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기사

이 기사는 0번 공유됐고 1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주영서

괴산군청 예산계장

충청북도 괴산군 청안면 읍내리에는 국내에 몇 안 되는 유교유적인 사마소가 있다. 충청북도기념물 제49호인 청안사마소(淸安司馬所, 충북기념물 제49호)이다.

16세기부터 세워진 사마소 가운데 지금까지 명칭을 그대로 사용하는 곳은 청안사마소·옥천사마소(충북유형문화재 제157호)·경주사마소(경북문화재자료 제2호, 풍영정) 등 세 곳뿐이고, 사마소로 건립되었다가 후일 다른 이름이 붙여진 곳으로 성주 연계당(蓮桂堂, 경북문화재자료 제115호)·영천 삼일재(三一齋)·강릉 계련당(桂蓮堂, 강원유형문화재 제39호)·진주 연계재(蓮桂齋) 등 현존하는 건축물은 손으로 꼽을 정도에 불과하며, 문헌에도 일선(구미)사마소(출처:일선읍지'一善邑誌')·공주사마소(출처:공산지'公山誌')·충주사마소(출처:충주목지도)·광양사마소(박세후'朴世煦'가 중종 때 건립)·목천사마소(안정복'安鼎福'이 정조 때 중건)·인동사마소(최문징'崔文徵'이 숙종24년에 건립) 등 몇 안 되는 기록만이 남아 있다.

사마소는 16세기 경, 그 당시 훈구파(勳舊派)에 의하여 은퇴관료의 백성수탈기구로 전락한 자치기구인 유향소(留鄕所)에 대항하여, 사마시(司馬試) 출신 젊은 생원(生員)·진사(進士)들이 설립하기 시작하였다. 초기에는 친목도모 및 학문도야와 교육활동을 전개하여 고을의 교화에 기여하였으나, 점차 압력단체로 변질되어 수령의 지방통치에 간섭하고 유향소를 유명무실화하기에 이르렀고, 이러한 폐단이 심각해지면서 급기야는 1603년(선조36) 류성룡(柳成龍)에 의하여 사마소 폐지가 건의되기에 이른다.

홍중삼(洪重三)이 1708년(숙종34) 저술한 향약통변(鄕約通變)에 향교(鄕校)·서원(書院)과 함께 사마소에 향약을 응용한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초기에는 대다수의 군현에 설치되었다가, 사마소에 의한 폐단발생으로 철폐가 시도된 이후, 한 고을에서 50인 이상의 생원·진사를 배출했을 때 제한적으로 사마소 건립을 허용했던 것으로 보여 진다.

청안사마소는 조선 숙종29년(1703년)에 청안현에서 급제한 생원·진사의 수가 50명을 넘어섬에 따라 세워졌으며, 경술국치(庚戌國恥·1910년)로 철폐되었다가, 1950년 지역유림과 후손들에 의하여 재건되었다. 제명록(題名錄)에는 현감 23인과 생원·진사 91인 등 114위가 올라 있으며, 매년 봄·가을에 제향하고 있다.

지금까지 괴산의 유교유적을 둘러보면서, 국가의 통치철학으로, 개인의 행동철학으로, 중세이후 우리나라는 물론 동양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준 유학이 융성했을 때 그 위상이 어떠했는지를 가늠할 수 있었고, 가득차면 넘치고 넘쳐나는 것에 익숙하다보면 쇠락할 수밖에 없다는 교훈을 얻었다. 특히 서원(書院)과 사마소는 유교를 숭상한 조선시대, 사림(士林)과 향사(鄕士)의 교화에 대한 열정과 아울러 교학(敎學)을 권력화 하여 유교가 지향하는 가치를 스스로가 훼손함으로써 척결의 대상이 되었던 질곡의 역사와, 모자람만 못한 지나침의 교훈을 함께 남겨 두었다.
이 기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관련어 선택

관련기사

배너
배너
배너

랭킹 뉴스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배너

매거진 in 충북

thumbnail 308*171

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