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기사

이 기사는 0번 공유됐고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고미화

무심수필문학회 사무국장

산사를 올라가는 길목에서부터 마음이 느슨해진다. 계곡을 따라 이어진 숲길이 울창한 수목 터널이다. 연초록 새잎이 하늘거리는 길이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마치 속세에서 선계로 이어지는 사잇길에 들어선 느낌이다.

선암사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사찰 중 한 곳이다. 풍경에 취해 걷다 보니 아치 형태의 석조 다리가 먼저 반긴다. 신선이 승천하는 다리라는 '승선교'다. 자연석으로 만든 홍예교의 곡선미에 빠져 한참 머물렀는데, 내려올 때 알았다. 내가 또 다른 홍예교 위에서 승선교를 감상했다는 사실을.

아름답고 웅대한 고찰古刹에 들어서니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시선이 닿는 곳마다 절경이다. 자연과 어우러진 사찰, 완연한 봄 산빛에 둘러싸인 이곳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속세의 먼지가 씻기는 듯하다.

고색창연한 경내엔 핑크빛 물결이 넘실거린다. 소담스럽게 핀 겹벚꽃과 진분홍 진달래꽃이 농담濃淡을 달리하며 경염을 펼치고 있다. 분홍빛 물결을 따라 흐르는 사람들의 표정에도 화색이 만연하다. 대웅전의 빛바랜 단청이 신록 속에서 고고한 빛을 발한다. 곳곳의 비경에 마음을 누이며 카메라에 담았다.

산사의 아름다운 풍광을 음미하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였을까.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따라다녔다. 수려한 경치는 물론, 고유의 품격으로 미적 가치를 지닌 보물급 문화재들이 많은 이곳이다. 눈으로 들어와 가슴에 아로새겨진 풍광들이 많은데, 유독 한 그루의 고목이 망막에 아른거렸다.

그 나무를 마주한 곳은 사찰 입구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다. 햇살의 사랑을 즐기는 싱그러운 나뭇잎을 감상하는데, 기이한 형태의 나무가 시야에 들어왔다. 연둣빛 새잎에 검은색 수피가 더욱 도드라져 보였다. 아래쪽에서 높은 고목의 위쪽을 자세히 볼 수는 없었지만, 곧게 뻗은 우듬지에 굵은 옹이가 있는 듯했다. 몸체 상부 끝에서 반쯤 잘려나간 상흔으로 변형된 모습이 아닐까 싶었다. 마치 아픈 초승달이 내려와 앉은 듯한 형상이었다. 인고의 시간이 응결된 흔적이 역력했다. 고난을 겪으며 혼신을 다한 나무의 몸부림이 보이는 듯했다. 사람의 손길로 다듬어진 조형물처럼 보였다. 단단한 옹이에서 자라난 잔가지가 사방으로 퍼져 있었다. 그 미학적인 형태가 왠지 모를 비애감을 불러일으켰다.

신영복 교수의 《담론》 중에 '아름다움'의 어원을 명쾌하게 풀어놓은 대목이 있다. 이목구비 반듯한 얼굴보다 세상과 인간에 대한 달관이 있는 얼굴, 아픔을 초월한 얼굴이 아름답다는 말에 깊이 공감했다.

'얼굴의 옛말은 얼골이며, 얼골은 '얼의 꼴', 얼의 꼴은 곧 영혼의 모습'이라고 했다. 얼굴에 그 사람의 영혼(얼)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나무에 배어있는 얼에 내 마음이 닿았던 것일까.

아름다움에도 장르가 있다. 황홀한 아름다움이 있는가 하면, 비극적인 아름다움도 있다. 단순한 아름다움, 풍부한 아름다움도 있다. 시련에 굴하지 않고 생애 의지를 불태운 고목이 경외심을 갖게 한다.

고통이 승화된 아름다움에는 짙은 삶의 향기가 배어있다.
이 기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관련어 선택

관련기사

배너
배너

랭킹 뉴스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매거진 in 충북

thumbnail 308*171

22대 총선 당선인 인터뷰 - 청주 청원 송재봉

◇22대 총선 당선인 인터뷰 - 청주 청원 더불어민주당 송재봉 "국회의원이란 자리는 명예를 위한 것도 아니고 권력을 누리기 위한 자리도 아닙니다. 입법권을 가진 국회의원으로서 그 권한을 가지고 우리 지역에 필요한 일을 해야 합니다." 더불어민주당 송재봉(54) 청주 청원 당선인은 국회의원의 직무를 강조하며 송재봉을 선택한 게 "잘한 선택이다"라고 생각할 수 있도록 열심히 뛰겠다고 밝혔다. 송 당선인은 "윤석열 정권의 2년 성적표에 대한 국민들의 실망감이 컸고, 무너지는 민주주의와 추락하는 민생 경제를 회복시키라는 국민의 준엄한 명령으로 민주당이 승리할 수 있었다"며 "앞으로 민심을 최우선으로 삼는 국회의원이 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또 "민생을 살리는 것이 22대 국회의 역할이자 사명"이라며 "윤석열 정권의 독선과 독주를 멈추게 하고 비민주적 행태와 민생에 반하는 정책은 질책하고 견제하겠다. 야당의 본질적 역할도 충실하게 수행해 정부 여당이 민생을 외면하고 민의를 거부하는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국정을 더 철저히 감시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선거 기간에 약속한 공약은 반드시 실천하겠다고 했다. 청원구를 '충청권 메가시티의 핵심 축'으로 만드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