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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족·지원기능 갖춘 세종시 돼야"

충북일보 창간 9주년 기념 박진도 충남발전연구원장 기고

  • 웹출고시간2012.02.20 19:31:47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박진도

충남발전연구원장

세종시는 올 9월부터 국무총리실을 포함한 6개 중앙행정부처를 시작으로 2014년까지 16개의 중앙행정기관과 20개의 소속기관이 이전하고, 2030년까지 인구 50만명의 도시로 조성될 계획이다.

그간 충청인은 세종시가 지역발전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유치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세종시 건설은 국가의 균형발전을 위한 국가적 사업이지 지역개발사업은 아니다. 문제는 세종시가 충남, 대전, 충북과 함께 상생하는 광역도시권으로 성장하지 못한다면 오히려 지역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미 세종시로 편입되는 공주시, 연기군 주민들 사이에는 지역의 공동화 문제를 심각하게 제기하고 있는 실정이다.

세종시가 성공적으로 건설되고 충청권과 상생·발전하기 위해서는 다음의 몇 가지 점을 고려해야 한다.

우선 세종시는 자족성과 경쟁력을 갖추어야 한다. 자족기능이 없는 세종시는 주변 중소도시의 인구와 자본을 빨아들이는 블랙홀로 작용해 지역발전에 막대한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세종시 광역도시권의 미래 신성장동력 인프라로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국방과학산업클러스터 등을 조성하고, 주변지역에 3세대형 국가산업단지와 같은 고용기반을 구축해야 한다. 여기에 세종시의 국제·교육기능과 공주·부여의 백제역사문화산업이 어우러진다면, 세계적인 지식기반산업 클러스터와 경쟁할 수 있는 공간 조성이 가능할 것이다.

둘째, 세종시가 충청권으로 둘러싸인 섬이 되어서는 안 된다. 세종시는 21세기 국제적 수준의 모델도시에 걸맞은 시설과 서비스 기반을 갖추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주변지역의 도시기반과 시설은 이에 크게 미치지 못하여 심각한 격차와 공간구조가 분리되는 현상을 초래할 우려가 크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세종시는 주변 농촌지역의 발전을 지원하는 후원자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세종시 입주기관과 주변 농촌 마을 간 자매결연을 체결해 도농 간 상호교류를 시작하고, 해체된 주민공동체를 복원하기 위해 도시와 순환·공생하는 마을만들기 사업의 전개를 제안한다.

셋째,상생발전사업의 성공적 추진을 위해서는 세종시와 인근 도시의 협력적인 거버넌스를 구축해야 한다. 특히, 중앙과 지방간의 협력적 분권체제를 형성하고, 내발적 지역발전을 위해 세종시와 주변 지역이 하나의 자족적인 공동체로 거듭날 수 있도록 민-관 파트너십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이제 충청권은 세종시와 한 배를 탔다. 세종시 출범을 계기로 대전, 충남·북이 진정한 광역경제권을 형성하고 더 나아가 충청권 전체가 하나의 광역자치단체로 발전하는 방안도 모색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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