과 마음을 움직이는 하나의 아름다운 조형물이 되어 있는 것이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이 백자항아리(달항아리)는 조선 중기인 17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높이가 41.2cm이다. 박물관 자료집에 의하면 조선 중기 초기가 되면 조선 전기에 비해 유색이 밝아지고 그릇의 입술이 내만(內彎)한 새로운 기형이 나타나며 굽의 직경이 좁아지는 등 커다란 변화를 보이는 시기다. 달항아리는 그러한 변화를 대변하는 좋은 예로 주둥이가 예각(銳角)을 이루고 몸체는 둥근 선을 그리면서 주둥이보다 좁은 굽에 이르는 등 중기만의 특징을 보이고 있다.

이 백자항아리는 조선 중기 그릇의 유행을 가늠할 수 있는 전형적인 형태인 것이다. 이 백자항아리의 형태에는 또 다른 맛이 숨어 있다. 만드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이지러진 형태를 감상하는 맛이다. 항아리 둘레 중 가장 넓은 지점을 중심으로 두 개의 대접을 붙여 하나의 항아리가 되도록 하는 기법은 달항아리가 한쪽으로 기울거나 비뚤어지거나 한 이유가 된 것이다. 이런 기법은 고요한 순백색이, 정제된 백자의 색채미가 갖고 있는 완벽함을 흐트러뜨리고 있는 것이다.

결국 사람이 손으로 만든 것이어서, 기계로 찍어내듯 만든 현대의 그릇이 아닌, 그 현대의 그릇이 갖고 있지 않은 가장 인간적인 모습을 갖고 있는 것이 이 백자 항아리 인 것이다. 그 맛을 느껴보는 것이 또한 독특하다.

백자철화매죽문대호(白磁鐵畵梅竹文大壺)

16세기, 높이 40.5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같은 시기에 만들어진 다른 항아리들도 있다. 백자 철회 항아리나 청화백자 항아리, 진사 항아리 등이 있다. 철회 백자는 백토로 그릇을 만들어 초벌구이를 하고 표면에 산화철 안료로 문양을 그리고 그 위에 백자 유약을 입혀 번조한 것으로 문양은 철정색, 다갈색, 흑갈색을 띠며 석간주라 불렀다. 문양은 지역마다 조금씩 특색을 띠었다고 하는데, 백토에 사실적인 형태의 용이나 매화, 대나무, 국화문 등을 그려 넣었다.

또 백자에 청화문양을 넣은 청화백자 항아리의 경우 이 시기에는 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 등의 식물 문양과 산수화, 화조, 어조, 문자명 등이 그려졌다. 이들 문양은 세필로 간결하게 그리고 있는데, 운룡문양은 중기 말부터 더욱 성행한 것으로 전해진다.

백자항아리가 탄생한 조선 중기인 이 시기에는 이렇듯 청화와 철회, 진사 등이 서로 병용되어 사용되었던 것이다. 그 가운데 이 백자 항아리가 더욱 돋보이는 것은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한계를 실험한 듯한 그릇이라는 점이다. 청화나 철회, 진사가 백색에 다양한 색감을 입혀 무엇인가 꾸며 보려는 시도를 한 것과 다르게 아무것도 덧붙이지 않은 고유한 백색으로 형태를 완성한 백자에서만이 완벽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우선 시선을 분산하지 않고 집중할 수 있으며, 그 표면에 감상자 나름대로의 무수한 상상력이 동원된 그림을 그려 넣을 수 있다는 점이다.

도공은 이 완벽한 경계선을 넘을 수 없을 때 청화를 그리고 진사를 그려 넣지 않았을까 한다. 진정, 도공과 그릇이 일체감을 이루거나 그릇이 도공 자신이거나 그릇과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는 무아의 경지에 다다른 이만이 빚을 수 있는 것이 조선시대의 백자항아리가 아니었을까 싶다.

무념무상의 고혹한 아름다움이 도처에 흐르고 있는 순백의 달항아리가 세상을 향해 말을 하고 있는 듯 하다. 항아리처럼 속을 비우고 마음을 비우고 겉에 칠해진 군더더기를 지워 보라고.

김정애/ 문화담당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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