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내'라는 호칭이 16세기인 중세에는 이른바 부부간 호칭어로 사용된 것으로 밝혀졌다. 뿐만 아니라 이 호칭은 대화 자리에 없는 제 3자를 지칭하는 말로도 사용되는 등 쓰임새가 매우 넓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자내'가 현대적으로 변한 '자네'는 듣는 이가 친구나 아랫사람인 경우에 사용되고 있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비존칭어로 분류되고 있다. 그러나 충북대 강사 이양순 씨의 논문 '순천김씨언간에 나타나는 인칭대명사' 논문에 따르면 편지가 쓰여진 16세기에는 그 용법이 지금과 크게 달랐던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977년 비행장 건립공사 현장인 청원군 북일면에서 미라와 함께 다량의 한글 편지글(언간)이 발견됐다. 무덤 주인공은 김훈의 딸이면서 시집을 간 순천김씨였다. 따라서 당시 발견된 글은 시집간 딸이 친정 어머니(신천강씨)로부터 편지를 받아본 내용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친정 어머니는 당시 딸(순천김씨)에게 보낸 190여장의 언간(諺簡)에서 시집간 딸을 그리는 모정, 병들고 빈한한 노년의 적막한 마음, 바람을 피운 남편에 대한 미움과 하소연, 주인과 종 사이에 벌어지는 미묘한 갈등 등의 내용을 적었다. 특히 그녀의 편지글은 한글이면서 구어체로 쓰여진데다
전회에 유석(劉石)이라는 인물의 패륜사건으로 '충주목'이 '예성부'로 읍호가 강등됐고, 그에 따른 여파로 '충청도'도 '청공도'(淸公道)로 행정지명이 바뀌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때가 1540년(중종 35)이다. 그로부터 9년 후 충주가 이번에는 다시 유신현(維新縣)으로 읍호가 강등된다. '충청도를 고쳐 청홍도로 만들고, 충주를 강등시켜 유신현(維新縣)으로 만들었다. 이기를 의정부 영의정으로, 이해를 청홍도 관찰사로, 이치를 유신 현감으로 삼았다.'- 청홍도할 때의 '홍'은 홍주(지금의 충남 홍성)에서 왔다. 1547년(명종 2년) 이른바 양재역 벽서사건이 일어났다. 경기도 과천의 양재역 벽위에 붙여진 벽서에는 '여왕이 집정하고 간신 이기 등이 권세를 농락하여 나라가 망하려 하니 이것을 보고만 있을 수 있는가'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벽서 내용은 상부에 보고 되었고 섭정을 하던 문정왕후는 명종에게 지시하여 윤임의 일파를 숙청했다. 그 과정에서 송인수·이약빙·임형수 등도 윤임의 일파로 지목돼 함께 사사했다. 거론된 인물중 이약빙은 우리고장 충주출신이고, 그에게는 홍남, 홍윤 두 아들 형제가 있었다. 그중 홍남은 벽서 사건에 간접적으로 연루됐다는 누명을 받아
체감으로 느껴지는 것 그대로 올 겨울의 추위 강도는 지난 10년 평균보다 4배나 강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이를 입증하듯 청주지역 올 1월달 평균기온은 26년만에, 제천은 30년만에 가장 낮았던 나타났다. 평균기온은 기온을 하루에 여덟번 측정, 이를 다시 측정횟수인 '8'로 나눈 값을 말한다. 기상청에 따르면 청주의 올 1월달 평균기온은 -5.9도(30일 기준)를 기록했다. 이와 관련 기상청의 지난 관측 자료를 살펴본 결과, 청주는 지난 1985년에도 1월 평균기온이 같은 수치인 -5.9도를 기록했다. 따라서 청주의 올 1월은 26년만에 가장 추웠던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일반인이 느끼는 추위 강도는 "난생 처음 겪는 추위"라는 말이 연발될 정도로 훨씬 높게 느껴지고 있다. 이는 지난 10여년간의 충북도내 겨울 기온이 상대적으로 높았기 때문으로 분석되고 있다. 기상청 자료를 통해 지난 10년간의 청주지역 평균기온 자료를 살펴 본 결과, 2001년 -3.0도, 2002년 0.7도, 2003년 -2.9도, 2004년 -1.7도, 2005년 -1.6도 등을 기록했다. 이밖에 2006년 0.2도, 2007년 0.5도, 2008년 -1.0도, 2009년 -2.7도,
충주 별칭 중의 하나로 '예성'(蘂城)이 있다. 이 때의 '예'(蘂) 자는 꽃술이라는 아름다운 뜻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이 '예성'이라는 별칭은 비교적 이른 시기인 고려시대부터 등장한다. '충주목은 (…) 대원(大原, 성종이 정한 명칭이다) 또는 예성(蘂城, 고종 42년에 다인철소 사람이 몽고 침략군을 방어함에 공로가 있었다고 하여 익안현으로 승격시켰다)이라고도 부르며…'- 위 내용만 가지고는다인철소의 승격과 예성이 어떤 연관이 있는지 분명히 드러나지 않는다. 이와 관련 지난 1970년대 후반 충주 한 가정집에서 태극과 꽃 문양의 석조물이 발견돼 화제가 된 것이 있다. 당시 충주 향토사학회에서는 이를 '예성 심방석'으로 명명했다. 그러나 이것 역시 고려시대 충주 별칭인 예성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유물인지는 여부는 추가 고증이 필요해 보인다. 지금까지는 예성에 대한 긍정적인 내용들이다. 조선시대 들어서는 이 예성의 명칭이 부정적으로 사용됐다. 시리즈로 언급하고 있지만 조선시대에는 연좌제의 일종인 읍호(邑號) 강등 사례가 심심찮게 발생했다. 이는 반역, 폐륜같은 국사범이 나올 경우 목(牧)을 현(縣)으로 내리는 등 행정 지위를 낮추는 것을 말한다. 뿐만 아니
사전은 설빔이라는단어에 대해 '설에 새로 차려 입고 신는 옷, 신 따위'라고 적고 있다. 뒷말 '빔'의 뜻의 바로 와닿지 않는다. 지금도 도내 촌로들은 설빔을 '설비슴'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때의 '비슴'은 동사 '빗다'의 명사형으로, '빛내다', '꾸미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바로 설빔은 '설을 맞아 몸을 새롭게 꾸미는 행동' 정도를 의미한다. '설빗음'이 '설비슴', '설비음'을 거쳐 오늘날의 '설빔'이 됐다. 지금은 설날 아침에 조상께 술을 따르지 차(茶)를 올리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날 아침에 지내는 의식을 '차례'라고 부르고 있다. 지금도 그렇지만 스님들이 차를 많이 마시는 편이다. 불교가 국교였던 고려시대에는 모든 의식에 차를 사용했다. 역성혁명으로 고려를 무너뜨린 조선왕조는 불교를 철저히 배척했고 따라서 제삿상에서 차가 점차 사라졌다. 그러나 언어로는 남아 있어, 설날 아침 의식을 '차례'라고 부르고 있다. 화토를 칠 때 그 판이 무효가 되면 우리 지역에서는 '파토났다'는 표현을 사용한다. 그러나 이는 '깨질 破'(파), '싸울 鬪'(투) 자를 쓴 '파투났다'가 바른 표현이다. 사전은 이를 '화투를 칠 때 순서가 바뀌거나 장이 모자라
기묘사화가 일어나자 한 생원이 기개높게 상소하는 장면이 기묘록보유에 등장한다. '참판 이찬(李澯), 참지(參知) 김노(金魯)는 모두 나이가 젊고 글씨를 잘 쓰므로 두 사람에게 붓을 들고 종이를 앞에 놓게 하더니, 공이 줄줄 불러대는데 글이 샘솟듯 하여 김(金)과 이(李)가 미처 받아쓰지를 못 하였다. 단번에 10여 편을 썼는데 사연이 매우 간절하였다.'- 본문에 등장하는 '공'은 박광우(朴光佑·1495∼1545)라는 인물이다. 생원은 지금으로 치면 초급 과거에 합격한 신분 상태를 말한다. 이들에게는 두가지 선택이 주어줬다. 곧바로 하급관리로 나가거나 또는 성균관에 입학할 수 있었다. 생원·진사 시험보다 더 높은 것이 바로 문과시험으로, 지금의 고시(高試)에 해당한다. 조선시대 문과 합격자를 기록해 놓은 것으로 국조방목(國朝榜目)이라는 것이 있다. 박광우 이름이 이 기록에 등장한다. 따라서 서두의 박광우 상소는 정식관리 신분이 아닌, 유생 상태에서 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문과급제 후의 박광우는 여지승람 편찬에 관여하는 등 다방면에서 활약했다. 그는 한때 강릉부사 직도 수행했다. 이때 고찰 월정사도 들렸던 모양이다. '월정사' 제목의 한시가 전해진다. '솔 그
충북도의 공공도서관에 대한 재정투자 규모가 제주도를 제외한 8개 광역지자체 중 가장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뿐만 아니라 충북은 다문화가정 비율이 높은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이들과 관련된 다문화 공공도서관 투자도 상대적으로 인색한 것으로 조사됐다. 26일 대통령 소속 도서관 정보정책위원회는 '도서관발전 종합계획 2011년도 시행계획'을 확정·발표했다.이 계획에 따르면 정부는 올 5천527억원을 투자, 경기도 20개관, 충북 3개관 등을 포함한 전국에 공공도서관 66개관을 확충하기로 했다. 작은도서관은 114개관을 확충키로 했다. 이같은 계획이 차질없이 진행될 경우 국민 1인당 장서수는 지난해 1.3권에서 올 1.4권으로 올라가게 된다. 정부의 이번 공공도서관 재정투자 계획은 이른바 매칭펀드 성격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지방비 투자 규모가 높을수록 국고지원도 증가하고 있다. 이같은 내역을 참고해 살펴본 결과, 충북도의 올 공공도서관에 대한 재정 투자규모는 80억2천만원으로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 8개 광역지자체 중 최하위인 것으로 나타났다. 지방비 기준의 나머지 8개 광역 지자체의 올 재정투자 규모는 경기도 812억원, 강원도 193억원, 충남 126억원, 전북 1
조선시대 때 환관의 또 다른 이름으로 엄인(門자 안의 奄자와 人), 화자(火子), 고자(鼓子) 등이 있다. '엄인'은 고려시대의 원나라 간섭기에 주로 사용됐다. 이때의 '엄'자는 그 훈이 '고자엄'으로, 글자 그대로 성불구자를 의미한다. '화자'와 '고자'는 보다 노골적인 성적 의미를 담고 있다. '화자'의 '火'는 남자의 몸(人)에서 두 개의 남성성이 떨어져 나간 것을 의미하고 있다. '고자'할 때의 '고'는 글자 그대로 북을 의미한다. 북의 속이 비었듯이 남성의 그것도 비었다는 뜻이다. 조선시대에는 대개 2가지 방법으로 환관이 됐다. 어릴적 개에게 고환을 물린 아이가 환관이 되는 경우가 있었다. 또 다른 경우는 사설 내시양성소인 내자원(內子院)을 통해 내시가 됐다. 이때 남성성을 거세하는 수술은 주로 비오고 천둥치는 날 했다. 비명 소리가 밖으로 빠져나가도 괜찮기 때문이었다. 당시 환관들은 생식성을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결혼생활도 영위했고 양자를 입적시키기도 했다. 이때 여자의 집안과 양자된 자의 부모에게는 적지 않은 재물이 건네졌다. 전회에 조선전기 최고 환관인 김처선과 그의 양자 이공신을 언급한 바 있다. 양부 김처선은 주군 연산군에게 직언을 했다가 참
'구한말 음성지역에 살았던 이·곽 두 사람은 무슨 한이 그렇게 많었을까'. 보은군이 최근 동학 최후의 격전지인 보은읍 종곡마을(일명 북실)에 대한 농촌마을종합사업 계획을 발표하면서 충북동학 마지막 단계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이와 관련, 충북대 박걸순(사학과·사진) 교수가 발표했던 '동학농민전쟁이후 음성지방 농촌사회의 동향과 갈등상' 논문이 새삼 주목을 받고 있다. 이 논문은 '李郭 抱寃錄의 분석을 중심으로'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이때의 '李郭 抱寃錄'(이곽포원록)은 '이·곽 두 사람이 원한을 품은 사실을 기록한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이씨 성은 당시 동학당 지도자를 지냈던 이헌표(李憲表), 곽씨 성은 이헌표 수하에 있으면서 모진 고문을 당했던 곽근회(郭根會)를 일컫고 있다. 1904년도에 작성된 것으로 보이는 이 고서적은 한지 18x27㎝ 크기에 국한혼용체기 기술돼 있다. 작성자는 여러 정황상 당시 음성관아 아전이면서 민과 관 양쪽을 중개했던 남궁성배(南宮聖倍)라는 인물로 추정되고 있다. 박교수가 이헌표 증손을 통해 음성읍 용산리에서 발굴한 이 고서적은 크게 △이헌표 등이 1903년 음성관아에 1차 체포되어 수난당한 사실 △1904년 또
동서를 막론하고 궁녀에 대한 소유권은 왕에게 있었다. 이런 구도 안에 또 다른 남성이 존재하면 이성적으로 돌발적인 상황이 일어날 수 있다. 거세남 환관(일면 내시)의 기원은 이같은 궁궐내 환경과 관련이 있다. 중국만큼은 아니지만 우리나라 환관 역사도 비교적 오래 됐다. 통일신라의 흥덕왕은 즉위년(826)에 왕비 장화부인을 잃었다. 이와 관련된 내용이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등장한다. '외짝 새도 제짝을 잃은 슬픔에 젖거늘, 하물며 훌륭한 배필을 잃었는데, 어떻게 무정하게 금새 다시 장가를 든다는 말인가? 그렇게 말하고는 끝내 따르지 않았다. 또한 시녀들까지 가까이 하지 않았으며, 좌우의 심부름꾼은 오리지 환수(宦竪) 뿐이었다.' 인용문에 등장하는 '환수'가 바로 환관을 지칭한다. 조선 전기의 최고 환관으로는 단연 김처선(金處善·?~1505)이라는 인물이 꼽힌다. 그는 세종부터 연산군까지 여러 임님을 모셨다. 연산군도 처음에는 그에게 말(馬)을 하사하는 등 비교적 곰살맞게 대했다. 그러나 생모 윤씨가 사약을 마시고 피를 토하며 죽어간 것을 알고는 분노의 마음을 다스리지 못했다. 그같은 심리 상태는 폭정을 뛰어넘어 광기로 이어졌다. 이같은 상황에서 성리학적 소양이
조선시대 선비들도 정신적인 자유를 추구했다. 가장 흔한 방법은 전원을 찾아 유유자적하는 삶이었다. 이른바 은거(隱居)다. 이것 외에 의식적으로 한직(閑職)을 맡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됐다. 중국 당나라 때의 시인 백거이(白居易·772~846)는 그의 인생 말년에 명목상 직책만 맡은 채 시, 술, 거문고 등을 벗삼아 즐겼다. 그는 이같은 생활 방식을 시로 남겼다. 그의 시 '중은'(中隱)이다. '大隱은 조정과 저잣거리에 숨고(大隱住朝市) / 小隱은 산속에 들어가는 것이라네(小隱入丘樊) / 산속은 너무 쓸쓸하고(丘樊太冷落) / 조정과 저잣거리는 너무 시끄럽다네(朝市太·喧) / 차라리 대은과 소은의 중간에 은거하여(不如作中隱) / 관직에 은거하는 것이 적당하다(隱在留司官)….' 그가 왜 시제목을 '중은', 즉 '중간 정도에 숨는다'로 했는지 금방 알 수 있다. 그는 산속같이 너무 적막한 곳은 싫어했던 것으로 보인다. 시 중간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도 등장한다. '그대가 질펀하게 놀기를 좋아한다면(君若愛游蕩) / 성 동쪽에 봄 동산이 있다네(城東有春園) / 그대가 한번 취하기를 바란다면(君若欲一醉) / 항상 손님으로 잔치자리에 참석할 수 있다네(時出赴賓筵) / 낙양에
충북도내 농민들이 논농사로 재미를 보지 못하자 그 경작지인 논을 대거 밭으로 전환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논·밭을 모두 포함한 충북도내 전체 경지면적은 1년 사이에 2천㏊ 가까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20일 통계청이 '2010년 경지면적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통계청은 전국 경지면적을 대상으로 2009~2010년 사이의 논밭전환, 개간, 건물건축, 공공시설, 유휴지 등의 변화를 조사했다. 그 결과, 충북도내의 전체 밭면적은 49㏊ 증가한 반면, 논은 1천995㏊로 감소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에따라 충북도내의 전체 경지면적은 지난해 하반기를 기준으로 전년도에 비해 1천946㏊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는 개괄적인 수치로, 충북도내 밭면적이 증가한 사유를 살펴보면 최근 농민들의 심정을 그대로 읽을 수 있다. 충북도내 논면적의 감소 사유는 밭으로 전환 1천869㏊, 건물건축 182㏊, 공공시설 176㏊, 유휴지 104㏊, 기타 119㏊ 순으로, 밭으로의 전환이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했다. 따라서 밭이 건물건축, 공공시설, 유휴지 등으로 전환된 것(감소요인)과 상계할 경우 도내 밭면적은 지난 1년 사이에 총 49㏊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직지의 국내 존재 여부가 또 다시 주요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중앙 모일간지가 어제 직지 2권을 직접 도굴했다고 주장하는 서상복(50·수감중) 씨와 그의 주변 인물을 검찰과 국가정보원이 광범위하게 내사를 벌이고 있는 것이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서씨는 "1998~2000년 직지 상권 2권을 서울 봉원사와 경북 안동 광흥사에서, 직지보다 50년 앞선 불경은 경주 기림사에서 도굴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서씨는 자신이 훔쳤다고 주장하는 직지 등은 모두 복장유물(腹藏遺物)이라고 주장했다. 복장유물은 불상을 만들 때 불상 안에 넣는 불경 등을 일컫고 있다. 이에 대해 해당 불상을 소장했던 봉원사 등은 서씨가 물건을 훔쳤다고 주장하는 시기에 "큰 도둑이 들었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에따라 검찰은 지난 2008년 4월부터 여러 차례 수감 중인 서씨를 대검찰청 청사로 데려와 은밀히 직지와 불경의 행방을 집중적으로 조사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국가정보원 직원도 2007년 말~2008년 초 수감 중인 서씨를 수 차례 면회, 직지와 불경의 행방에 대해 물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서씨는 이에 대해 "직지 한 권은 중국에, 나머지 한 권은 국내에
조선 중종 때의 인물로 유여림(兪汝霖·1476∼1538)이 있다. 그가 우리고장 충청도관찰사(감사)로 임명됐다. 조선시대 때는 외직, 즉 관찰사로 나갈 때는 임금 앞에서 배사(拜辭)라는 의식을 가졌다. 이는 임지로 가기 전에 임금에게 공손히 절하고 하직 인사를 올리는 것을 말한다. 당시 충청도에서 미풍양속에 위배되는 일이 더러 발생했던 모양이다. 중종이 배사를 위해 궁궐에 들어온 유여림에게 이를 바로 잡으라는 하명을 한다. "백성들의 기쁨과 슬픔은 수령에게 달렸고 수령의 현부(賢否)는 감사가 출척(黜陟)을 엄명하게 하는 데 달렸으니, 경은 가서 힘쓰라. 그리고 충청도는 근래 풍속이 투박해졌으니 경은 풍속 혁신시키는 것을 급선무로 삼으라"- 본문 중 출척은 무능한 관리를 물리치고 유능한 관리를 품계를 올려주는 행동을 일컫는다. 유여림이 부임 1년만에 '실적 보고'를 하게 된다. 관내 효자와 열부를 찾아내 임금께 보고하는 글인 장계(狀啓)를 올렸다. '충청도 관찰사 유여림이 장계하기를, "충주(忠州) 사는 전 혜민서 참봉 하숙륜은 어머니가 악질(惡疾)에 걸리자 다리 살을 베고 손가락을 잘라 불에 태워 약에 타서 드리니 그 병이 쾌차하였고, 지성으로 봉양하였습니다
강추위가 지루할만치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충북에서 가장 추운 곳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제천이 아닌, 괴산 청천면 송면리 일대인 것으로 나타났다. 17일 청주기상대 등에 따르면 기상청은 자동 관측이 어려운 운량(구름의 양) 등은 유관으로 관측된 값을 기록으로 남기고 있다. 반면 기온, 강수, 습도, 풍속, 풍향 등은 자동무인관측을 실시하고 있다. 충북에는 자동무인관측기가 청주, 충주, 제천, 추풍령 등 28곳에 설치돼 있다. 청천, 선유동, 송계, 백운, 영춘, 청산, 가곡 등 도내 일부 면지역에도 방재 관측용으로 이 자동무인관측기가 설치돼 있다. 기상청은 이들 지역에서 관측된 값을 지역별 상세관측자료(AWS)라는 이름으로 매1분마다 인터넷을 통해 송출하고 있다. 이 AWS 값을 기준으로 할 경우, 충북에서 가장 추운 곳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제천이 아닌 괴산 청천면 송면리 일대인 것으로 조사됐다. 최근들어 가장 추웠던 지난 16일 오전 청천면 송면리는 영하 23.8도, 제천은 영하 22.8도의 최저기온을 기록, 청천 송면리가 1도 정도 더 낮았던 것으로 조사됐다. 17일 오전도 청천면 송면리 영하 23.0도, 제천은 영하 22.3도의 최저기온을 기록, 역시
고대 일본의 최고 공예품의 하나로 평가받는 '목화자단기국'(木畵紫檀기局) 바둑판은 과연 백제 의자왕이 일본 쇼무(聖武) 천황에게 선물한 것일까. 최근들어 이에 대한 논란이 다시 재연되고 있다. 특히 문제 제기를 한 인물이 청주의 재야 바둑사학자인 이승우(81) 씨여서, 지역적인 관심도 배가되고 있다. 전직 문화재청장이면서 답사기로 유명한 한 인사가 얼마전 중앙 일간지 '국보순례' 칼럼 코너에 글을 기고, '… 백제의 의자왕이 보내 준 상아 바둑알과 자단목 바둑판, 그리고 은판을 무늬로 오려 붙인 바둑알 통이 공개되어…'라고 밝힌 바 있다. 인용문 중 '자단목 바둑판'은 앞서 언급한 '목화자단기국'을 지칭하는 것으로, 백제 의자왕이 일왕에게 선물한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와 함께 이 인사는 '17개의 화점은 우리나라 고유의 순장바둑에만 필요한 것…'이라고 밝혀, 목화자단기국 바둑판을 순장바둑과도 연계시켰다. 이에 대해 청주 재야 바둑사학자인 이승우씨는 "유감스럽지만 그럴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밝혔다. 또 "만약 백제시대부터 순장바둑이 존재했으면 우리나라 바둑사를 몽땅 다시 써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에 대한 사료적 증거로 "동대사 고문헌을 살펴본 결
조선시대 최대 폭군인 연산군은 기분내키는대로 죄명을 만들었고 이를 집행했다. 그러나 그도 내심으로는 법치가 옳은 것임을 알고 있었다. 연산군이 어떤 사건에 대해 변명한다. '전교하기를, "죄인 이극균, 윤필상 등의 할아비 및 아재비·조카는 비록 죽었더라도 모두 부관참시하라 이 일은 율문에 없는 것인 듯하지만, 율문이 없는 것은 이럴 리가 없기 때문이다. 비상한 간흉은 상법(常法)으로 다스려서는 안 되므로 율문에 없는 형벌로 다스린다" 하였다.'- 본문 중에 윤필상(尹弼商·1427∼1504)이라는 인물이 보인다. 그는 적개, 좌리 등 두번의 공신 반열에 올랐다. 그는 이같은 공훈을 바탕으로 성종대에 조선관료의 꽃인 영의정 자리에 올랐다. 조선왕조실록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신하의 이름은 송시열로 2천8백여번이 된다. 윤필상도 이에 못지 않아 2천6백여번 등장하고 있다. 주군이 바뀌면서 그에게 시련이 찾아왔다. 그러나 그 시련은 상식으로는 잘 이해되지 않는 것이었다. 그에게 '절개를 지키지 않았다'는 죄명이 씌워졌다. 연산군의 국문이 시작됐다. '전교하기를, "신하로서 인군을 섬길 때는 죽든 살든 한 절개를 가져야 하는 것인데, 윤필상(尹弼商)이 전에는 그렇게 의
이세좌와 연산군과의 악연은 역사에서 자주 거론된다. 이세좌는 성종이 연산군의 생모 폐비윤씨에게 사약을 내릴 때 약사발을 가지고 간 인물이다. 이른바 봉약관(奉藥官)이다. 결국 이세좌는 이 사실을 안 연산군에 의해 극형을 당한다. 전회 소개했던 내용이다. 대대로 문벌이 높은 가문을 '삼한갑족'(三韓甲族)이라고 부른다. 이때의 삼한은 마한, 진한, 변한이 아닌 신라, 고려, 조선를 일컫는다. 조선전기의 삼한갑족 1위는 왕족 전주이씨를 제외하고 청주한씨다. 그러나 청주한씨는 한명회를 정점으로 하락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 뒤를 이은 문벌가문이 광주이씨다. 그러나 광주이씨도 연산군대의 사화로 가문이 크게 위축된다. 그 전환점에 서있는 인물이 앞서 언급한 봉약관 이세좌다. 이세좌의 집안 조카뻘되는 인물로 이수공(李守恭·1464∼1504)이 있다. 그는 1498년 무오사화 때 '난언'(亂言)을 알고도 말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상도 창성(昌城)으로 유배됐다. 이때의 난언은 김종직이 지은 조의제문(弔義帝文)을 의미한다. "강경서·이수공·정희량·정승조는 난언(亂言)한 것을 알면서도 고발하지 아니하였으니 아울러 곤장 1백 대에 3천 리 밖으로 내쳐서 봉수군(烽燧軍) 정로한(庭爐
계량화된 수치만으로 어떤 학생의 미래성장 가능성이나 특기를 충분히 검증할 수 없다. 조선시대에도 이같은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현량과'(賢良科) 제도를 한시적으로 도입했다. 시험이 아닌 추천에 의해 관리를 선발하는 제도였으나 객관성은 자주 문제됐다. 사학자들이 중종대 현량과 급제자 28명을 출신지별로 분석한 결과, 전체 급제자 28명 중 한양 10명, 충청도 8명, 경기도 2명, 경상도 5명, 전라도 1명, 강원도 1명, 미상 1명 등인 것으로 나타났다. 충청도 8명을 다시 분석한 결과, 충주·음성 출신이 5명으로 조사됐다. 이는 이미 이때부터 서인의 뿌리인 기호사림이 서서히 세를 형성하기 시작한 것을 의미한다. 사가들은 충주·음성을 기호사림과 분리해 '충주사림'이라고 별도로 칭하기도 한다. 충주·음성 출신 급제자 중에는 김구(金絿·1488∼1534년)라는 인물도 있다. 그는 30대 초반에 홍문관 부제학이 될 정도로 장래가 촉망됐다. 여기에는 먼저 정계에 진출한 김정, 김식 등의 배려가 있었던 것으로 사가들은 보고 있다. 김정은 우리고장 보은, 김식은 제천출신 인물로, '범기호사림'으로 분류되는 인물들이다. 김구는 글씨를 잘 써 한석봉, 안평대군, 양사언
백제 국찰 왕흥사(王興寺)의 목탑은 지금까지 추정돼 온 5층이 아닌, 3층 구조를 지녔다는 주장이 제시됐다. 충북대 김경표(건축학과·사진) 박물관장이 얼마전 '왕흥사 목탑의 복원 연구' 논문을 한국건축사학회지(제 19권 3호)를 통해 발표했다. 왕흥사는 7세기 무렵의 제 27대 위덕왕(일명 창왕)에 의해 건립된 백제 국찰로, 부소산성에서 볼 때 백마강 건너편인 부여군 규암면 신리 울성산성 기슭에 위치하고 있다. 지난 2007년 명문이 새겨진 청동 사리함과 금은제 사리병이 발굴돼 더욱 유명해진 왕흥사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도 등장하고 있다. 삼국사기에는 '절은 물가에 임하여 채색과 장식이 장엄하고 화려하였으며, 왕은 매양 배를 타고 절에 가서 향불을 올렸다'(其寺臨水 彩飾壯麗 王每乘舟入寺行香)라는 내용이 등장한다. 삼국유사에는 '산기슭에 위치하고 물에 임하였으며 꽃과 나무들이 빼어나고 고와서 춘하추동 사철 아름다움을 갖추었다. 왕은 매번 배를 타고 강을 건너서 절에 들어가 그 경승이 장엄하고 화려한 것을 즐겼다'(附産臨水 花木秀麗 四時之美具焉 王每命舟 沿河入寺 賞其形勝莊麗)"라는 표현이 기술돼 있다. 이같은 내용은 △백제 국왕이 손수 왕래했던 국찰이고 △당시에
충북대학교 박물관이 최근 도내 어린이들을 초청, '박물관과 함께 하는 구석기시대 여행' 특강시간을 가졌다. 강사로 초빙된 이융조(아시아구석기학회 회장) 충북대 명예교수는 3시간에 걸쳐 금굴, 두루봉, 구낭굴 등의 순서로 도내 동굴 구석기 유적을 소개했다. 특히 이 명예교수는 자칫 지루하고 딱딱해지기 쉬운 구석기 문화를 쉬운 언어와 적절한 비유로 설명, 어린이들의 지적 호기심을 채워줬다. 한국박물관협회의 겨울방학 프로그램 지원사업 일환으로 기획된 이번 특강은 이달말까지 3주 더 계속된다. 특강에 관심이 있는 학생은 261-2902로 연락하면 된다. / 조혁연 대기자
토정비결의 저자 토정 이지함(1517~1578)은 충북과도 적지 않은 인연을 맺고 있다. 토정은 기인의 이미지와 달리 이른바 명문가 출신이다. 북인의 영수였던 '이산해'가 그의 친조카다. 그리고 형은 이지번(李之蕃·?~1575)이다. 이지번, 지함 형제는 우정이 매우 돈독했다. 실록에는 이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등장한다. 아우 지함은 박학다식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본래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다. 형 지번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는 어려서 글을 배우지 않았었는데 그의 형 이지번의 권고를 받고 마침내 분발하여 학문에 주력하면서 밤을 새워 날이 밝도록 공부하곤 했다. 그리하여 경전을 모두 통달하고 온갖 사서(史書)와 제자백가의 책까지도 섭렵하였다.'- 수정실록은 실록이 편찬된 후 어떤 이유로 일부 내용을 고치는 것을 말한다. 선조와 경종대 등 2개의 수정실록이 존재한다. 이밖에 '개수실록'과 '보궐정오'라는 형식도 있다. 개수실록은 처음 부터 완전히 뜯어 고치는 것을, 보궐정오는 본래의 실록에서 잘못된 글자나 내용을 고친 뒤 부록처럼 붙이는 것을 말한다. 이지번의 호는 여러 개가 있다. 이중에는 구선(龜仙), 구옹(龜翁)이라는 호도 있다. 이때의 '龜'는 우리
◇ 계속되는 자연휴양림 열풍 자연휴양림(recreational forests)은 글자 그대로 하이킹, 캠프, 스키, 산림욕, 등산 등 국민의 보건휴양에 폭넓게 이용되는 것을 목적으로 지정·정비된 산림을 말한다. 산림청은 지난 80년대 후반부터 자연휴양림을 조성하기 시작했다. 강원도 대관령자연휴양림이 국내 제 1호로, 지난 89년 2월에 개장됐다. 이후 산업 고도화와 다소간 경제적인 여유가 생기면서 자연휴양림을 찾는 이용객들이 급증했다. 여기에 주5일 근무제가 성공적으로 정착되면서 자연휴양림 문화는 대중화의 길로 접어 들었다. '울창한 숲, 맑은 공기, 깨끗한 물, 지저귀는 새소리'. 국민들은 주말이 되면 도시를 탈출하고 싶은 욕구를 일정부분 자연휴양림을 찾는 것으로 해소하고 있다. 여기에는 저렴한 숙박비도 일조했다. 관련 통계에 따르면 지난 1991년 전국 자연휴양림을 찾은 방문객은 연간 81만명 정도였다. 그러던 것이 지난 2006년에는 507만명으로 증가했다. 15년만에 6배 이상 늘어났다. 이에 따라 전국 자연휴양림측이 얻은 총수입도 1991년 2억원에서 2006년 186억원으로 무려 93배 증가했다.◇ 충북의 자연휴양림 실태 2010년 12월 현재 충
조선시대 명의하면 허준(許濬·1537~1615)만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으나 꼭그렇지도 않다. 허준과 같은 시기에 활동한 어의(御醫)의 한 명으로 이공기(李公沂·?~?)라는 인물도 있다. 조선시대 과거 합격자들을 기록한 사마방목에는 그의 친·외가에 대한 내용이 전혀 존재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취재'(取才)에 의해 어의가 된 것으로 추정된다. '취재'는 재능이 있는 인물을 과거시험없이 하급직으로 등용하는 제도를 말한다. 어의로서의 이공기 활동은 대략 3시기로 구분되고 있다. 첫째 선조 임금의 이명증(耳鳴症) 치료, 둘째 임진왜란 때 명나라 군사 치료, 셋째 임진왜란 피난길의 선조 호종 등으로 나뉜다. 후대의 사가들은 대체로 선조를 이기주의적이면서 나약했던 인물로 평하고 있다. 선조는 이명증을 자주 앓았고, 이로 인해 침맞기를 무척 좋아했다. '상이 별전(別殿)에 나아가 침을 맞았다. 왕세자가 입시하고, (…) 허준·이공기 등이 입시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왼쪽 귀가 심하게 울리고 들리지도 않으므로, 침을 맞지 않으면 낫지 않을 듯하여 이렇게 하는 것이다"하고(…)'- '또 이르기를, "전에 머리가 아프지 않은 날이 없었는데, 지난 가을에 침을 맞은 뒤부터
조선시대 전기에는 금화도감(禁火都監)이라는 곳에서 방화업무를 담당했다. 금화도감은 화재를 예방하기 위하여 인접한 가옥과 가옥 사이에 방화장(防火墻)을 쌓고, 또 요소마다 우물을 파 방화기기(防火器機) 등을 설치토록 하는 등의 행정적인 조치를 취했다. 조선시대에는 오늘날 소방대원에 해당하는 조직으로 멸화군(滅火軍)이 존재했다. 이 조직에 대해서는 군인의 일부다, 아니다의 논란이 있으나 소방업무를 담당했던 것 만큼은 분명하다. 실록에 멸화군에 대한 표현으로 다음 내용이 나온다. '불을 끄는 사목(事目)을 도총부·병조·공조·한성부에 내려 주었는데, 그 사목에 이르기를, "1. 문서가 있고 전곡(錢穀)이 있는 여러 관사는 방화장을 쌓을 것. 1. 불을 끄는 군사 50인을 정하여 도끼 20개, 철구(鐵鉤) 15개, 숙마긍(熟麻실사변+瓦) 5개를 주고, 종루에 올라가서 망을 보게 할 것(…)'- 본문 중 '철구'는 쇠로 만든 갈고리를 뜻한다. '숙마긍'은 국어사전에 등장하지 않으나 이때의 '긍'은 밧줄을 의미한다. 따라서 정황상 마를 질기게 꼰 밧줄 정도로 추정되고 있다. 철구와 숙마긍만 생각해도 불끄는 장면이 절로 연상되고 있다. 이것 말고 본문 중에 '전곡(錢穀)이
[충북일보] 주말 동안 충북지역에 많은 비가 내리면서 도내 하상도로가 통제되고 나무가 쓰러지는 등 각종 피해가 속출했다. 청주기상지청은 지난 6일부터 7일까지 시간당 20~30㎜의 비가 내릴 것으로 예보했다. 시간당 30㎜의 비부터는 보통 '폭우'라고 부르는 수준으로 밭이나 하수구가 넘치기 시작하고, 홍수나 침수 같은 비 피해 위험이 매우 높아 특별히 주의해야 하는 단계다. 충북도 등에 따르면 7일 오후 2시 30분 기준 도내에는 평균 62.1㎜의 비가 쏟아졌다. 지역별로는 △증평 121.5㎜ △괴산 116.5㎜ △청주 87㎜ △진천 52㎜ △단양 49㎜ △보은 45.3㎜ △충주 45㎜ △제천 41.7㎜ △영동 7㎜ △음성 4㎜다. 폭우로 인해 도내 하상도로와 둔치주차장은 일부 통제된 상태다. 현재 도는 청주시 무심천 하상도로, 미암교 하상도로, 충주시 달천 하상도로를 통제 중이다. 하상도로에 설치된 둔치주차장은 전체 27곳 중 15곳이 통제된 상황이다. 폭우 여파로 도내 각종 사건·사고도 잇따랐다. 이날 도에 접수된 풍수해 신고 건수는 총 20건이다. 피해 유형은 △수목전도 12건 △배수불량 4건 △낙석 1건 △기타 3건으로 집계됐다.
[충북일보] 7일 오전 10시부터 오후까지 충북 청주시 소재 충북대학교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주관한 국가재정전략회의가 열렸다. 그러자 지역 곳곳에서 '무슨 일이 있느냐'는 문의전화가 빗발쳤다. 대통령실의 한 관계자는 이날 국가재정전략회의가 열린 배경에 대해 "기존에 국가재정전략회의는 국무총리와 장·차관 등 국무위원 중심으로 열렸다"며 "이번에는 다양한 민간 전문가들을 참여시켜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고 정책의 현실 적합성을 높이고자 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해도 왜 굳이 충북대에서 이번 회의가 열렸어야 했는지 궁금증은 해소되기 어려워 보인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또 하나의 특징은 회의 장소가 충북대라는 점"이라며 "기존에는 주로 세종청사나 서울청사에서 국가재정전략회의를 열었는데, 충북대를 이번에 택한 이유는 지방 발전, 지역 인재 육성을 포함한 지방시대와 연계해 국가재정전략회의를 열고자 하는 대통령의 의지가 반영됐다"고 설명했다. 이 또한 대통령의 의지라는 부분을 제외하고는 일반 시민들의 궁금증을 해소시키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윤 대통령은 MZ세대인 충북대 학생들과 오찬 간담회를 열어 청년일자리, 지역인재 육성 등의 고민과
[충북일보] "이 밑으로 물이 다 들어오잖아요. 이게 어떻게 물막이판이야" 지난 1일 청주시 흥덕구 복대동의 한 주택에서 만난 A(60)씨는 주택 앞에 설치된 물막이판을 가리키며 이같이 말했다. 이곳 반지하에 30년째 거주하는 A씨는 장마철이 되면 '호우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지난 2017년 충북 지역에 집중호우로 물이 역류하는 바람에 집이 온통 쑥대밭이 되는 일을 겪었기 때문이다. A씨는 "당시 침수 피해로 3천만 원이 넘는 재산 피해를 입었다"며 "올해도 비가 많이 내린다는데 빗물이 집에 들어오면 대부분 살림은 두고 피신할 생각까지 가지고 산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A씨가 거주하는 곳은 지형이 주변보다 낮아 주요 침수 지역으로 꼽힌다. 또 1인 가구가 거주하는 원룸·다세대주택 등이 밀집해 있어 반지하 주택 비율도 높고 하수구도 많아 침수에 취약하다. 지난해 충북에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지면서 청주시는 '재해취약주택 지원 사업'을 통해 A씨가 거주하는 주택 출입구에 물막이판을 설치했다. 물막이판은 도로가 물에 잠겨도 건물 내부로 물이 유입되지 않게 하는 장치로, 주로 건물 출입구와 반지하 주택의 창문에 설치한다. 하지만 A씨
[충북일보] "단양을 저마다 누려야 할 행복이 언제나 자유로운 곳으로 만들겠습니다." 이는 김문근 군수가 지난 6월경 인구 관련 포럼 발표에서 군민들과 약속한 일성이다. 김 군수가 민선8기 38대 단양군수로 임기를 시작한 지 취임 2년을 맞았다. 김 군수는 "지난 2년 동안 건강한 단양 살고 싶은 단양을 만들기 위해 주마가편의 자세로 다양한 정책과 사업을 추진했다"고 소회를 밝혔다. 그는 "단양의 관광 패러다임을 혁신하고 내륙관광 1번지 단양을 향해 한 단게 더 도약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시루섬 권역 종합관광지 개발과 리조트 조성 등 민간 투자 사업으로 체험형 관광지로서의 새 지평을 열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지역 활성화 투자펀드 공모 사업에 전국 1호 사업으로 단양역 복합 관광단지 개발사업이 선정된 만큼 사업을 꼼꼼히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 군수는 "민선 8기 단양호가 이제 반환점을 돌았다"며 "초심을 잃지 않고 젖 먹던 힘까지 내 '건강한 단양 살고 싶은 단양' 건설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지난 1년 주요 군정 성과는 "적은 인구를 지녔지만 단양군은 지난 2년 동안 대도시에 견줄만한 저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