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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안에서 보는 맛있는 영화 에세이 -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로카르노 영화제 청동표범상…8살 우정을 위한 달음질

  • 웹출고시간2010.12.05 18:05:20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21세기의 삶은 속도전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남보다 빨리 배우고 빨리 성취하여 풍요로운 삶을 누리기를 소망한다. 그런데 그렇게 서둘러 가게 되면 삶의 마지막도 더 빨리 오지 않을까.

이란의 거장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을 직접 만난 적은 없지만 그의 영화들을 통해 나는 인생에 대한 그의 성찰을 육성으로 듣는 듯한 기분을 느끼곤 했다. 그가 만든 영화의 인물들은 모두 전문배우가 아니다. 키아로스타미 감독은 현지에서 동네 주민들을 배우로 섭외하기로 유명하다. 그래서인지 인물들의 연기는 실제의 일상인 양 편안하고 자연스럽다. 일반인들이 카메라 앞에서 저토록 편해지기까지 감독과 스텝들의 노고는 각별했으리라.

영화라면 주로 할리우드 영화나 가끔 프랑스 영화 정도를 접하던 중, 우연히 보게 된 그의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체리 향기> <올리브 나무 사이로> 등의 이란 영화는 그야말로 신선한 충격이었다. 특히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를 떠올릴 때면 소년들의 무구한 눈동자에 내 영혼이 맑게 정화되는 느낌에 사로잡히곤 한다.

사람의 나이, 어느 시점까지를 동심(童心)이라 부를 수 있을까. 중학생이 되면서 청소년으로 불리워지게 되니 대체로 초등학생 때까지의 아이들 마음을 동심이라 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가끔 초등학교 5, 6학년생도 심각한 범죄를 저지르거나 자살까지 하는 사례가 있는 걸 보면 이제 이 땅에서 열 살 정도를 넘어서면 이미 청소년 시기로 들어선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즉 요즘 같은 광속의 정보화, 영상 이미지 시대에 아이들은 전보다 훨씬 빨리 어른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아이들은 이제 골목길에서 또래집단 놀이를 공유하며 자라는 것이 아니라, 학원에서 개별적 책상에 앉아 일률적 지식을 습득하고 PC방에서 온라인 게임에 몰두하며 단독적 인자로 성장한다. 그렇다보니 요즘 아이들은 나만의 공간에서 나만의 시간을 확보하려는 욕구가 그 어느 세대보다 강하다. 따라서 아이들의 모습에서 타인에 대한 양보와 배려의 미덕을 점차 찾아보기 어려워지는 것 같다.

그리하여 여기 이란의 작은 시골 마을 코케에 살고 있는 여덟 살 소년 아마드를 여러분께서 한번 만나보셨으면 좋겠다. 우리나라의 60년대 시골아이 같은 아마드는 변변한 책상도 없이 방바닥에 공책을 펴놓고 웅크린 채 숙제를 한다. 그 와중에도 엄마와 아빠는 끊임없이 심부름을 시킨다. 어느 때는 과연 친부모가 맞나 싶을 정도로 참으로 냉정하게 일을 시키기도 한다. 짜증이 날 법도 하건만 아마드는 일을 시켜야하는 부모의 정황을 살핀 후 가벼운 한숨을 내쉰 뒤 군말 없이 심부름을 하곤 한다.

어느 날 아마드는 옆 자리의 친구 네마자데가 숙제를 해오지 않아 선생님으로부터 '한 번만 더 해오지 않으면 퇴학'이라는 엄포를 듣게 된다. 집에 돌아와 숙제를 하려던 아마드는 실수로 네마자데의 공책까지 가져왔음을 알게 되고, 가슴이 철렁해진 아마드는 그때부터 네마자데의 집을 찾아 헤매기 시작한다.

사실 이 영화의 대부분은 아마드가 네마자데의 집을 찾기 위한 노력의 과정에 바쳐지고 있다. 네마자데가 산다는 포시테 마을로 가기 위해 넘어야 하는 지그재그의 언덕길, 포시테 마을의 경사가 심한 오르막내리막 계단 골목길 등은 이 영화가 단순히 어린이 영화가 아님을 말해 주고 있다. 삶은 직진하는 것이 아니라 때로 에둘러 가기도 하는 것이며, 삶의 기복 또한 응당한 것임을 암시하는 것이다. 특히 아마드가 끊임없이 두드리게 되는, 각 집의 어슷비슷한 대문들은 인생이란 끊임없이 해답을 요구해야 하는 의문투성이임을 상징하고 있는 듯하다. 그리하여 그 여러 집의 어느 대문도 끝내 네마자데의 것이 아니었음을 알게 될 때, 우리 삶에 완전한 정답이란 없음을 알게 되는 것이다.

결국 친구의 집을 찾지 못하고 어둑어둑해진 골목길에서 힘없이 걷고 있을 때 아마드는 어느 할아버지를 만난다. 그는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아마드를 이해하는 어른이다. 각 집의 신비한 문양의 창문에서 안개와 같은 따스한 불빛이 은은히 비치는 가운데 아마드가 할아버지와 함께 걷는 이 골목길 장면은 이 영화에서 가장 아름답고, 감독의 주제가 가장 빛나게 발현되는 부분이다. 깊숙한 강에 이른 인생(할아버지)이 이제 막 인생의 발원이 시작되는 작은 물결(아마드)에게 삶을 이야기한다.

"사람들은 왜 바꿔야 되는지도 모르면서 나무 대문을 철제로 바꾼다"


할아버지의 이 말은 자신만의 인생 철학도 없이 그저 시류에 휩쓸리는 뭇 인간 군상들을 질타하는 말이다. 그리고 어느 샘가에 이르러 들꽃 하나를 따서 아마드가 갖고 있는 공책에 넣어 준다.

아마드는 결국 밤새워 네마자데의 것까지 숙제를 하고 다음 날 학교에 도착하여 친구에게 공책을 건네준다. 울상으로 앉아 있던 네마자데는 천국에라도 이른 양 환한 미소로 선생님 앞에 공책을 펼쳐 보인다. 거기에는 작은 들꽃송이가 하나 꽂혀 있다. 그것은 아마드의 동심과 우정에 대한, 삶의 섭리를 주관하는 이가 내리는 가장 큰 상이었으리라.

그때 내 가슴에 찍힌 그 들꽃의 화인(花印)은 지금도 남아 아마드의 눈망울과 함께 따스히 가슴에 퍼지는, 휴식 같은 위안을 이따금 주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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