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기사

이 기사는 4번 공유됐고 1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충북의 예인과 장인들 - 배첩장 홍종진

수백년 잠든 예술품 깨우는 '생명의 손'

  • 웹출고시간2009.07.09 18:21:24
  • 최종수정2014.07.20 13:28:29
충북 청주시 봉명동의 농수산물도매시장을 지나 봉명IPARK 아파트 뒤편으로 가면 '국립청주배첩전수교유관'이 있다.

국가와 충북도, 청주시가 6억여원을 들여 2004년에 세운 전통기능 전수관이다.

배첩(褙貼)이란 일반인들에게 아직 생소한 단어이지만 '표구'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쉽게 알아들을 수 있을 것이다.

즉 배첩이란 글씨나 그림에 종이 비단 등을 붙여 액자 병풍 족자 장정 고서화 등으로 처리하는 전통 공예기술이다.

단순한 글씨나 그림을 예쁘게 재단하고 뒤에 한지나 비단 등을 붙이고 적합한 액자나 병풍 등의 형태로 만듦으로써 작품의 예술성, 실용성, 보존성을 한층 더 높이는 것이 배첩이다.

또한 일본식 용어인 표구(表具)는 보통 한지 등에 적은 글씨나 그림 등을 오려서 액자에 넣는 것 정도로 알고 있지만 배첩은 그런 작업은 물론 훼손된 옛 고서화를 복원하고 영구보존될 수 있는 상태로 만드는 고도의 전문적 기술까지 포함하고 있다.

배첩 기술은 중국 한(漢)나라 때 장황(裝潢) 또는 장배(裝背)라는 이름으로 개발되어 당(唐)나라 때 크게 발전했는데 국내에는 고구려 벽화의 병풍그림에서 보듯이 이미 삼국시대에 전해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조선시대 초기에는 나라에서 지정한 배첩장이 도화서(圖畵署)에 소속되어 궁중의 서화처리를 전담하였을 정도로 중요하게 인식되었다.

국내 배첩 분야 2명의 무형문화재 중 한 명이자 유일의 전수교육관을 운영하며 후진 양성에 힘쓰고 있는 배첩장 홍종진.

이런 배첩 비법을 계승 발전시키고 있는 국내 유일의 전수관인 청주배첩전수관의 주인공이 바로 1999년 11월 충청북도무형문화재 제7호로 지정된 배첩장(匠) 홍종진(洪鍾鎭·59·사진)씨이다.

홍씨는 전국에서 배첩 분야에서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2명 가운데 한 명인데, 나머지 한 명 역시 홍씨의 배첩 스승이자 1996년 국가 중요무형문화재 제102호로 지정된의 김표영옹(84·서울)이다.

홍씨는 2007년 말 탄생한 대한민국 제4대 국새 제작에 참여한 공로로 행정안전부 장관 표창을 받았다.

국가의 권위이자 상징인 국새를 새로 만들기 위해 당시 국새 주조 외에도 매듭, 자수, 침선, 칠, 소목, 배첩, 두석, 칠피, 종이배접 등 각 분야 별로 전국 최고의 장인들이 참여했다.

여기서 홍씨는 국새를 담는 인궤의 내장 분야를 맡아 나무, 가죽, 주석으로 만든 세 가지 인궤의 안쪽에 한지와 황금천을 부착했는데 쇠(주석)에는 종이가 직접 붙지 않아 옷칠을 먼저 한 뒤 그 위에 종이를 붙이는 비법을 구사해 임무를 완벽하게 수행해 낸 것이다.

홍씨는 또 지난 2007년 처음 탄생한 '2007 유네스코 직지상'의 상장 제작에도 참여, 비단 배첩을 한 뒤 밑에 무게 중심을 잡는 나무봉을 넣고, 위에는 비단 수술과 아래에는 옥장식 매듭을 달아 선조들이 만들었던 교지형으로 맵시있게 상장을 마무리하기도 했다.

홍씨의 배첩 명성은 최근 독일 구텐베르크박물관에 초청돼 외국인들 앞에서 전통 책 꿰메기(장정) 시연을 할 정도로 국제적으로도 높아지고 있다.

◇ 국보급 괘불탱화 보수 의뢰 쇄도

배첩전수관에 들어서면 전국의 박물관, 문중, 사찰 등지에서 보수·복원을 의뢰한 고서화들이 즐비하다.

오래돼서 너덜너덜해진 국보급 대형 괘불탱화도 배첩장 홍씨의 수술을 받으면 원 상태 복원은 물론 몇 백년 보존 가능한 상태로 다시 태어난다.

오래돼서 일부가 썩어 너덜너덜해진 그림과 빛이 바래서 누렇게 변색된 글씨들이 주치의 홍씨에게 새 생명을 맡기고 있는 것이다.

홍씨는 이런 고서화들을 보수하는 것에 대해 "사람의 암이나 다른 질병을 조기에 발견해서 치료하면 생명이 연장되듯이 고서화 역시 훼손 정도가 심하지 않을 때 적적하게 보수해야 본래 상태로 200년~400년까지 오래 보존할 수 있다"며 자부심을 갖고 있다.

홍씨의 손길을 거쳐간 문화재만 국보급이 경기 안성시 칠장사의 오불회괘불탱(五佛會掛佛幀·국보 296호) 등 6점, 보물급이 경북 영천시 수도사의 노사나불괘불탱(盧舍那佛掛佛幀·보물 1271호)과 청주 보살사의 영산회괘불탱(靈山會掛佛幀·보물 1258호) 등 15점에 이른다.

이런 괘불은 크기가 높이 8m, 폭 7m 정도씩 될 정도로 커서 그림 뒤에 한지를 6겹으로 붙이고 삼베를 붙인 뒤 다시 한지를 4겹 정도 붙이는 정성을 들여야 무게를 지탱하며 훼손을 방지할 수 있다.

만약 떨어져 나가거나 훼손된 그림이나 글씨 등의 일부분에 대해 의뢰자가 새로 그려서 보완해 달라는 요청이 있을 경우에는 전문가에게 의뢰해 보완해 주지만 그런 요청이 없을 때는 원본은 절대 손을 대지 않는 게 홍씨의 작업 원칙이다.

훼손된 부분을 보완할 때도 원본 제작 당시의 연대와 비슷한 종이를 구해 이어붙임으로써 육안으로도 표시나지 않고 시간이 지나도 서로 보관상태가 차이나지 않도록 세심한 배려를 함은 물론이다.

홍씨는 또 충북대와 청주대, 청주교대 박물관, 국립청주박물관, 청주 고인쇄박물관 등에서 소장하고 있는 유물 700여점에도 새 생명을 불어 넣었고, 최근에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됐으나 훼손이 심각한 조선왕조실록 밀랍본(국보 151호·성종실록)을 원 상태로 복원하기도 했다.

중요한 문화재나 고서화를 다루는 홍씨의 배첩 과정은 세심함, 기다림, 정성이 듬뿍 담길 수 밖에 없다.

제작연도가 오래된 병풍 그림은 40℃ 온도의 물에 15시간 정도 불리고 대나무칼로 세심하게 떼어내야 작품에 손상이 가지 않는다.

◇ 10년 숙성된 밀가루풀 비법

오래된 병풍 그림의 보수를 요청해 왔을 경우 먼저 그림 작품이 손상되지 않도록 대나무 칼 등을 이용해 세심하게 그림을 뜯어내는 해체작업을 한다.

그 다음에는 작품을 40℃ 온도의 물에 15시간 정도 불린다.

오래된 때와 말라붙어있는 풀을 제거하기 위한 것이다.

이때는 물에 불은 작품을 건드리지 않아야 글씨나 그림이 번지지 않고, 풀이 녹아내리지 않을 경우에는 물에 소화제를 섞어 풀을 분해시켜야 한다.

이렇게 불린 작품은 조심스레 건져낸 뒤 한지나 신문지로 덮고 솔로 문질러 물기를 빼낸다.

그런 다음에는 그림 뒷면의 풀이나 배접지 등을 모두 떼어내야 하는데 이때 쇠칼을 대면 작품이 손상되기 때문에 대나무칼만 사용한다.

이어 작품이 그늘에서 마르면 그림 뒷면에 국산 닥나무로 만든 한지를 보통은 4~5회 겹쳐 바르는데 대형 괘불 등은 10회 정도 겹쳐바르고 속에 삼베까지 넣어야 한다.

이때 한지를 바르는 풀이 매우 중요하다.

밀가루 풀을 그냥 바를 경우 밀가루에 있는 영양소를 먹는 곰팡이 등이 생겨나고 누렇게 변색돼 작품이 훼손되기 때문이다.

보존상태가 좋지 않은 고서화의 경우 원본을 분리한 뒤 10년동안 숙성시킨 밀가루풀을 이용해 뒷면에 한지를 여러 겹 반복해서 붙여야 오랫동안 보존할 수 있다.

그래서 홍씨는 스승 이전부터 사용돼 오던 전통 방식의 풀을 직접 만들어 쓴다.

전통 배접 풀은 밀가루에 물을 붓고 항아리에 담아 두어 곰팡이 등이 서식하여 썩게 한다.

이렇게 곰팡이 등이 영양소를 먹으며 썩힌 밀가루풀의 윗 부분 물을 버리고 다시 물을 부어놓는 식으로 1년에 두 세 차례 물을 갈아주며 10년씩 밀가루풀을 숙성시킨다.

그러면 항아리 아래에는 영양소가 전혀 없는 순수 녹말가루만이 가라앉는 데 이것을 고운 체에 걸러 말려놓고 두고두고 사용하는 것이다.

전수관 앞 마당에 전통 된장 제조 장소도 아닌데 항아리가 수십 개나 놓여 있는 의문이 풀리는 대목이다.

이렇게 배접이 끝나면 5~10정도 그늘에서 말린 뒤 병풍에 부착하는 것으로 병풍 보수 작업은 끝이 난다.

각급 박물관, 문중, 사찰 등지에서 보내 온, 훼손된 옛 서예, 그림, 병풍, 책, 괘불 등이 배접 외길 43년의 홍종진씨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홍씨는 16살 때 청주의 표구사에서 자신의 스승 김표영옹의 스승이기도 한 윤병세(20여년 전 작고·) 선생으로부터 처음 배첩기술을 배운 뒤 스승의 허락을 받아 서울 관훈동 일대 '표구골목'을 전전하는가 하면 틈나는 대로 관련 서적을 읽으며 배첩기술을 발전시켜 오늘에 이르렀다.

지금은 전수관에서 매주 화, 금요일에 1년과정으로 일반인들에게 배첩기술을 가르치고 있는데 밀양, 전주 등 먼 곳에 사는 사람은 물론 일본, 미국, 베트남 등지의 외국인들도 있다.

또 자신의 배첩 비법을 본격적으로 전수하고 있는 3명의 제자가 있는데, 그 중 한 명은 그의 맏아들 순천(32)씨로 5년째 배첩에 몰두하고 있는 것은 물론 문화재청의 문화학교와 청주대 석사과정을 밟으며 부친을 넘어서는 배첩 전문가가 되기 위해 노력중이다.

"청주시에서 전수관 운영비용도 지원해 주고, 충북대학교에서는 3년 전부터 미대에 배첩학과를 직접 신설하여 전문가를 양성하고 있을 정도로 배첩에 대한 인식이 좋아져 기쁘다"는 홍씨는 "국가와 선조들의 중요 문화유산을 보존하는 일이기에 더욱 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줬으면 하는 게 바램"이라며 소박하게 웃었다.

/박종천 프리랜서
이 기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관련어 선택

관련기사

배너
배너
배너

랭킹 뉴스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배너

매거진 in 충북

thumbnail 308*171

정효진 충북도체육회 사무처장, "멀리보고 높게 생각해야"

[충북일보] 정효진 충북도체육회 사무처장은 "충북체육회는 더 멀리보고 높게 생각해야한다"고 조언했다. 다음달 퇴임을 앞둔 정 사무처장은 26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지방체육회의 현실을 직시해보면 자율성을 바탕으로 민선체제가 출범했지만 인적자원도 부족하고 재정·재산 등 물적자원은 더욱 빈약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완전한 체육자치 구현을 통해 재정자립기반을 확충하고 공공체육시설의 운영권을 확보하는 등의 노력이 수반되어야한다는 것이 정 사무처장의 복안이다.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학교운동부의 위기에 대한 대비도 강조했다. 정 사무처장은 "학교운동부의 감소는 선수양성의 문제만 아니라 은퇴선수의 취업문제와도 관련되어 스포츠 생태계가 흔들릴 수 있음으로 대학운동부, 일반 실업팀도 확대 방안을 찾아 스포츠생태계 선순환 구조를 정착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선 행사성 등 현장업무는 회원종목단체에서 치르고 체육회는 도민들을 위해 필요한 시책이나 건강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등의 정책 지향적인 조직이 되어야한다는 것이다. 임기 동안의 성과로는 △조직정비 △재정자립 기반 마련 △전국체전 성적 향상 등을 꼽았다. 홍보팀을 새로 설치해 홍보부문을 강화했고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