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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 생사갈림길 함께한 청주교도소

무기수 신분 1년10개월간 머물러… 한평반짜리 독방생활

  • 웹출고시간2009.08.18 19:43:20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18일 서거한 김대중(85) 전 대통령과 충북 청주는 어떠한 인연일까.

김 전 대통령은 지난 1981년 내란음모 혐의로 구속돼 '교도소 수감'이라는 악연 아닌 악연으로 청주와 인연을 맺었다.

12·12사태로 군권을 장악한 전두환 정권은 5·18광주민주화 운동이 일어나기 하루 전인 1980년 5월 17일 새벽 0시를 기해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는 이른바 5·17조치를 감행했다.

당시 '민주주의와 민족통일을 위한 국민연합' 공동대표였던 김 전 대통령은 26명의 정치인들과 함께 '사회불안 조성 및 학생·노조 소요의 배후조종' 혐의로 체포됐다.

이어 그해 7월 31일 내란음모·국가보안법·반공법 위반 등의 혐의로 계엄보통군법회의 검찰부에 기소된 뒤 9월 17일 '내란음모사건'을 주동한 혐의로 사형선고를 받았다.

1981년 1월 육군형무소에서 사형이 확정된 그는 사형수신분으로 청주교도소에 이송됐다.

그가 처음 청주 땅을 밟게 된 때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1980년 8월 14일 육군계엄보통군법회의 대법정에서 '내란음모사건' 첫 공판을 받고 있는 모습(사진 위) 이후 1981년 내란음모 혐의로 구속돼 청주교도소에 수감된 뒤 수형번호 '9'를 달고 다음해 12월 16일까지 머물렀다.

1981년 1월 31일 청주교도소에 수감된 김 전 대통령은 1982년 12월 16일까지 1년10개월간 머물렀다. 그는 청주교도소 8사(舍)에서 수형번호 '9'를 달고 1.742평의 독방에 수감됐다.

그가 수형생활을 한 청주교도소는 일제 강점기인 1908년 11월 20일 청주시 상당구 탑동 23번지에 공주감옥 청주분감으로 개청한 지 70년만인 1978년 11월 21일 청주시 흥덕구 미평동 148번지로 이전한 곳이다.

그의 전담교도관은 시국사건 수형자들에게 정통하다는 내부평가를 받던 강복기(60) 전 서무과장이었다.

강씨는 이때의 인연으로 2000년 12월 스웨덴 오슬로에서 열린 노벨평화상 수상식에 현직 공무원으로는 유일하게 김 대통령의 초청을 받아 참석했다.

김 전 대통령은 청주교도소 복역 중 매일같이 부인 이희호 여사와 편지를 주고받았다.

책벌레로 소문 난 그는 교도소에서도 매일같이 책을 보내주는 부인의 도움으로 독서를 하고 자신의 생각이나 미래한국 사회에 대한 전망 등을 편지에 써서 보냈다.

당시 편지 양이 제한된 탓에 그는 봉함엽서 한 장에 깨알 같은 글씨를 담아 장문의 편지를 썼다. 그는 교도소 복역 당시 '추야장 긴긴밤에 감방 안에 홀로 누워, 나라일 생각하며…(중략)'라는 애달픈 내용의 옥중단시를 쓰기도 했다.

수형생활 도중 독일·미국·일본·프랑스 등에서 현지 교포들과 각국의 양심적 지식인·문화인·정치인들이 '김대중 구명운동'에 나서면서 그의 형량은 사형에서 무기징역, 무기에서 20년형으로 감형돼 죽음의 그림자에서 벗어났다.

그는 1982년 12월 16일 석방돼 미국으로 쓸쓸한 망명길에 올라야 했다.

이후 한국인권문제연구소를 열어 해외에서 활동하다 1985년 12대 총선을 앞두고 귀국했다. 김 전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받은 2000년 12월 청와대는 법무부가 보관 중이던 당시 그의 수형생활이 담긴 사진첩을 이희호(李姬鎬) 여사에게 전달하고 공개했다.

청주교도소측도 당시 김 대통령이 사용하던 침상과 나무책상, 의자 등 을 그대로 보존하다 얼마 전 개조해 수용시설로 활용하고 있다.

/하성진 기자 seongjin98@hanmail.net

DJ 점담교도관 강복기씨, 눈물의 회고 "옥고에도 의연하셨던 분…"

김대중 전 대통령이 신군부로부터 사형선고를 받은 뒤 무기징역으로 감형받은 직후 청주교도소에 수감됐을 때 전담(감시)팀장으로 근무했던 강복기씨(67.교정공무원 퇴임).

"어려운 수감생활도 의연하게 견딜 만큼 의지가 강한 분이셨는데 이렇게 서거하셨다니 안타깝고 하늘이 무너지는 심정입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1981년 내란음모 혐의로 사형선고를 받고 청주교도소에 수감됐을 당시 전담교도관으로 근무했던 강복기(사진·67·청주시 흥덕구 분평동) 전 청주교도소 서무과장은 그의 서거소식을 듣고 비통한 마음을 전했다.

강씨가 김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게 된 때는 1981년 1월.

김 전 대통령은 전두환 신군부로부터 내란음모죄로 그 해 1월 23일 사형을 선고받고 31일 청주교도소에 수감됐다.

김 전 대통령은 1981년 12월 23일 석방되기 전까지 교도소 8사(舍) 2호실의 1.742평 독방에서 1년 10개월간을 보냈다.

시국사건 수형자들에게 정통하다는 내부평가를 받던 강씨는 상부의 지시에 따라 김 전 대통령을 전담했다.

강씨는 "김 전 대통령은 당시 고문 후유증인 고관절과 허리 디스크 등으로 고생하면서도 단 한 번도 의연함을 잃지 않았다"고 기억을 더듬었다.

그는 "외부인은 물론 수감자와 철저히 통제된 채 생활하던 김 전 대통령은 독서와 기도로 평상심을 유지하며 항상 미소를 잃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혹독한 수형 생활을 견딘 김 전 대통령은 출소하며 미안해하는 직원들을 오히려 격려해 줘 주위를 숙연케했다고 강씨는 말했다.

2000년 12월 청와대로부터 스웨던 오슬로에서 열리는 김 전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식에 참석하라는 통보를 받은 강씨는 18년 만에 김 전 대통령을 만나게 됐다.

강씨는 "대통령께서 수상식에 저를 초대해주셨다는 얘기를 듣고 감개무량해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그는 "서거하셨다는 말이 지금도 믿기지 않는다"면서 "한번 찾아뵀어야 하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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