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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도내 가볼만한 농산촌마을 - 청원군 고드미마을

신채호 선생의 '대쪽 정기'가 숨쉬는 곳

  • 웹출고시간2009.07.24 15:06:45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나무꾼 유명한 청정 산골마을

청주에서 미원·보은쪽으로 길을 잡아 20㎞쯤 가다 오른쪽으로 파3짜리 9홀 규모의 미니 골프장을 보면서 바로 좌회전하여 2.5㎞를 가면 산 아래 마지막 동네 '고드미 마을'이 나온다.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용마산 산줄기를 따라 동쪽, 남쪽, 서쪽의 세 골짜기에 형성된 마을로 40여가구 80여명의 인심좋은 사람들이 사는 터전이다.

'고드미'란 마을 이름은 '대쪽 같이 곧다'는 뜻에서 곧으미·고드미·고두미·고디미로 불리다가 고드미로 통일된 것이다.

여기에는 유래가 있다.

조선시대 폭정을 했던 광해군에게 선비 신요가 곧은 말로 상소하여 귀향살이를 하다가 풀리어 돌아와 이곳에 은거했는데 후에 인조가 여러 번 불러도 나아가지 아니한 데서 비롯된 이름이다.

이런 곧은 선비정신이 숨쉬는 마을이라서 그런지 신요로부터 250여년 뒤에 이 마을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절개를 보여준 단재 신채호선생이 성장하게 된다.

고디미 등으로 불려오던 이 마을은 1910년 전에는 귀래동 도암리. 삼곡리. 동림리, 문박동으로 분리 되어 있었으나 1914 년 행정구역이 개편되면서 문박동의 일부를 문박리로 넘겨주고 '귀래리'라는 행정구역상 이름을 얻어 오늘까지 이른다.

'고드미가 속한 낭성면과 동쪽으로 인접해 있는 미원면은 노령산맥과 이어지는 산악지대이며 이 마을은 남한강의 지천인 감천이 시작되는 상류지역으로 청정성은 천혜적으로 보장돼 있다.

신채호 선생을 배출한 고령 신씨 집성촌이기도 했던 이 마을은 들어가는 입구 쪽만 빼놓고는 사방이 삼태기처럼 산으로 둘러싸여 평지와 논·밭이 많지 않은 전형적인 산촌마을일 수 밖에 없다.

그렇다보니 많은 주민들이 뒷산에서 나무를 해다 청주까지 팔아 생계를 연명해야 했고 그래서 '고드미장꾼'은 나무꾼으로 인근에 명성을 떨치기도 했다고 한다.

고드미 마을은 나무를 해다 파는 '고드미장꾼'이 유명했던 산골마을로 농약을 배제한 친환경 농업을 자랑한다.

그러나 이 마을은 산속에 묻혀 세상의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1984년 '접시꽃당신'으로 유명한 도종환 시인이 '고두미마을에서'라는 시집을 내면서 비로소 세상에 이름이 알려지게 됐다.

그러다 1996년 젊은이 몇몇이 마을 한켠에 한옥집 다섯 채를 짓고 귀농한 뒤 농약을 배제한 유기농 농업을 전파하기 시작했고, 지금은 마을 30여가구가 '고드미친환경 농업 공동체'를 결성하기에 이르렀다.

이들이 오리농법, 쌀겨농법 등 친환경농사를 지을 수 있었던 것은 이 마을이 산 속에 홀로 있어 인근 다른 마을 농토의 농약 등이 날아올 수 없는 안전한 동네이고, 농업용수 역시 오염원이 전혀 없이 산에서 직접 내려오는 청정수이기 때문이다.

그 뒤 이곳은 깨끗한 자연환경과 단재사당 등 마을 자산을 바탕으로 2003년 정부로부터 '녹색농촌체험마을'과 '정보화마을'로 선정되면서 도시민들이 찾아오는 마을로 탈바꿈하기 시작했다.

친환경농업 황토체험관 인기

마을 주민들과 함께 봄에 고구마 싹을 심는 농사체험을 하는 고사리 손길들이 분주하다.

민박과 교육을 할 수 있는 전통문화체험관을 황토귀틀집으로 만들었고, 야생화꽃밭과 생태연못을 조성했으며, 계절별 산촌마을 체험프로그램을 다양하게 개발했다.

이 마을에 있는 네 채의 전통문화체험관은 황토, 나무, 돌만으로 마을 주민들이 직접 지었다.

전통방식의 구들을 놓고, 한지로 방안을 바르고, 나무로 선반을 짜 넣었다. 귀틀집들 사이 공간에는 봄부터 겨울까지 야생화들이 피는 꽃밭을 넣었고, 토굴저장고와 샤워장 및 쉼터가 붙어있는 한증막까지 갖췄다.

또한 이 마을에서는 체험객들이 오면 마을 부녀회원들이 모여 '옛날 시골집 밥'도 해주고, 음식만들기 체험도 도와 준다.

요즘 이 마을을 가면 예쁜 야생화들이 피어 있는 돌담 옆 밭에서는 파란 고추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고, 수수가 한창 자라며 가을날 빨간 수수송이를 예약하고 있다.

방학을 맞아 체험을 온 가족들은 경운기를 타고 인근 개울로 물놀이를 하거 가기에 신나는 모습이고, 체험관 옆 큰 나무에 매달아 놓은 '춘향이 그네'에는 처음 타보는 여자 아이들의 즐거운 비명소리가 조용한 시골 마을에 생기를 더하고 있다.

이 마을 역시 산, 논, 밭, 연못 등 주변환경을 이용한 다양한 체험거리를 준비해 놓고 있다.

연중 계속되는 것으로는 신채호 사상배우기, 신문역사배우기, 환경교육,우리살림집 만들기, 친환경 농업 농군학교 ,농촌생활체험, 가마니 짜기, 새끼고기, 디질방아·절구통에서 오리쌀 찧어 가마솥으로 밥해먹기, 짚공예품만들기, 전통한옥 만들기, 다도배우기, 전통놀이(그네뛰기,윷놀이,,널뛰기,자치기,비석치기,제기차기), 천연염색 , 등산하기, 야생화관찰, 산림 생태계알기 등이 있다.

경운기를 타고 마을 앞 개울로 가서 물장구를 치며 신나게 물놀이하는 것은 아이들에게나 어른들에게나 여전히 신난다.

요즘같은 여름철에는 반딧불이 체험 및 별 관찰하기, 오리 논에 풀어주기, 고추·옥수수·수박 따기, 감자캐기, 돼지·닭·오리 밥주기, 삼림욕, 개암따기 등을 할 수 있다.

가을철에는 벼베기, 고구마캐기, 허수아비만들기, 메뚜기잡기, 머루따기, 낟가리 쌓기, 다래·으름·잣 까기, 밤·도토리 줍기, 단풍놀이 등이 아이들을 신나게 한다.

눈 내리는 겨울철이 되면 화로에 고구마·감자 구워먹기, 온돌방 장작불 넣기, 쥐불놀이, 연날리기, 눈썰매타기, 논바닥 썰매타기 등의 재미에 빠지면 추위는 어느새 잊는다.

봄철에는 창포머리감기, 모내기 및 씨앗뿌리기, 달래·냉이 캐기, 개구리 소리 듣기 및 생태 관찰, 앵두따기, 산나물 뜯기 등을 할 수 있다.

이 밖에 이 마을에서 직접 체험도 하고 맛도 볼 수 있는 전통음식체험으로 흑돼지 표고버섯 불고기, 재래두부만들기, 떡만들기, 산야초효소만들기, 솥뚜껑 감자전 부치기, 질경이 무침 등은 연중 아무 때고 할 수 있으며, 특별히 계절별로는 봄에 전통장 담그기, 진달래 화전 부치기를, 여름에 옥수수전, 감자전 만들기를, 가을에 재래 메주 만들기, 머루주 등 과일주 담그기, 머루쨈 만들기, 곶감 만들기를, 겨울에는 화로 솥뚜껑 감자 부침개 만들기를 하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단재 사당 · 조선 충신 유적 수두룩

이 마을은 곧은 절개를 지닌 사학자이자 언론인, 독립운동가였던 단재 신채호 선생의 고향으로 사당과 묘소가 있어 역사의 산교육장이 되고 있다.

이 마을은 단재 신채호 선생의 고향인 만큼 단재 관련 유적과 역사 이야기를 빼 놓을 수 없다.

단재(丹齋) 신채호(申采浩:1880~1936) 선생은 지금의 대전광역시 중구 어남동에서 태어나 8살 때 할아버지의 고향인 이 마을로 이사왔다.

그리고는 할아버지와 인근의 고명한 유학자들에게서 한학을 배워 당시 최고의 교육기관인 성균관에 들어가 학문에 정진한 뒤 애국계몽운동, 황성신문 기자, 항일비밀결사단체 광복회 조직, 불후의 명저 조선사 집필, 신간회 활동 등을 하다 일제에 체포돼 중국 여순 감옥에서 순국한 절세의 독립운동가이며 언론인이자 사학자였다.

단재가 순국하자 선생의 후손들과 동료 독립운동가들이 선생의 고향인 이곳 귀래리에 일제 당국 몰래 묘소를 만들었다.

그 후 1978년에 선생의 옛 집터에 사당을 만들었고, 1981년 그의 영정을 봉안하면서 단재영당(丹齋影堂) 혹은 단재영각(丹齋影閣)으로 이름붙여졌다.

또 1998년에는 이 사당 옆에 단재기념관을 마련해 단재의 유품을 전시하고, 단재의 생애를 담은 영상물도 상영하고 있다.

이 마을이 충절의 고장답게 가까운 곳에 조선시대의 역사유적이 많다.

영조대왕태실은 인근 청원군 낭성면 무성리 산6-1에 있는 데 이는 영조(英祖) 대왕의 태를 묻은 태실(胎室)로서 영조 5년(1729)에 왕의 태실 규모와 구조에 맞도록 다시 봉축(封築)한 것이다.

또 청원군 낭성면 호정리 27-1는 신후(申逅:1708∼1779)가 지은 '과필헌고가'가 있는 데 충청북도민속자료 제8호로 지정된 조서 후기 양반가옥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인접한 청원군 낭성면 관정리 428번지에는 묵적 영당이 있는 데 이곳은 조선 후기의 문신이며 학자인 신숙주의 영정을 봉안한 사당으로 음력 3월 15일과 9월15일에 향사하고 있다.

이와 같은 동네인 청원군 낭성면 관정리 430-1에 신중엄신도비가 있다.

신도비란 임금이나 고관의 평생업적을 기록하여 그의 무덤 남동쪽에 세워두는 것으로, 조선 선조 때의 효성이 지극하고 임진왜란 때 자신의 곳간을 열어 군량미를 조달한 문신 신중엄을 기리기 위한 것이다.

/박종천 프리랜서

마을 어른들과 짚으로 전통생활용품도 만들고 나무조각 공예도 하는 산골마을 생활체험은 소중한 추억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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