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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의 예인과 장인들 - '천개의 붓' 유필무

"만들 수 있기에 행복한 난 붓쟁이"

  • 웹출고시간2009.04.16 18:39:36
  • 최종수정2014.07.20 13:28:05

편집자 주

우리는 5000년이 넘는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민족이지만 환경오염으로 동식물들이 멸종하고, 생활문화가 바뀌면서 각종 풍습이나 생활공예품 제작기술 등도 맥이 끊어지고 있다.
예전에 흔했던 황새가 없어지자 막대한 예산을 들여 복원작업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고, 잊혀진 청자 굽는 기술을 다시 찾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혼신의 노력을 쏟아붓고 있다.
그것은 소중한 천연자원이나 문화유산이 한번 사라지고 맥이 끊기면 다시 찾기 어렵다는 것을 반증한다.
불행 중 다행스럽게도 아직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전통의 맥을 잇고자 고군분투하고 있는 이들이 있어 우리는 선조들의 문화나 지혜로운 물품들을 만날 수 있다.
충북 지역에서 이처럼 전통의 맥을 이어가고 있는 예인(藝人)과 장인(匠人)들을 찾아 본다.

마동창작마을 전경 모습.

청주에서 청남대를 향해 가다가 청남대와 갈라지는 길에서 한지마을로 유명한 소전리 방향인 좌측으로 돌아 대청호수를 끼고 굽이굽이 돌아가면 묘암리를 거쳐 깊은 산속에 마동창작마을이 있다.

이 마동창작마을은 본래 초등학교가 폐교된 것인데 2000년에 그림에도 조예가 깊고 본인이 직접 시집을 낸 시인이기도 한 노영민 국회의원(청주 흥덕을)과 치과의사 등 몇몇 예술을 아끼는 사람들이 교육청으로부터 공동구입해 예술가들에게 작업공간으로 제공한 것이다.

이곳에는 현재 전통 붓 장인 유필무씨, 서양화가 이홍원씨, 설치미술가 손영익씨, 돌조각가 송일상씨 등 4명이 밤낮으로 예술혼을 불태우고 있다.

이들 가운데 '붓쟁이' 유필무씨(49)를 찾아 그의 공방인 '필무산방'을 찾았다.


교실 한 칸을 반으로 나눈 10여평의 작은 그의 작업실에는 어린말의 꼬리털로 만들어 크기가 어른 주먹만한 아마미 모필부터 중간 크기의 칡덩굴로 만든 갈필, 족제비털로 만든 세필까지 80여 종류의 붓 수백 필이 벽면에 주렁주렁 걸려있었다.

그는 이곳에서 혼자 눈을 뜨면 일하기 시작해서 더 이상 일할 수 없이 졸릴 때까지 하루 16시간 정도를 붓 만드는 작업을 한다.

일반인들이 알고 있는 서예용 붓은 대개 양의 털로 만든 모필(毛筆)이며, 이처럼 동물의 털로 붓을 만드는 것은 작업과정이 식물성 소재로 만드는 것보다 훨씬 간단하고 쉬운 편이다.

물론 유 작가도 양, 닭, 말 등 동물의 털로도 붓을 만들고 있고, 특히 그가 만든 소의 귓속에 난 털로 만든 붓인 우이모필은 정조대왕을 주제로 한 TV드라마 '이산'에 소개될 정도로 인정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가 전국의 서예가와 장인들에게 인정받는 것은 모필 때문이 아니라 그만이 독특하게 제조법을 개발한 초필(草筆)과 갈필 (葛筆) 등 식물성 소재 붓 때문이다.

초필은 띠풀, 억새풀, 볏짚 등으로 만든 것이고, 갈필은 칡덩굴로 만든 붓을 말한다.

유필무 작가가 자신의 작업방인 필무산방 에서 붓을 만들고 있다. 유 작가는 눈을 뜨면 일하기 시작해 더 이상 일할 수 없이 졸릴 때까지 하루 16시간 정도를 작업에만 열중한다.

"억새, 들풀, 종려나무 등 붓 재료는 사방에 널려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작업장 주변에 대청호 억새 창고, 뒷산에 칡 창고, 들에 볏짚 창고, 밭에 풀 창고 등이 있다며 자연에 감사한다.

그러나 이러한 식물성 소재로 유연성, 탄력성, 함수성 등을 제대로 갖춘 붓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그야말로 도를 닦는 정도의 정성과 노력이 필요하다.

갈필 하나만 보더라도 우선 3~5년생 칡덩굴을 겨울철에 채취해야 한다.

단단한 나무 형태인 이 덩굴을 9번 찌고 9번 그늘에서 말리는 과정을 되풀이 한다.

식물성 재료를 찔 때는 나무나 풀잎의 진액 등을 뽑아내기 위해 소금물을 사용한다.

이렇게 구증구포(九蒸九曝)를 마친 칡덩굴을 망치로 쉼없이 두드려 가느다란 섬유질로 만들어 내는 작업이 가장 인내심을 필요로 한다.

나무나 풀이 끊어지거나 부서지지 않도록 적당한 힘으로 두드리기를 재료에 따라 최소 5천 번에서 3만 번까지 해야 비로소 섬세한 털의 형태로 붓이 된다.

이런 과정을 모두 거치는 데는 최소 3개월 정도 걸린다.

그나마 3개월 동안 이런 모든 과정을 거쳤어도 유 작가의 마음에 들지 않아 마지막 단계에서 불태워 지는 것들이 전체의 90% 정도나 된다.

"붓은 자연입니다. 느리게 기다리고 또 기다려야 꽃과 열매를 얻듯이 더디게 기대려야 제대로 된 붓을 만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그의 인생철학과 작업정신이 맞닿는 대목이다.

유 작가는 이렇게 만들어 진 붓의 손잡이인 붓대도 그냥 처리하지 않고 반야심경, 시(詩), 아름다운 문양 등을 양각하는 정성을 보탠다.

그는 또 붓을 벽걸이 못 등에 걸어놓을 때 사용하는 붓대 끈을 매달 때도 전통문양의 매듭을 만들어 끈을 매다니 작품성이 훨씬 돋보이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붓을 거는 나무판이나 나뭇가지 등도 붓을 걸어 벽면에 붙여 놓았을 때 전체가 하나의 작품이 될 수 있도록 난초 그림이나 다양한 문양을 새겨 넣어 하나의 '오브제'로 승화시키는 창의성을 보이고 있다.

이런 덕분에 아직까지 오랜 세월 그의 붓만을 고집하는 서예가들이 있으며, 서예가 이희영씨는 그의 칡붓(갈필)에 대해 "탄력과 유연성은 물론 거친 맛이 그만이다. 마치 하드 락을 연상케 한다"고 했다.

또 한국공예관의 학예사 안승현씨는 "유 작가의 초필은 일반 모필과 달리 탄력이 강해 서예는 물론 글자를 디자인하는 '켈리그라프'에도 적합하다"며 그 진가를 인정한다.

더욱이 유 작가가 개발한 띠풀이나 억새풀, 볏짚(稿筆) 등으로 만든 붓은 국내는 물론 중국에서까지 희소성을 인정받고 있다.

이런 지난한 제작과정과 예술혼이 담겼으니 아는 사람들이 그의 붓을 단순한 서사도구가 아니라 '명품'이라고 일컫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

얼마 전에는 충북 지역의 한 군(郡)에서 자매결연을 맺은 중국 도시의 관계자들이 왔을 때 유 작가의 붓을 선물했더니 중국 사람들이 너무 좋아하고 감사해 했다는 후문이다.

직지필 시리즈(모필, 양모, 아마미모)

그는 최근에는 신생아의 첫 머리카락으로 붓을 만드는 태모필도 개발했다.

아기가 처음 깎은 머리털을 보관했다가 유 작가에게 맡기면 그것으로 붓을 만들고 붓대에 아기이름, 생년월일시, 부모이름, 부모가 원하는 문장 등을 새겨서 기념품으로 보관토록 하는 것인데 최근 입소문으로 주문량이 늘고 있다.

유 작가는 이처럼 34년 동안 붓 만들기 외길만 걷고 치열한 장인정신을 놓지 않은 결과로 지난 1996년에는 충청북도로부터 우수공예기능인으로 지정받았고, 2005년에는 충북지방중소기업청으로부터 민속공예품 인증서를 받았으며, 지난해에는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를 빛낸 공로로 지식경제부장관상을 받기도 했다.

또 지난해 청주 한국공예관에서 열린 '천 개의 붓 유필무'전은 국내 유수의 언론에 소개되고 전국에서 많은 사람이 찾을 정도로 유명세도 커졌다.

하지만 이런 그도 걱정이 있다.

힘들여 만든 붓이 팔리지 않아 생활인으로서 어려움이 많기 때문이다.

그가 16살이던 1975년 서울의 한 필방에 입사해 기술을 배우고 1988년 자신의 필방을 개업한 이후 한 동안은 붓 사업도 그런대로 먹고 살만 했었다.

그러나 중국산 붓이 들어오고 난 뒤에는 붓 판매량이 급감했고, 지난해 고유가 시기 이후에는 전국에서 찾아오던 이들의 발길마저 거의 끊어지고, 지자체의 지원은 대부분 단체나 행사에 치중되는 바람에 수입이 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후계자 양성은 언감생심이다.

배운다고 찾아오는 젊은이들도 없지만 막상 배우겠다고 찾아와도 돈이 안 되는 기술을 가르쳐야 되는 것인지 고민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저는 붓 만드는 붓쟁이입니다. 다른 일은 할 줄도 모르고 하고 싶은 생각도 없습니다. 이 일을 하고 있으면 행복합니다. 그러나 처자식을 거느린 가장으로서 현실적인 벽에 부딪치니까 과연 내가 내년에도 이 일을 하고 있을 수 있을까 걱정이 되는 게 사실입니다"라고 말하는 그의 얼굴을 보기가 안쓰럽다.

그래도 그는 우리 붓을 자라나는 세대에 알리기 위해 해마다 어린이들을 공방으로 초청해 붓을 만들고 글을 쓰는 체험 교실을 열고 있다.

/박종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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