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지도 등에 등장하는 청주읍성내 옛우물이 해체되지 않고 실내 공간으로 옮겨져 보존될 것으로 보인다. 문화재청은 지난 13일 남문로2가의 우리은행 청주지점 신축부지 현장에서 전문가 검토회의를 갖고 '관련 유구를 최소한 이전·보존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충북도문화재연구원(원장 장호수)은 지난 5월 4일부터 일대에서 발굴조사 활동을 벌여 왔다. 그 결과, △방형 모양의 고려시대 우물 1기(60x60x215㎝) △같은 모양의 조선시대 우물 1기(110x100x170) △석렬 2기 등의 유구를 발굴했다. 고려시대 우물에서는 청자편, 조선시대 우물에서는 백자편 등이 함께 출토되면서 편년(연대 설정)의 주요 근거가 됐다. 이같은 발굴 성과와 관련, 18세기 말에 제작된 청주읍성도에 우물이 뚜렷히 그려져 있어 '고지도 속의 그 우물인가'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청주읍성도에는 성안에 3개의 우물이 존재한다는 의미로 'O+井' 표시를 해놓고 있다. 이번에 발굴한 구역에도 'O+井' 표시가 뚜렷히 존재, 2기 우물 중 1기가 고지도 속의 우물임이 분명해졌다. 정황상 이 우물은 조선시대 우물로 추정되고 있다. 나머지 1기(고려시대)는 세종실록지리지에 등장하는 우물인 것으로
청주가 교육도시임을 주장할 때 자주 거론되는 것이 망선루(望仙樓)이다. 망선루는 고려시대 때 과거시험의 합격자 방이 붙었던 곳으로 유명하다. 공민왕은 홍건적을 피해 청주에서 7개월 가량 머문다. 임시수도 생활이 길어지자 과거시험을 봤고, 그 합격자 명단을 망선루에 내걸었다. 근현대기의 망선루는 자주 이전했다. 지금의 중앙공원 망선루는 제일교회측이 부대건물로 사용하던 것을 청주시에 기증하면서 공원 안으로 이건(移建)됐다. 2천년 밀레니엄 때의 일이다. '옛 이름은 취경루(聚景樓)이다. 지정(至正) 신축년에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을 피하여, 안동으로부터 이곳에 옮겨 와 수개월 동안 머물렀었다. 도적이 평정되자 문과와 감시(監試)의 합격자 방을 붙였었는데, 훗날 사람이 그 방을 써서 누각에 게시하였다.'- 인용문에서 보듯 망선루의 본래 이름은 취경루로, '경치를 끌어들인다'는 뜻을 지닌다. 이 누정 이름을 망선루로 바꾼 인물이 한명회(韓明澮·1415∼1487)다. '누각은 오랫동안 헐어 있었는데, 천순(天順) 신사년(세조 7년)에 목사 이백상(李伯常)이 새로 중수하고, 한명회(韓明澮)가 누각의 편액을 고쳐서 망선루라 하였다.'- 한명회는 청주가 본관이나 여러 정황상
괴산군 칠성면 갈은구곡(葛隱九曲)에는 신선사상이 하류로부터 상류로 기승전결 구도로 설정돼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고려대 조경학연구실 심우경 팀이 최근 '구곡원림에서 찾는 신선경의 경관 스토리보드' 제목의 논문을 한국전통조경학회 최근호에 발표했다. '괴산 갈은구곡을 대상으로'를 부제로 하고 있는 이번 논문은 표현 그대로 충북도내 4대 구곡의 하나인 갈은동문을 연구 주제로 삼고 있다. 지금까지 갈은구곡에 대해서는 인문학적인 접근이 간헐적으로 있어 왔으나, 조경학적인 분석은 이번이 처음이다. 논문에 따르면 갈은구곡 설정자는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제 2곡 갈천정과 제 7곡 고송유수재에 이름이 새겨져 있는 전덕호(全德浩)라는 인물이 매우 유력시되고 있다. 설정연대는 홍승목(洪承穆·1847~1925) 이름이 음각돼 있는 것으로 봐, 19세기말~20세기 초기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홍승목은 괴산출신 홍명희의 할아버지로 조선말 병조참판을 지냈다. 연구팀은 이런 인문학적인 배경을 바탕으로, 갈은구곡에 대한 조경학적인 접근을 처음으로 시도했다. 그 결과, 갈은구곡의 1~9곡은 △신선의 세계로 들어감(1~2곡·起) △신선경의 세계가 펼쳐짐(3~6곡·承) △신선
포도청(捕盜廳)은 지금의 경찰청과 같다. 그러나 조선 초기의 포도청은 전국적인 기구는 아니었다. 성종대까지만 해도 지금의 수도권을 좌변과 우변으로 나눠, 서울의 동부·남부·중부와 경기좌도는 좌변포도대장이 맡았다. 반면 서울의 서부·북부와 경기우도는 우변포도대장이 맡았다. 1894년(고종 31) 갑오경장 때 좌·우변 포도청을 폐합해 경무청(警務廳)을 설치했다. 전회에 박응서라는 인물을 소개한 바 있다. 그는 대북파 이이첨(李爾瞻)의 꾐에 빠져 "영창대군을 옹립하기 위한 거사자금 마련을 위해 강도짓을 했다"고 거짓 자백했다. 이때 박응서의 형관을 맡은 인물이 당시 좌변포도대장 한희길(韓希吉·?∼1623)이다. '좌변포도대장 한희길이 아뢰기를, "지난 달에 조령(鳥嶺) 길목에서 도적이 행상인을 죽이고 은자(銀子) 수백냥을 탈취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그 적괴(賊魁)인 서얼 박응서는 도망갔고 도적 허홍인의 노비 덕남 등을 체포했는데…'- 그러나 그도 엄밀히 말하면 피해자였다. 그의 뒤에는 대북파 영수인 이이첨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이첨이 이를 듣고 희길을 불러 묻기를 "자네가 큰 도적을 잡았다고 들었는데 그 실상이 어떠한가" 하니, 희길이 공초(供招)받은
임진왜란이 끝나자 호성공신과 선무공신을 선발하는 작업이 시작됐다. 호성공신은 선조를 의주까지 호종하는 데 공을 세운 문신에게 내린 훈호(勳號)를 지칭한다. 무신에게는 선무공신이라는 훈호가 주어졌다. 호성공신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잡음이 일어났다. 1등에 이항복(李恒福)·정곤수(鄭崑壽) 등 2명이 선발됐지만 나머지 등급을 둘러싸고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그 대상이 됐던 인물은 정운, 이희득, 심희수, 유몽정등 4인이었다. 특히 심희수와 유몽정은 역할이 비슷, 공신 포함 여부를 놓고 삼정승들이 마지막까지 고심했던 흔적이 실록에 나타난다. '만일 심희수을 녹공할 경우에 유몽정(柳夢鼎)은 임진년의 성절사로서 대가(大駕)가 서쪽으로 행행할 적에 뒤따라갔고, 북경에 도착해서는 정문(呈文)하여 위급을 상고(上告)하는 노고가 있었으니, 유몽정만 유독 빠지게 된다면 미안스러울 듯합니다.'- 파문이 가라앉은 후 유몽정 아들 '영'이라는 인물이 "아버지가 공신에 선정되지 않은 것은형평성에 어긋난다"는 내용의 상소를 올린다. 이는 유몽정이 호성공신에 포함되지 못한 것을 의미하고 있다. 실제 호성공신 최종 명단에는 그의 이름이 보이지 않는다. 이에 대해 당시 조정도 "안타깝게 됐다"는
증도가자(證道歌字)가 직지보다 최소 1백여년 앞선다는 탄소연대 분석 결과가 또 다시 나왔다. 이에따라 '직지=현존 최고(最古) 금속활자본' 주장에도 불구하고 직지의 위상이 또 다시 흔들릴 가능성이 커졌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 홍완 박사는 증도가자 4점에 묻어있는 먹(墨)의 탄소연대 분석을 최근까지 실시했다. 경북대 남권희(서지학 전공) 교수는 논란이 일자 지난해 하반기 증도가자 일부 금속활자에 대한 탄소연대 분석을 한국지질자원연구원에 의뢰한 바 있다. 그 결과, 이번에는 1차 분석 때보다도 더 오래 된 연대분석 결과가 나왔다. 홍 박사는 이에대해 이날 본보와의 전화통화에서 "그때보다 더 올드하다"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그는 "4점 금속활자에 묻은 먹을 분석했으나 이중 1개는 신뢰도가 낮아 조사대상에서 제외했다"며 "나머지 3점에서는 1차 때보다 더 올드한 값이 나왔다"고 밝혔다. 홍박사는 "먹은 숯이 주재료"라며 "정황상 금속활자 제작 당시보다 더 오래된 나무를 먹재료로 사용하면 이같은 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1,2차 합친 5점 금속활자 먹에서 비슷한 값이 나온 것은 유의미한 것"이라며 "5점 모두 조선시대 값은 나오지 않았다"고 덧붙였
조선 광해군대 여주 한강변에서 강변칠우(江邊七友)를 자처하는 패거리가 서자에게도 관계 진출을 허용해 주도록 건의했으나 수용되지 않았다. 강변칠우는 7명의 명문 서자들이 스스로를 지칭하는 것으로, 박응서·김평손·심우영·서양갑·박치의·박치인·이경준 등을 말한다. 박응서는 영의정, 서양갑은 목사, 심우영은 관찰사, 이준경은 병마절도사의 서자였다. 이들은 여주의 강변에 '무륜(無倫)'이라는 정자를 지어놓고 시와 술로써 소일하며, 관계에 진출하지 못하는 불만을 토로했다. '칠우'라는 명칭은 중국의 죽림칠현(竹林七賢)을 모방했다. '칠우'의 본멤버는 아니었지만 홍길동전의 저자 허균((許筠·1569~1618), 이재영(李再榮·1553~1623) 등도 가끔 찾아와 이들과 어울렸다. 1612년에는 조령에서 은상인(銀商人)을 죽이고 은 수백냥을 약탈하는 강도살인 사건이 발행했다. 이때의 조령이 괴산 사면인지, 문경 사면인지는 분명치 않다. 범인들은 강변칠우였고 이들은 이듬해 모두 검거됐다. 제도 불만이 악행으로 이어진 사건이었다. 직전의 조정은 북인이 정권을 잡고 있었으나 후계 문제로 분열했다. 대북파는 광해군, 소북파는 영창대군을 옹호했다. 당시 대북파의 영수였던 이이첨(李
무령왕릉 지석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등장, 그 동안의 논란에 종지부가 찍힐지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특히 이번에 등장한 새로운 해석은 충남·북 교수들이 주도하는 학회에서 나왔고 또 고고학적인 해석도 곁들이고 있어,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 2011 호서사학회(회장 최병수·충북대교수) 춘계 세미나가 지난 4일 오후 천안 나사렛대학에서 열렸다. 이날 세미나에는 윤진(충북대 사학과) 교수의 모두 발언에 이어 이현상(충남역사문화원), 장수남(대전대), 김동진(한국교원대), 송양섭(충남대), 도중만(목원대) 교수 등이 나서 준비해 온 논문을 발표했다. 이중 지면 관계상 일부를 소개하면, 장 박사의 '무령왕릉 출토 지석의 새로운 해석'이 대중성을 지니고 있어 참석자들의 이목을 끌었다. 지난 1971년에 발견된 부여 송산리 무령왕릉 지석은 명문 내용이 상당부분 밝혀졌으나 '到乙巳年八月癸酉朔十二日甲申安조(언덕한부+昔)登冠大墓' 중 말미 '安조登冠大墓' 부분은 해석이 엇갈리면서 적지 않은 논쟁을 빚어왔다. 지석(誌石)은 죽은 사람의 인적 사항이나 무덤의 소재를 기록하여 묻은 판석을 말한다. 지금까지 말미 부분 해석과 관련해서는 이를 한 문장으로 해석, 대체로 '대묘에
청주시 등 지자체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충북인들의 독서 의지가 매우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그 정도가 전국 16개 광역단체 중 하위권인 것으로 나타나, 정책적인 분발도 요구되고 있다. 인터넷서점 예스24는 2010년 인구주택총조사와 지역별 도서 판매량을 바탕으로 집계한 결과 지난해 예스24를 통해 서울 시민 1인당 0.82권의 책을 구입해 16개 시도 가운데 가장 많았다고 2일 밝혔다. 이어 대전과 울산이 각각 0.70권, 0.63권으로 2-3위를 기록했으며 가장 적은 곳은 전북으로 1인당 0.39권을 구매했다. 충북은 전국 16개 광역단체 중 12위를 차지했다. 예스24는 "특히 울산의 경우 전국에서 고령인구 비율이 가장 낮은 곳으로, 고령 인구가 많은 전남(0.40권), 경북(0.41권) 등에 비해 책 구매량이 눈에 띄게 많았다"고 분석했다. 이어 "예스24가 국내 온오프라인 서점에서 차지하는 판매 점유율이 20% 가량인 것을 감안하면 1인당 연간 도서 구매권수는 서울시가 4.1권, 대전 3.5권, 울산 3.2권 정도인 것으로 추정된다"고 덧붙였다. 이럴 경우 충북인은 연간 2권(0.4x5) 정도의 책을 구입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전국 평균은
광해군은 임진왜란 때 맹활약했다. 게다가 분조(分朝)의 경험까지 있어, 그가 왕위를 승계하는 것은 당연시 됐다. 선조의 분조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다. 자신의 유고를 대비해 그렇게 했다는 설이고, 또 다른 하나는 선조 자신이 중국으로 망명하기 위한 사전 작업이었다는 설이다. 임진왜란이 종전되자 광해군의 왕위계승 환경은 더욱 굳어졌다. 그러나 권력은 부자간에도 나누지 못한다는 속설이 있다. 선조와 광해군 사이에 이와 같았다. 선조는 광해군이 백성들로부터 인심을 얻고 있는 것을 알고 자신이 제거될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런 불안감은 증오심으로 발전했다. 선조는 "어째서 세자의 문안이라고 이르느냐. 너는 임시로 봉한 것이니 다시는 여기에 오지 말아라"고 할 정도로 광해군에게 악감정을 드러냈다. 이런 상황에서 의인왕후 박씨가 사망하자 선조는 바로 후처를 맞이했다. 그가 바로 인목황후 김씨였다. 이때 선조의 나이 50세, 인목황후는 19살이었다. 1606년에 영창대군을 낳자 왕위계승을 둘러싼 문제가 분격적으로 불거졌다. 얼마안가 선조는 병이 위독하자 영창대군에게 선위하는 교서를 내렸다. 선조는 신임하던 일곱 신하에게 영창군의 뒤를 유명(遺命)으로 부탁하기도 했다
토종여우가 충북 단양, 경북 영주 등 소백산국립공원 양쪽 사면을 넘나들겠지만, 그 배타적 기득권은 경북 영주시가 가져가게 됐다. 이에따라 충북은 교원대 황새에 이어 생태관광과 관련한 중요한 기득권을 또 다시 다른 지역에 빼앗겼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1일 국립공원관리공단과 경북 영주시는 토종여우(사진) 복원과 관련한 업무 협약을 공식적으로 체결했다. 이에따라 서울대공원으로부터 기증받은 토종여우(정식명칭 붉은여우·Red fox) 암수 1쌍은 경북 영주시 순흥면 1만㎡ 시유지에서 야생 적응훈련을 거친 후 올 가을쯤 산림 속으로 시험 방사될 계획이다. 앞서 국립공원관리공단은 며칠전 보도자료에서 '소백산국립공원이 토종여우 복원지역으로 선정됐다'고 언급했을뿐, 이날 업무협약 내용과 구체적인 시험방사 지역은 공개하지 않았었다. 관리공단측은 이에 대해 "토종여우는 행동권(대략 12㎢)이 비교적 넓기 때문에 소백산 서쪽(충북 단양)과 동쪽(경북 영주) 사면을 넘나들며 생활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와함께 "계획대로라면 오는 2015년까지 10개체 20쌍, 2020년까지 25쌍 50개체가 복원된다"며 "따라서 첫 시험 방사지역이 어디인가는 그리 중요치 않아 보인다고
단재문화재단이 주최한 '2011 단재문화예술제천 학술 세미나'가 1일 오후 서울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단재 신채호에 대한 회상과 기념 의미'를 주제로 열렸다. 이 자리에는 이만열 숙명여대 명예교수와 이종호 한국예술종합학교 건축과 교수가 등단, '왜 이 시대에도 단재인가'와 '기념의 장소를 위한 상상력- 무엇을 어떻게 기념할 것인가' 제목의 내용을 각각 발표했다. 전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기도 한 이 명예 교수는 "단재사상은 이 시대에도 계속 유효하다"고 전제, 그 이유로 △해동하는 지식인 △균형감각 △민중에 대한 사랑 등을 꼽았다. 그는 전자에 대해 "한말 일제하를 살아간 지식인 중 그들의 신념과 행동을 일치시키려고 한 인물은 적지 않다"며 "그러나 단재만큼 문제의식, 자기 이념화, 행동철학 순으로 실천한 이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그는 그 근거로 단재의 인생이 개신유학자-언론 계몽운동-해외망명-역사연구-독립운동 투신 등 항상 민족의 아픔과 호흡을 함께 하고 어루만지려 한 점을 들었다. 이 명예교수는 단재의 균형감각에 대해 "일반의 생각과 달리 단재는 '시대의 변화에 대처하려면 개화해야 하지만 그런 개혁사업 못지 않게 국수를 보전하는 보수사업도
자살 사건이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자살과 관련된 최근의 언론보도 태도는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관련 내용을 너무 상세히 보도, 되레 자살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31일 충북대 심리학과 유성은(임상심리학 전공·사진) 교수는 자살과 관련된 최근 언론보도의 문제점으로 △단정적인 보도 △너무 상세한 보도 △과도한 보도횟수 등 3가지 정도를 꼽았다. 그는 단정적인 보도에 대해 "자살을 행동으로 옮기는데는 매우 복잡한 것들이 관여한다"며 "이런 것들을 외면하고 상황 위주의 표피적인 보도를 하면 자칫 추측 보도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유교수는 "미국의 경우 자살 사건이 발생하면 사진을 게재하지 않고, 또 사실만 단순하게 보도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또 "자살 방법을 너무 상세히 보도하는 것은 자칫 자살 아이디어를 공개적으로 알려주는 것과 같을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같은 유형의 대표적인 사례로 이른바 승용차안 연탄 자살을 꼽았다. 그는 "관련 내용이 상세히 보도된 이후 연탄 자살이 자주 일어나고 있다"며 "최근 보도된 이른바 십자가 자살, 이어폰 자살도 분명 너무 상세하면서 구체적
1545년(명종 즉위) 을사사화가 일어났다. 을사사화는 윤형원의 소윤이 윤임의 대윤을 공격, 이로 인해 사림이 크게 화를 당한 사건을 말한다. 노수신(盧守愼·1515∼1590)도 이 사건에 연루된 것으로 드러나 유배를 가야 했다. '노수신과 정황은 본래 못나고 망령된 사람인데 헛된 칭예(稱譽)를 내세우며, 부박한 무리를 고무 선동하여, (…)사습의 궤격함을 빚어내어서 시사(時事)를 분란하게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아울러 멀리 유배시키소서" 하니…'- 그가 유배생활을 하던 1546년 이른바 양재역 벽서사건이 일어났다. 벽에는 '여왕이 집정하고 간신 이기 등이 권세를 농락하여 나라가 망하려 하니 이것을 보고만 있을 수 있는가'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벽서의 내용은 임금에게 보고되었고, 당시 섭정을 하던 문정왕후는 명종에게 지시하여 잔여 윤임 일파를 완전 숙청했다. 이 사건 역시 소윤이 잔여 대윤을 공격하기 위해 조작한 사건이다. 노수신은 여기에도 연루됐다는 판정을 받았다. '이에 송인수·이약빙은 사사하고, 이언적·정자는 극변안치 하고, 노수신·정황·유희춘·김난상은 절도안치 하고 (…) 윤강원·조박·안세형·윤충원·안함은 부처하고자 한다.'- 인용문 중 극변안치는
한여름 청주에서 지표면온도가 가장 높게 올라가는 곳은 서청주 일원의 공단지역인 것으로 나타났다. 반대로 같은 조건에서 지표면기온이 상대적으로 적게 올라가는 곳은 녹지가 많은 청주 동쪽과 충북대인 것으로 밝혀졌다. 충북대 지역건설공학과 박종화 교수 연구팀이 처음으로 인공위성을 이용해 청주지역의 열섬현상을 조사·분석했다. 연구팀에 따르면 도시 열섬(Hit island) 현상에 대한 연구는 국내외적으로 자주 시도돼 왔다. 그러나 기온에 대한 평면 전체의 데이터값 얻기가 쉽지 않으면서, 연구자들이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어 왔다. 따라서 박교수 연구팀은 인공위성을 통해 청주지역의 식생피복온도와 지표면온도 등을 측정했다. 이때 가시광선, 근적외선, 열적외선상 등이 측정 방법으로 활용됐다. 시간 비교의 경우 장기간은 1968~2009년 42년 동안, 단기간은 2006년과 2008년에 촬영한 것을 비교값으로 삼았다. 그 결과, 청주지역은 지난 42년 동안 8월의 평균기온이 약 1.2도 상승한 것으로 조사됐다. 1980년이 22.8도로 가장 낮았고, 1995년이 27.7도로 가장 높았다. 박교수는 이와 관련해 '여름철 기온이 1도 상승할 경우 100~120kw의 전력수요가
1909년 대한매일신보 한글판에 무서명으로 연재된 계몽소설 '디구셩미래몽'(地球星未來夢)이 단재 신채호(申采浩·1880~1936)의 작품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 같은 주장이 사실이라면 단재에 대한 연고권이 가장 강한 충북은 또 하나의 귀중한 사료를 얻은 셈이 되고 있다. 단재 연구의 권위자인 경북대 김주현 교수는 28일 이화여대에서 열린 제38회 한국현대소설학회 학술대회에서 '디구셩미래몽의 저자와 그 의미'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 저자가 단재 신채호라고 주장했다.그는 그 근거로 △작품 속 화자인 '우세자'가 자신을 소개한 내용 △'우세자'의 세계관 △작품의 형식과 문체 등을 꼽았다. 작품 속 화자인 우세자는 자신을 '월보와 잡지를 발간했고 또 독서가 직업인 인물'로 소개했다. 이와 관련, 단재는 기호흥학회, 대한협회호보, 가정잡지 등을 통해 계몽운동을 펼쳤고 책 읽기를 좋아해 독서와 관련해 수많은 일화를 남긴 바 있다. 이밖에 소설 속의 저자는 '우리 신성하신 단군의 자손의 지옥이 목전에 있도다' 또는 '우세자는 단군 이후 사천여년 시대 사람이라' 등 단군을 내세우고 있다. 이것 역시 민족주체 의식을 유난히 강조한 단재사상과 일맥상통하고 있다. '디구셩
1589년 정여립(鄭汝立·1546 ~ 1589)이 모반을 꾀했다는 기축옥사가 일어났다. 율곡 이이의 문하생이었던 정여립은 표변했다. 율곡의 제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서인을 비판했다. 이후 전북으로 귀향, 대동계를 조직하여 무술을 연마하기도 했다. 그해 황해도 관찰사, 안악 군수 등이 정여립이 대동계 사병을 이끌고 반란을 시도, 선조 임금을 몰아내고 왕위를 차지하려 한다고 고변했다. 체포령이 내려지자 정여립은 진안 죽도(竹島)의 토굴에서 자결했다. 혐의자에 대한 국문에 2년의 시간이 걸렸고, 이때 형관을 맡은 사람은 정철이었다. 기축옥사로 동인 1천여명이 희생됐고, 한때 전라도는 반역지향(叛逆之鄕)이라 하여 인재 등용이 제한됐다. 기축옥사는 1970년대까지만 해도 정여립의 반란으로 규정됐다. 1980년대 이후부터는 서인의 책사였던 송익필이 조작했다는 설, 서인의 집단 조작설, 정여립의 혁명적인 주장이 옥사를 초래했다는 설 등 여러 주장이 혼재하고 있다. 기축옥사 때 자살한 정여립의 시신을 거두어 정성스레 염(殮)한 인물이 있었다. 바로 한백겸(韓百謙·1552~1615)이다. 또한 그는 정여립의 생질인 이진길(李震吉)과 친분이 두터운 사이이기도 했다. 한백겸도 체포
충북도지사 관사를 문화공간으로 활용하는 것은 환영할 일이나, 일대가 문화재 보고인 만큼 시설 개선시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문화공간으로 꾸밀 경우 '도지사 관사문화 전시공간'도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26일 충북도는 지난 2007년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구관(제 353호)은 문화갤러리로, 신관은 리모델링해 북카페, 세미나실, 미팅룸 등으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럴 경우 신·구 도지사 관사에서는 충북출신 문인들의 작품과 삶을 소개하는 상설전과 기획전 등이 수시로 열리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밖에 정원은 작은 음악회와 시 낭송회 등이 열리는 야외무대와 주차장 등으로 활용되고, 또 충북출신 문인동상도 함께 조성될 예정이다. 그러나 관사 자체는 물론 일대에 문화재가 많이 산재하고 있는 만큼 시설 개선이나 조형물을 세울 경우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이들은 그 이유로 △최초 건축 때(1937년) 흑단목, 황양목 등 희귀목을 사용했고 △수해(1970년대 초반) 상처에 따른 초석 흔적이 남아 있는 점 등을 거론했다. 이밖에 현존하는 석등(일명 대성동 석등)이 고려초기 문화재인
영동군 양강면 두평리 561번지에 자풍서당(資風書堂)이라는 건물이 위치하고 있다. 중앙에 대청이 자리잡고 있어 시원스러움이 느껴지는 18세기 건물이다. 한 가지 특이한 것은 유교건축물 내에 불탑이 자리하고 있는 점이다. 영동군 향토유적 제8호로, 공식 명칭은 '두평리 5층석탑'이다. 1989년 지하에서 발굴된 이 석탑은 신라말~고려 초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본래 이곳에는 풍곡사(風谷寺)라는 사찰이 위치하고 있었다. 그러나 조선시대 억불숭유 정책에 따라 사찰이 폐지되고 유교 건축물이 세워졌다. 종교간에도 역전과 반전이 있었던 셈이다. 자풍서당의 관리가 잘 안 되어 있는 모양이다. 주변에서 음식을 주문하면 닭까지 잡아 주고 또 건물 아궁이 주변이 불에 끄슬려 있다고 최근 언론에 보도됐다. 자풍서당할 때의 '자풍'은 자법정풍(資法正風)에서 딴온 말로, 광해군 65년(1614) 정구(鄭逑)라는 인물이 작명했다. '資'는 명사로 쓰이면 재물을 뜻하지만, 술어로 사용되면 '헤아리다', '바탕으로 하다'는 뜻을 지닌다. 그렇다면 자법정풍은 '법을 바탕으로 해서 풍속을 바르게 한다'는 뜻이 된다. 조선시대 예학을 논할 때 좌우에 나란히 위치하는 인물이 김장생과 정구다.
한국인의 언어생활과 관련해 입말(口語)의 정겨움이 '기계글'로 불리는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에 점차 밀려나고 있다. 특히 이같은 현상은 갈수록 고령층으로도 확대되면서 어문학자들 사이에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25일 충북대 등 청주지역 대학가에 따르면 불과 5~6년 전만 해도 대학생이 스승인 교수에게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를 보내면 "버릇없다"는 소리를 들었다. 따라서 학생들은 교수 연구실을 직접 방문해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거나 전달했다. 유·무선 전화도 종종 의사표현 방법으로 사용됐으나, 간단한 용무 이외의 대화는 자칫 무례나 불경으로 비춰졌다. 그러나 근래들어서 일반인 사이는 물론 대학생이 50대 초·중반의 교수에게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 것은 일상적인 모습이 돼 가고 있다. 기계글(휴대전화) 사용이 보편적인 언어생활이 되다 보니 50대 교수가 제자들에게 먼저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 현상까지 쉽게 목격되고 있다. 이처럼 기계글이 60대 이상을 제외한 전연령층으로 확대된 것은 △휴대전화 감촉문화 △이른바 '1:0문화' 확산 △저비용성 등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때의 '1'은 본인, '0'은 상대방을 의미하고 있다. 한국교원대 성낙수(국
1백년전 청주지역의 음식문화가 복원됐다. 청주시가 삼겹살 등 지역 고유의 음식 브랜드를 개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가운데, 1백년전 청주지역의 음식문화를 다룬 논문이 발표돼 관심을 끌고 있다. 국립민속박물관 권선영(전시운영과) 씨가 얼마전 '반찬등속의 식재료 사용을 중심으로 본 1910년대 청주지역 식문화'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다. 논문은 지난 2007년 국립민속박물관이 구입한 '반찬등속'이라는 고한글체 고서를 4년 동안 분석·논문화한 한 것으로, 지난해 하반기 한국식생활문화학회지에 발표됐다. '반찬' 할 때의 '찬'은 아래아 모음이고, '등속'은 '따위' 정도로 풀이된다. 조사 결과, 32쪽 필사본인 반찬등속은 '계축년'(1913년)에 청주군 서강내일(西江內壹) 상신리(上新里·지금의 강서2동)의 한 집안에서 작성됐고, 당시의 음식종류, 식재료, 조리법 등의 내용이 담겨져 있다. 저자 이름이 씌여있지 않은 것으로 봐 정황상 시어머니가 시집온 며느리에게 집안의 음식전통을 가르쳐주려 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논문에 따르면 시어머니는 먼저 김치류, 짠지류, 과자류, 떡류, 음료류, 기타 등의 음식 종류를 기록했다. 세부적으로 김치류는 무김치, 깍두기, 오이김
누각(樓閣)과 정자(亭子)는 혼동되는 면이 있다. 한자가 둘의 차이점을 어느 정도 설명해 주고 있다. 누각 할 때의 '다락樓' 자는 마치 이층집 모습을 하고 있다. 바로 누각은 1층은 기둥만 세운 채 벽을 비우고 2층에는 마루를 깐 건축물로, 관아에서 부속 건물로 짓는 경우가 많았다. 정자는 규모가 누각보다 작으면서 1층으로만 지어지면서, 과거 선비 개인의 피서나 음풍농월 장소로 주로 이용됐다. 누각과 정자의 공통점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동국여지승람에는 '누허즉능납만경'(樓虛則能納萬景)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의역하면 '누각이 비어 있어야 주변의 많은 경치를 불러들일 수 있다'는 뜻이다. 우리 선조들은 취경 즉, 경치를 불러들이기 위해 누정에 벽과 문을 설치하지 않았다. 선사상은 '마음을 비워야 선행을 쌓을 수 있다'고 가르치고 있다. 둘은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충북에도 유명한 누정이 적지 않다. 지명도가 높은 누정으로 제천 청풍의 한벽루(보물 제528호)와 영동 황간의 가학루(도유형문화재 제 22호) 등이 있다. 청풍 한벽루는 물가, 가학루는 추풍령 바로 밑의 영로(嶺路) 변에 위치하고 있다. 가학루는 조선 태종 3년(1403)에 당시 황간현감 하담
충북이 국내 생태 종(種) 복원의 산실로 떠오르고 있다. 그러나 종 복원에 성공하고도 그 개체를 다른 지역에 넘겨준 사례도 있어, 이의 전철을 밟지 말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환경부는 오는 2020년까지 토종 여우(일명 Red fox) 50개체(25쌍)를 야생에서 복원키로 하고, 그 대상지로 충북 단양과 경북 영주를 양사면으로 끼고 있는 소백산을 선정했다고 23일 발표했다. 환경부는 선정 사유에 대해 "지난해 소백산, 덕유산, 오대산 등을 대상으로 여우 먹이자원을 조사한 결과, 단양 소백산이 가장 가장 풍부한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이에따라 서울대공원에서 사육 중인토종여우1쌍을 기증받아 자연적응 훈련을 시킨 뒤 금년 9∼10월쯤 시험방사에 들어갈 계획이다. 토종여우는 △평균수명 최장 15년 △출산 개체수 4~6마리 △행동권 12㎢ △2세부터 출산 시작 등의 생태적 특성을 지니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의 전설, 민화나 전래동화 등에 자주 등장, 국민들에게 친밀도가 높고 인간과 관련성이 매우 높은 동물로 묘사돼 왔다. 한편 환경부의 이날 발표로 전체 5개 종중 3개의 생태종 복원사업이 충북에서 이뤄지고 있거나 앞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현재 산양은 충
주부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청주 용암2, 산남3, 오창지구 중 용암2지구의 근린환경 만족도가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가운데 입지상 용암2지구는 친환경, 산남3지구는 사설교육시설, 오창지구는 학교시설 부분의 개선요구가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충북대 주거환경과 이상운 씨와 박경옥 지도교수가 얼마전 '택지개발지구 특성에 따른 거주자의 생활권 내 근린환경만족도 및 개선우선지수(부제:청주권 3개 택지개발지구를 중심으로)' 제목의 이씨 박사논문으로 (사)한국주거학회 춘계 학술발표대회에서 논문상을 수상했다. 주저자인 이씨는 이들 3개 지구의 근린환경 만족도 등을 알아보기 위해 용암2지구 229명, 산남지구 217명, 오창지구 217명 등 전체 763명의 가정주부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지난 2002년에 준공된 용암2지구는 주거중심형이면서 상업지역 배치 유형상 다핵 집중형 특징을 지니고 있다. 2007년에 준공된 산남3지구는 공공청사 복합화+친환경형이면서 상업상 단핵 집중형+노선형의 모습을 하고 있다. 이에 비해 지난 2001년에 준공된 청원 오창지구는 산업단지 복합화 형이면서 상업지역 배치 유형상 단핵 집중형 특징을 지니고 있다. 조사 결과, 택지
기수학(氣數學)이라는 것이 있다. 일반인들은 점술학으로 많이 알고 있으나, 그렇지 않은 면도 있다. 조선 전기의 대표적인 기수학자로는 명종 때 인물인 박지화(朴枝華·1513∼1592)가 꼽히고 있다. 그는 벼슬이 이문학관(吏文學官)에 이르렀다. 이문학관은 승정원 소속으로, 중국 외교문서와 관련된 업무를 주로 담당했다. 그러나 그는 서자 출신으로, 승진에 한계가 있었다. 그는 명산을 유람했고, 특히 금강산에 들어가 7년간 수도했다. 이수광은 이런 그를 지봉유설(芝峯類說)에서 '그는 밥을 먹지 않고 솔잎과 소나무 껍질만 먹었으며, 엄동설한에도 무명옷을 입고 지냈다'고 적었다. 그렇다고 그가 도인의 모습으로만 산 것은 아니었다. 그의 실력을 보고 가르침을 받으려는 사람들이 많이 찾아왔다. 다음은 문신 신흠(申欽·1566∼1628)이 지인 박인수(朴仁壽·1521∼1592)가 박지화에 감화되는 모습을 적어 놓은 내용이다. '그러다가 수암 박지화를 만나 위기지학(爲己之學)을 들었고(…). 이로부터 도의 진수에 깊이 맛들여서 평소에 방 하나를 말끔히 정돈하여 왼편에는 거문고, 오른편에 책을 놓아두고 거처하였으며 세간의 영화에는 관심이 없었다.'- 본문중 '위기지학'은 타
[충북일보] 주말 동안 충북지역에 많은 비가 내리면서 도내 하상도로가 통제되고 나무가 쓰러지는 등 각종 피해가 속출했다. 청주기상지청은 지난 6일부터 7일까지 시간당 20~30㎜의 비가 내릴 것으로 예보했다. 시간당 30㎜의 비부터는 보통 '폭우'라고 부르는 수준으로 밭이나 하수구가 넘치기 시작하고, 홍수나 침수 같은 비 피해 위험이 매우 높아 특별히 주의해야 하는 단계다. 충북도 등에 따르면 7일 오후 2시 30분 기준 도내에는 평균 62.1㎜의 비가 쏟아졌다. 지역별로는 △증평 121.5㎜ △괴산 116.5㎜ △청주 87㎜ △진천 52㎜ △단양 49㎜ △보은 45.3㎜ △충주 45㎜ △제천 41.7㎜ △영동 7㎜ △음성 4㎜다. 폭우로 인해 도내 하상도로와 둔치주차장은 일부 통제된 상태다. 현재 도는 청주시 무심천 하상도로, 미암교 하상도로, 충주시 달천 하상도로를 통제 중이다. 하상도로에 설치된 둔치주차장은 전체 27곳 중 15곳이 통제된 상황이다. 폭우 여파로 도내 각종 사건·사고도 잇따랐다. 이날 도에 접수된 풍수해 신고 건수는 총 20건이다. 피해 유형은 △수목전도 12건 △배수불량 4건 △낙석 1건 △기타 3건으로 집계됐다.
[충북일보] 7일 오전 10시부터 오후까지 충북 청주시 소재 충북대학교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주관한 국가재정전략회의가 열렸다. 그러자 지역 곳곳에서 '무슨 일이 있느냐'는 문의전화가 빗발쳤다. 대통령실의 한 관계자는 이날 국가재정전략회의가 열린 배경에 대해 "기존에 국가재정전략회의는 국무총리와 장·차관 등 국무위원 중심으로 열렸다"며 "이번에는 다양한 민간 전문가들을 참여시켜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고 정책의 현실 적합성을 높이고자 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해도 왜 굳이 충북대에서 이번 회의가 열렸어야 했는지 궁금증은 해소되기 어려워 보인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또 하나의 특징은 회의 장소가 충북대라는 점"이라며 "기존에는 주로 세종청사나 서울청사에서 국가재정전략회의를 열었는데, 충북대를 이번에 택한 이유는 지방 발전, 지역 인재 육성을 포함한 지방시대와 연계해 국가재정전략회의를 열고자 하는 대통령의 의지가 반영됐다"고 설명했다. 이 또한 대통령의 의지라는 부분을 제외하고는 일반 시민들의 궁금증을 해소시키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윤 대통령은 MZ세대인 충북대 학생들과 오찬 간담회를 열어 청년일자리, 지역인재 육성 등의 고민과
[충북일보] "이 밑으로 물이 다 들어오잖아요. 이게 어떻게 물막이판이야" 지난 1일 청주시 흥덕구 복대동의 한 주택에서 만난 A(60)씨는 주택 앞에 설치된 물막이판을 가리키며 이같이 말했다. 이곳 반지하에 30년째 거주하는 A씨는 장마철이 되면 '호우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지난 2017년 충북 지역에 집중호우로 물이 역류하는 바람에 집이 온통 쑥대밭이 되는 일을 겪었기 때문이다. A씨는 "당시 침수 피해로 3천만 원이 넘는 재산 피해를 입었다"며 "올해도 비가 많이 내린다는데 빗물이 집에 들어오면 대부분 살림은 두고 피신할 생각까지 가지고 산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A씨가 거주하는 곳은 지형이 주변보다 낮아 주요 침수 지역으로 꼽힌다. 또 1인 가구가 거주하는 원룸·다세대주택 등이 밀집해 있어 반지하 주택 비율도 높고 하수구도 많아 침수에 취약하다. 지난해 충북에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지면서 청주시는 '재해취약주택 지원 사업'을 통해 A씨가 거주하는 주택 출입구에 물막이판을 설치했다. 물막이판은 도로가 물에 잠겨도 건물 내부로 물이 유입되지 않게 하는 장치로, 주로 건물 출입구와 반지하 주택의 창문에 설치한다. 하지만 A씨
[충북일보] "단양을 저마다 누려야 할 행복이 언제나 자유로운 곳으로 만들겠습니다." 이는 김문근 군수가 지난 6월경 인구 관련 포럼 발표에서 군민들과 약속한 일성이다. 김 군수가 민선8기 38대 단양군수로 임기를 시작한 지 취임 2년을 맞았다. 김 군수는 "지난 2년 동안 건강한 단양 살고 싶은 단양을 만들기 위해 주마가편의 자세로 다양한 정책과 사업을 추진했다"고 소회를 밝혔다. 그는 "단양의 관광 패러다임을 혁신하고 내륙관광 1번지 단양을 향해 한 단게 더 도약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시루섬 권역 종합관광지 개발과 리조트 조성 등 민간 투자 사업으로 체험형 관광지로서의 새 지평을 열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지역 활성화 투자펀드 공모 사업에 전국 1호 사업으로 단양역 복합 관광단지 개발사업이 선정된 만큼 사업을 꼼꼼히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 군수는 "민선 8기 단양호가 이제 반환점을 돌았다"며 "초심을 잃지 않고 젖 먹던 힘까지 내 '건강한 단양 살고 싶은 단양' 건설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지난 1년 주요 군정 성과는 "적은 인구를 지녔지만 단양군은 지난 2년 동안 대도시에 견줄만한 저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