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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환

단재문화예술제전 공동추진위원장

수년 전 크게 놀란 일이 있다. 중국인의 책에 등장한 단재는 조선 출신 소수민족의 중국인이었기 때문이다. 마침 중국의 동북공정이 문제가 되던 시절이어서, 단재마저 중국에 빼앗겨 버리는 것은 아닌가 하는 정신적 위기감이 밀려들었다. 그렇다면 단재 신채호는 어느 나라 사람인가? 아마 한국인들은 이에 대해서 의문조차 가지지 않을 것이다. 단재는 한국인으로 태어나서 한국을 위하여 살았으며, 죽어 한 줌 재로 한국으로 돌아왔다는 사실은 틀림이 없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인이라는 것은 매우 순진한 생각이다. 한 개인의 정체성은 그런 주관적 판단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자신이 어떤 국가의 국민이라고 주장한다고 해서, 또는 어떤 국가의 국민이 되고 싶다고 해서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반대도 참이다. 한 개인의 국가적 정체성은 누가 부정한다고 해서 부정되지도 않는다.

이처럼 한국에서는 단재를 한국인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데, 일부이지만 중국에서는 소수민족 출신 중국인으로 보고 있다. 도대체 왜 이런 현상이 벌어졌던 것일까? 이야기는 1910년 망명 당시의 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제의 침략을 근본적으로 부정했던 단재는, 1912년 일제가 식민통치를 위해서 만든 조선민사령을 거부했다. 자신의 이름을 일본식 호적에 올리는 것은 곧 일제의 황국신민이 되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평생에 걸쳐 일관된 절대주의로써, 단재의 일생은 조선의 독립이라는 단 하나의 명제로 수렴된다. 망명 이후 단재는 온갖 간난과 신고를 겪고 오로지 조선의 독립과 민족의 해방을 위해서 노력하다가 1936년 중국땅 차디찬 여순 감옥에서 순국을 하고 말았다.

그런데 1945년 해방 이후 3년간의 반식민지 상태를 거쳐 수립된 국가는 일제의 호적법을 그대로 계승했다. 일제의 호적법을 계승했으므로 단재는 호적이 있을 수 없고, 호적에 따라서 국적이 부여되는 것이어서, 자동적으로 국적이 없게 되었다. 살아서 환국한 경우와 다르게 단재는 순국한 후 유골로 귀환했고 '사자에 대해서는 국적을 부여하지 않는다'라는 법리가 적용되어 자동적으로 국적이 회복되지 못한 것이다. 이리하여 살아서도 고난이고 죽어서도 고난인 단재는 중국에서는 소수민족 출신 망명객으로, 한국에서는 무국적자로 구천에 떠돌았던 것이다.

중국측의 입장에서 보자면, 단재가 중국에 망명하여 정착해서 살았으므로 중국인이라고 하는 것에 무리가 없다. 더구나 한국은 단재의 국적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한국인이 아닌 셈이다. 따라서 단재를 한국인이라고 하는 것은 자기모순에 빠진 아전인수에 불과하다. 물론 법리적으로만 보자면 연개소문에게 대한민국 국적을 부여할 수 없듯이 죽은 사람에 대해서 국적을 부여하는 것이 쉽지는 않다. 하지만, 국가를 만들기 위해서 일생을 바친 독립투사를 그 국가가 부정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것은 국가가 국민을 부정하는 것이고, 현재가 과거를 부정하는 것이며, 한국인이 한국을 부정하는 것이다.

단재의 국적 취득은 간단치 않았다. 2005년 국회에서 <국적법 일부 개정안>이 상정되기는 했으나 법리적인 논쟁에 막혀 통과되지 못했다. 그러던 중 지난 2009년 3월 18일, 법원은 신채호 등 독립운동가 62명에 대해 가족관계등록부의 창설을 허가했다. 국가보훈처가 입법한 것을 판결하는 형식을 취한 이번 결정은 늦은 감은 있으나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이로써 단재 신채호는 온전히 한국인이 되었다. 친일파들이 호의호식할 때 고난의 길을 걸었고, 잘 교육받은 친일파의 후손들이 국가와 사회의 지배계층으로 즐겁게 살 때 독립지사의 후손은 가난에 시달렸다. 이런 역사의 모순을 척결해야 하는 판에 단재 신채호 선생의 국적 회복은 역사가 지핀 희망의 촛불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민족정기를 회복하고 국가정체성 확립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다. 구천에 떠돌던 단재의 넋이 편안해질 것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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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