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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영서

괴산군의회 전문위원

고향에 소박한 삶터를 마련했다. 마음씨 좋은 이웃들이 있지만 항상 함께 생활할 수는 없기 때문에 여가시간에 소일거리로 돌볼 가축 몇 마리를 키워 보기로 했다. 주인을 알아보고 살갑게 대하는 것으로야 강아지에 비견할 만한 것이 없지만, 오래 전에 강아지를 키우다가 사정이 생겨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게 되었을 때, 그 사람을 따라가면서 바라보던 마지막 눈빛이 지금도 눈에 아른거려 데려 올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닭이었다.

강아지에는 한참 못 미치지만 그래도 사람이 오가면 혹시나 하고 주위를 배회하고, 무슨 의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저희들 끼리 하는 짓을 보고 있노라면 세상일을 잠시나마 잊을 수가 있었다. 처음에는 먹을 것을 들고 가야 아는 체하고, 먹이 앞에서는 제 짝마저도 쫓아내는 모습을 보고 배만 불려 주면 되는 동물이겠거니 생각했다.

그런 생각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이듬해 봄 어느 날 암탉이 보이지 않아 혹시 고양이에게 해를 입은 것은 아닐까 조바심하면서 찾아보니, 평소에 알을 낳는 자리에 꼼짝 않고 있었다. 병아리를 기다리기 시작한 것이다. 따뜻한 봄날이라 답답할 만도 한데 하루 한두 번 몸을 지탱할 만큼 배를 채우고, 생리현상을 해결하는 시간 빼고는 둥지를 떠나지 않고 지극정성으로 알을 품었다.

평소에는 다가가면 도망가기 바쁘던 녀석이 흐트러진 둥지라도 다독여 주려고 손을 내밀면 깃털을 세우고 노려보며 달려들 기세다. 그렇게 스무하루가 지나가고, 새 생명이 알껍데기를 벗었다. 신비롭고 예뻤다, 어미닭의 헌신과 태어난 새 생명 모두.

그 후로 어미는 낮이면 새끼들을 데리고 다니며 먹고 마실 것을 찾아 불러 먹이고, 밤이 되면 날개 속에 품고 따뜻한 잠을 이룰 수 있게 한다. 짧은 다리로 종종거리며 어미 따라다니다가 더러는 다치기도 하지만 어미가 며칠 품고 자면 멀쩡해 진다. 그렇게 병아리들의 몸집에 제법 커질 때까지 한 결 같이 보살핀다.

새끼들이 자라서 품안에 담기가 어려워질 무렵이 되면 어미닭은 둥지를 떠나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잠자리를 잡는다. 새끼들이 따로 서기를 할 때가 되었다는 신호다. 그렇게 새끼들을 위해 석 달 가까운 시간을 온전히 희생한 어미는 다시 큰 닭이 사는 곳으로 돌아가 신고식을 치르고 한 무리가 된다.

사람들에게서 우둔함의 상징으로 불리어지는 동물이지만, 먹이를 발견하고도 제 입에 넣지 않은 채 새끼들을 불러 먹이고, 어미와 떨어져 울어대는 소리가 들리면 물불 안 가리고 달려가는 모습에는 지고지순한 모정이 겹쳐져 보였다. 어떠한 대가도 없을 것인데 제 새끼들을 위하여 목숨까지 기꺼이 내놓는 모정은 어디에 견주어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자연은 그 현상으로 인간이 잃어버린 본성을 일깨워 주곤 한다. 필요한 만큼으로 족하고, 필요한 역할만으로 족하기 때문에 자연은 자연으로서의 본성을 잃지 않고 유지되는 것이리라. 암탉의 새끼사랑도 그 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에, 나 자신의 인생을 다른 사람의 잣대로 가늠해 가며, 그것을 채우지 못해 허둥대고 있는 한 인간의 양심을 이토록 세차게 두드리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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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