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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의 예인과 장인들 - 송로주(松露酒) 임경순

구병리 맑은 물, 푸른 솔로 빚은 독주

  • 웹출고시간2009.05.28 18:58:49
  • 최종수정2014.07.20 13:28:16

충북 보은군 구병리 아름마을 입구에 송로주 시음장 안내석이 소나무를 배경으로 자리잡고 있다.

소설가 현진건은 1921년 '개벽'지에 '술 권하는 사회'를 발표했다.

여기서 주인공은 서울에서 중학교를 마치고 일본 유학을 다녀온 지식인이지만 막상 일제의 식민지 수탈 정책 아래 놓여있는 조국에서는 뜻을 펼치지 못하고 "조선 사회가 술을 권한다"며 술에 의존해 울분을 달랜다.

그러나 아내는 이런 남편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 몹쓸 사회가 왜 술을 권하는고!"라고 절망스럽게 중얼거리는 데서 소설은 끝난다.

그렇다. 사람들은 기분이 좋을 때도 술을 마시고, 괴로울 때도 술을 마신다.

우리나라에서는 해모수가 하백의 딸과 술잔치를 벌인 뒤 고구려 시조 주몽을 낳았고, 중국에서는 BC2000년쯤에 황제의 딸이 하나라 우왕에게 술을 빚어 바쳤다는 기록이 있고, 서양에서는 그리스 신화에 술의 신인 디오니소스가 등장할 정도로 인류에게 술의 역사는 무척이나 오래됐다.

그렇다보니 두주불사(斗酒不辭)하는 주선(酒仙)들에 관한 일화도 많지만 우리는 술과 시(詩) 로 자기 이상에 취해 살면서 명정40년(酩酊四十年)이란 유명한 수필집을 쓴 수주(樹州) 변영로(卞榮魯)를 주선들의 앞자리에 놓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또 신출귀몰하는 행동형 주걸인 시인 조지훈, 술이라면 청탁불문했던 소설가 김동리, 작시걸주(作詩乞酒)의 방랑시인 김삿갓, 생육신이자 최초 한문소설 '금오신화'의 저자 김시습, 여성이지만 뛰어난 시서음율(詩書音律)과 술로 당대의 문인과 석유(碩儒) 들을 매혹시킨 황진이, 그 황진이의 묘 앞을 지나며 호방한 시를 남긴 문장가 임제, 백정 출신으로 도적의 우두머리가 되어 탐관오리들의 간담을 서늘케 했던 임꺽정, 시정의 술집까지 출입하며 기녀들에게 불법을 전파한 원효대사, 주지육림에 묻혀 산 연산군 등도 주선 대열에 빠지지 않는다.

◇ 소나무로 빚은 송로주(松露酒)>

송로주는 동의보감에서 "관절과 신경통에 좋다"고 할 정도로 맛과 효능이 뛰어나다.

이처럼 인생과 뗄 수 없는 술을 좋아하는 애주가들 사이에 조용히 입소문이 나고 있는 명주(名酒) 송로주(松露酒)가 속리산 자락 깊숙한 마을에서 익어가고 있다.

속리산 천황봉 남쪽인 충북 보은군 내속리면의 구병리는 지명 그대로 9개 봉우리가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산골마을이다.

이곳은 정감록에 삼재팔란을 피할 수 있는 십승지의 하나로 기록돼 있을 정도로 안전한 지역이어서 그런지 한국전쟁 당시 마을 주민 모두 무탈했으며, 일제강점기에도 징집당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고 한다.

이곳에서 전통주 '송로주(松露酒)'를 빚고 있는 충청북도 무형문화재 3호 임경순씨(52)의 부모도 북한이 공산화되자 황해도 고향을 떠나 정감록에 따라 이곳으로 피난 왔을 정도이다.

송로주는 이름 그대로 소나무(松)를 재료로 하여 만든 술이다.

그래서 한 모금 마시면 솔옹이(소나무에 박힌 가지의 그루터기)와 솔잎 특유의 향기와 알싸한 맛이 입속에 은은하게 퍼진다.

또 알코올 도수가 48%로 40%인 전통 증류주 안동소주나 문배주보다 더 높은 독주라서 뜨거운 기운이 목구멍을 타고 가슴까지 내려가는 느낌도 짜릿하다.

그러나 곡식과 십장생의 하나인 소나무를 원료로 하기 때문에 취기가 오르더라도 도란도란 대화를 하다보면 어느 새 취기는 말끔히 가시고 머리도 전혀 아프지 않다.

그래서 옛말에 "송로주를 마시면 장수한다"고 했고, 동의보감에서는 "관절과 신경통에 좋다"고 했다.

임씨는 이 송로주 담그는 방법을 스승 신형철 할머니(1998년 작고·충북도 무형문화재)에게서 배웠다.

송로주는 멥쌀로 찐 고두밥에 누룩, 엿기름은 물론 솔옹이, 솔잎, 소나무 뿌리에서 자라는 복령(茯令)이라는 한약재 등을 섞어 만들어 솔향이 은은하다.

송로주는 멥쌀, 누룩, 엿기름 등 막걸리를 만드는 재료에 솔옹이, 솔잎, 소나무 뿌리에서 자라는 복령(茯令)이라는 한약재를 섞어 만든다.

먼저 4~5시간 불린 쌀로 고두밥을 쪄서 식힌 뒤 누룩과 섞어 섭씨 30도 온도로 사흘 동안 발효시켜 알콜 농도 15~16%의 밑술을 만든다.

그런 다음 이 밑술에 구병산에서 채취하여 얇게 썬 솔옹이, 깨끗하게 씻어 손질한 솔잎, 알밤만하게 깎은 복령을 엿기름과 함께 섞는다.

이때 쌀 한 가마에 들어가는 솔옹이 양은 2㎏ 정도 된다.

이렇게 소나무 재료를 추가한 술을 다시 섭씨 25~28도의 상온에서 2주 정도 발효시킨 뒤 베주머니에 넣어 짜내면 송절(松節=솔옹이)주가 된다.

기능보유자 임경순씨가 밑술에 소나무 재료를 넣어 만든 송절주를 소줏고리를 이용한 전통방식으로 증류해 송로주를 만들고 있다.

이 송절주를 소줏고리 옹기에 붓고 은근한 장작불로 증류시키면 수증기가 소줏고리 윗부분에 담긴 냉수에 부딪쳐 다시 액체로 되어 방울방울 떨어지는데 이것이 송로주다.

이렇게 소줏고리를 이용해 높은 압력(상압)에서 증류시키는 것이 전통적인 방식이지만, 임씨는 이 증류 방식을 낮은 온도와 압력에서 증류시키는 감압증류방식으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켰다.

높은 온도로 가열하는 상압증류로는 완전히 잡기 어려운 누룩냄새, 술찌꺼기 탄 냄새 등 일체의 잡냄새를 없애고 소나무 향기만 은근하게 내기 위해서다.

물론 감압증류기로 금방 내린 송로주도 특유의 맛과 향이 있어 좋지만 임씨는 이를 다시 6개월 정도 숙성시켜 은근하면서도 깊은 맛이 제대로 우러날 때 주문자들에게 판매한다.

송로주는 이처럼 공기 좋고 물 맑은 산골에서 한 기능보유자가 수작업으로 제조하다보니 1년에 1000~1500ℓ 밖에 생산되지 않아 가격도 400㎖가 2만3000원, 700㎖가 3만5000원 정도로 다소 비싼 편이지만 한 번 맛본 사람들이 전화주문하거나 방문해서 사가는 경우가 많다.

임씨의 시음장에 들렀던 인기 탤런트 김수미, 김혜정씨와 가수 최헌씨 , 영화 '죽어도 좋아' 회원 등이 송로주에 반했고, 어느 시인과 사진작가는 송로주를 찬미하는 창작시와 그림을 그려서 다시 찾아 오기도 했다.

또 지역의 지자체와 기업들이 손님들에게 송로주를 선물한 뒤 "매우 귀하고 좋은 선물에 감사한다"는 칭찬을 많이 듣고 있다.

/박종천 기자

대량생산이 되지 않는 송로주는 명절 때 선물용으로도 인기가 있다.

주소 : 충북 보은군 내속리면 구병리 518
문의전화 : (043) 542-0774, 011-9842-0774

16년 전통주 복원 외고집 - 임경순

16년째 송로주 명맥을 잇고 있는 충북도 무형문화재 임경순씨

임경순씨는 서른 여섯 살이던 지난 1993년에 스승인 신형철씨를 만나 송로주를 알게 됐다.

충청북도 무형문화재이기도 했던 신씨는 송로주를 친정 어머니에게서 배웠고, 친정 어머니역시 자신의 친정 어머니(신씨의 외조모)에게서 배웠다.

신씨의 외조모 정금이씨는 집안에 전해오는 옛 문헌을 참고하여 고조리서(古調理書)라는 책을 썼는데, 여기에 "쌀 한 말 하려면 솔옹이를 생률(生栗, 날밤)처럼 쳐 고이 다듬어놓고, 섬누룩 넉 되 넣고 물 서 말 부어 빚었다가 멀겋거든 소주를 여러 물 갈지 말고 장작 때어 고으면 맛이 좋고 백소주를 받아먹어야지 절통도 즉시 낫느니라"라며 송로주에 대한 비법이 적혀 있었던 것이다.

이런 신씨가 송로주 대량생산 공장 부지를 마련하기 위해 산과 물이 좋고 속리산 정이품송 등으로 소나무 이미지가 좋은 보은군에 들렀다가 임씨를 만난 것이다.

이때부터 인연이 돼 몇 년 동안 임씨는 신씨 밑에서 함께 송로주를 빚으며 비법을 전수받았다.

그러나 중 공장 설립 문제가 난관에 부딪쳐 신씨가 떠나자 임씨는 농사짓던 수천 평의 땅까지 처분하며 홀로 송로주를 연구하고 빚기를 계속했다.

이를 맛본 주위 사람들이 극찬을 하며 정식으로 제조·판매할 것을 강권했으나 주류제조면허를 얻는 게 너무 어려웠다.

그러던 중 1998년 신씨가 사망하자 정통 계승자였던 임씨가 곧바로 전통주 송로주 기능전수자로 지정됐고, 문화체육부의 추천을 통해 주류제조면허를 지난 2000년에야 받을 수 있었다.

임씨는 또 충청북도로부터 2006년에는 스승의 뒤를 이어 무형문화재로 정식 지정을 받았다.

임씨는 오는 가을에는 자신의 공장 주변에 흙집 체험관을 지어 인근 전문계고등학교 학생들과 찾아오는 내방객들이 직접 송로주 담그기 체험을 해 볼 수 있도록 할 계획을 갖고 있다.

또 송로주의 대중화를 위해 알코올 도수를 40%로 낮춰 덜 독한 술도 만들 예정이고, 더불어 보은 지역의 대표 특산물인 황토대추를 이용한 대추민속주 개발에 열정을 쏟고 있다.

전통주의 한계 때문에 아는 사람들이나 찾고 명절 때나 주문전화가 오는 열악한 상황이지만 임씨는 "우리의 전통주는 저급한 술이 아니다. 적게 팔더라도 제대로 된 맛과 향을 지켜나갈 것"이라며 과욕을 삼가고 자긍심을 굳히고 있다.

임씨는 자신의 고향인 구병리 아름마을에서 송로주 제조와 함께 손두부, 토종닭, 흑염소, 메밀묵, 도토리묵 등을 파는 '구병산골가든'을 운영하며 찾는 이들에게 송로주를 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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